새해가 되면 연례행사처럼 스케줄러 혹은 다이어리 구입을 하고는 했지만 한 달 이상을 써 내려간 적이 없었다. 중요한 일정은 핸드폰 달력에 표시만 하는 정도이고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오직 나의 기억력에 의존한 채 기억의 서랍 한편에 저장만 해두는 계획형의 인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즉흥적으로 흘러갈 때가 많았다. 큰 줄기의 일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일과는 생각이 나면 하고 안 나면 그냥 지나쳐버리고는 했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하다 보니 지쳐버리고 어느 날은 계획 없이 무료하게 허비해버렸다.
몇 년 전 새벽 기상과 함께 명상을 실천하게 되면서 하루의 시작이 빨라지자 아침이 오기까지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채워나가야 하나 고민을 하다 하루 계획과 일기를 써보기로 하였다.
서랍에는 그동안 앞 페이지 몇 장만 끄적인 새것과 다름없는 다이어리들이 즐비했다. 그중 런던 여행 중 구입한 빨강 수첩을 꺼냈다. 그런데 막상 쓰려고 하니 어떤 방식으로 써야 하나 망설여졌다. 무작정 써 내려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왕이면 매일 일정한 형식에 맞춰 쓰고 싶어졌다. 유튜브에 몇 개의 키워드만 검색해도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유익한 정보들이 너무 많았고 그중 간단하면서 꾸준히 습관으로 해나갈 수 있는 몇 개의 방법들을 추렸다.
어느 유투버의 빨강, 파랑, 검은색 펜을 활용한 하루 계획서를 작성하는 방법을 채택하고 나도 따라 실천해보기로 했다.
빨강 펜으로는 하이라이트 부분인 내가 멀리 보고 있는 목표 및 나의 커리어를 위해 오늘 해야 할 일을 적고 파랑 펜으로는 습관 부분으로 규칙적으로 매일 해나가야 하는 일들을 적고 검정펜으로는 그날그날 처리해야 하는 일과들을 기록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 동안 실천한 부분에 체크를 하며 얼마만큼 오늘 계획표대로 보냈는지 확인한다. 더불어 이 계획표 아래에는 오늘 하루 느낀 감정이나 앞으로의 목표 등 생각나는 대로 간단하게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는 것까지가 하루 다이어리 안에 포함되었다.
이런 방법으로 매일 꾸준히 다이어리를 채워나갔고 어느 정도 습관이 되자 책을 보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과 그날의 기도문도 함께 추가하게 되었다.
일기는 가끔 생략하는 날이 있어도 위의 세 가지 계획표 작성은 웬만해서는 빠트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간단한 계획표지만 앞으로의 목표를 위해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일, 규칙적으로 해야 하는 습관, 그날 빨리 처리해야 할 일들을 분류화하자 하루가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모든 항목에 체크를 하게 된 날은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뿌듯함과 오늘 하루 알차게 잘 보냈구나 하는 자부심에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었다.
미리 계획을 기록하는 것과 계획을 그저 생각만 하는 것은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사소한 일이라도 계획표에 기록을 하면 하나의 계약서처럼 내가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일들로 여겨져 오늘 안에 모두 실행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만약 그저 생각만으로 '오늘 이렇게 보내야지'라고 만했다면 저 중 반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빨간색으로 기록하는 가장 중요한 하이라이트 부분은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구체적이고 세분화되었고 더 큰 목표로 나아가기 위한 지표가 되어 주었다. 나머지 두 가지 항목들도 체크를 완성해나갈수록 나의 일상이 시스템화 되며 하루가 예전보다 훨씬 건강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기록하기 시작한 작은 메모들이 나의 하루를 만들고 한 달을 그리고 일 년을 나타내 주는 청사진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일상이 한 번씩 흔들리고 방황하는 시기가 오면 예전의 다이어리 속 메모들을 읽으며 일주일 전의 내가, 한 달 전의 내가 어떻게 보내왔는지를 보며 지금 내가 어디쯤에 와있는지,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상기시켜본다.
오늘도 하이라이트 항목 중 하나인 브런치 글쓰기를 이렇게 써 내려가며 나의 하루를 완성하고 있다
체크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