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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가의 꽃 May 01. 2022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밤에 산책을 나서면 여름이 오는 냄새를 맡을  있는 계절이 왔다.  더워지기 전에 부지런히 여름  잠깐 누릴  있는  계절을 즐겨야 하는데 나는 다시 무기력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불안 강박과 무기력증을 앓고 있다.

이제는 만성에 가까워져 깊어진 우울 안에서도  일상의 기쁨을 느끼기도, 삶의 의지를 다질 때도,  가끔은  나의 슬픔을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볼 때 도 있다. 여기까지 여러 경로의 도움을 받아왔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무기력증 앞에서는 매번 속수무책으로 발목에 추를 매단 채 어두운 바닷속으로 끝없이 가라앉는다

불현듯 드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라는 이 무서운 감정은 내가 간신히 지켜내고 있는 일상을  무너뜨리고 흔적도 없이 해체한다.

평범한 하루 일과들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생각에 잠식되기 시작하면 청소도, 씻는 것도, 운동도, 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다. 한때는 이런 증상이 나의 게으름 혹은 의지박약으로 치부해 어떻게든 벗어나버려고 했었다. 매일같이 울면서 공원 5km를 달리기도 하고, 온 집안을 다 뒤엎어 청소를 하고, 억지로 자리에 앉아 자기 계발을 위한 공부도 했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작은 성취감도 느꼈었고 무력감을 극복했다는 정복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후, 저 행동들을 하고 있지 않을 때의 나는 더 큰 자괴감과 죄책감에 흽싸여 더 깊은 우울의 우물 안에 빠져 머리끝까지 잠겨 버리곤 했었다.


사회는 우리에게 '일단 뭐라도 해봐'라며 끊임없이 우리를 채찍질을 한다.

맞는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작은 시도 하나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도 있다. 하지만 작은 무엇이라도 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저런 말은 매우 큰 공포감으로 다가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도 괜찮은 삶이라고 누군가가 나에게 말해주길 바랬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허락을 맡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과연 괜찮은 것일까.


나부터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했었기에 미친 척 혼자서 마라톤 대회를 참가해보고, 집안을 매일같이 모델하우스처럼 전시를 하고  내 안에 남아 있는 힘을 다 꺼내서 손해를 보더라도  하고 있는 일에 매진도 해봤다. 그 순간은 내가 잘 살고 있구나 하는 뿌듯함을 느꼈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신기루처럼 사라진 후의 나는 괜찮지가 않았다.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확신을 가지고 싶었고 언젠가부터 지금처럼 아무것도   없을   말을 스스로에게 주문처럼 외웠다.

'그래도 괜찮아'

'괜찮다'를 계속해서 읊다 보면  진짜로 괜찮아져 지금처럼 글을 쓸 수 도 있는 날 도 있고 어느 날은 아무리 외워도 괜찮지가 않아져 하염없이 침대 속에서 눈물만 흘릴 때도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억지로 간신히 나를 일으켜 세워 뭐라도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가만히 있다 보면 일정 시간이 지나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있는 괜찮아 져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한다.


어느 무력감은 기분전환을 위한 작은 행동을 통해서도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엄청 큰 무력감이라는 큰 공이 나에게 굴러올 때가 있다. 이제 그럴 때면 나는 그저 그 공을 바라본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정면으로 충돌해버리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을 살기 위하여, 무기력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하여, 나의 평범한 일상을 지켜내기 위하여  극복하는 대신  나는 가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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