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소비는 나의 정체성이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이 나의 안목을, 나의 가치관을 , 나의 현재를 드러낸다고 은연중에 믿고 있었다.
누군가가 지나가는 말로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칭찬할 때는 마치 그 물건이 아닌 나를 칭찬한다는 착각에 빠져 더욱더 소비에 가열을 박찼고 그렇게 소비한 물건들로 나를 치장하고 표현하며 타인에게는 알게 모르게 무언의 과시도 하지 않았었던가 싶다.
심지어 가끔 지인들이 '네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어쩜 다 예뻐'라고 말해줄 때는 그동안의 나의 소비가 합리적인 소비였었다고 자기 위안을 하는 자가당착에 이르기까지 했었다.
그러다 보니 그때의 소비는 어떤 신념 하에 이루어진 주체적 소비보다는 타인에게 보여주기 식의 소비가 더 많았던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그 이후 어떠한 결정적 계기가 있어서 소비에 대한 나의 관념이 변한 것은 아니다. 종종 머리와 마음속이 어둠으로 분주할 때가 많았고 그럴 때마다 내가 머무는 공간을 정리하고 물건들을 버리고 청소하는 습관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때마다 내 삶의 공간 일부를 내어주고 있던 그 많은 물건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매일 그것들과 안부를 건네고 또 몇몇의 물건들과는 작별을 하는 과정 속에서 더 이상의 소비는 나에게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현재 내 곁에 남아있는 저 물건들과 끝까지 함께하며 잘 지내야겠다는 결심이 서서히 들게 되었다.
이제 그 시절에 소비했던 물건들은 오랜 시간이 흘러 각자의 역사가 새겨져있다
그리고 모셔두는 것이 아닌 매일 사용하는 생필품이 되었고 그러면서 나만의 철학이 그 물건들 안에 담기고 있는 중이다. 오래된 물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물건과 함께했던 지나온 시간이 떠오르고 때가 묻어 꼬질꼬질해졌지만 버릴 수 없는 것들 속에서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진짜 취향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소비 없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오랫동안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낭만이 있는 일이다.
예전 여행지에서 남들이 다 구매하니 나도 덩달아 구매했던 기념품, 한때 몇 개씩 구매했던 에코백과 텀블러들, 귀여우니까 또는 별로 비싸지 않으니까 죄책감 없이 구매했던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비롯해 고가의 신발과 가방 장신구들 모두 여전히 아직 내 곁에 남아 나와 함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가끔 기분전환을 위한 핑계로 또는 트렌드에 맞춰가야 한다는 순간의 충동심에 나도 모르게 소비를 저지를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닌 물건들은 빠르게 정리하고 반품하는 습관도 함께 생겨났다.
소비하는 즐거움보다 소비하지 않을 때의 즐거움은 더 오랫동안 남는다.
생활 속 기분전환을 위한 소비가 나에게 프레쉬한 감정을 선물한다면 그 선물은 하루 이상을 가지 못하지만 오래된 물건들과 함께하며 소비하지 않을 때의 즐거움은 우리에게 긴긴 안정감과 추억 그리고 히스토리를 남겨준다.
한 달에 일주일은 소비하지 않는 일주일로 ,너무 길다면 3일로 정해두고 실천해보면 좋을듯하다
더 많은 이들이 소비하지 않는 즐거움을 공유하고 내 곁에 남은 그들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