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가의 꽃 Oct 04. 2022

달리는 길 위에서 만나는 나-2

이 길 끝에 아무것도 없다한들

5년 전 그해 봄밤 우연히 시작된 달리기는  그 후 나를  진지한 러너로 만들어 주었다. 5년 동안 3번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였고 일주일에 3번은 동네 공원을 달렸다.  이렇게 달리기는 나의 일상 속  단단한 루틴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달리기를 할 때 나는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달리는 내내 거리가 얼마큼 남았나를 계속 확인하며 뛰다 보니 달리는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숙제를 끝내야 한다는 기분으로  달릴 때가 많다.

어떤 날은 운동화를 신고 나가는 것 마저  귀찮고 힘들어  우거지상을 한채 집을 나선적도 있다.

달리기를 찬양하면서도, 뛰는 순간순간 밀려오는 지루함과 고통은 아무리 여러 번 뛰어도 무뎌지지 않는다.

'내가 어쩌다 달리기를 시작해서 매일 나를 이토록 시험에 들게 하는 걸까 ' 하는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고통보다 사람을 더 쉽게 무너뜨리는 건 어쩌면 귀찮다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고통은 다 견뎌내면 의미가 있으리라는 한 줌의 기대가 있지만, 귀찮다는 건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이 하찮게 느껴진다는 거니까. 이 모든 게 헛짓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차오른다는 거니까. -하정우 <걷는 사람 하정우>


 나  또한   달리는 것 자체가  하찮아지고, 목표한 거리를 완주하는 게  대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 행위 자체가 너무 지루하고 귀찮다는 생각이 밀려올 때가 있다.


어제는  달리다 중간에  포기하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갈까 하는 마음이 들만큼 몸도 마음도 힘든 날이었다. 다리에 추라도 달린 듯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발이 땅속으로 꺼질 것 같았다. 덩달아 마음도 같이 가라앉으며 귀찮아 죽겠네, 힘들어 죽겠네 라는 말을 계속 되뇌며 결국 눈물까지 핑돌아 도저히 마지막까지 달릴자신이 없었다. 달리는 이 순간이 마치 나에게 내려진 거대한 형벌 같았다


그러다 문득 요가 수련 중,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기억났다.

"현재 하고 있는 이 힘든 동작도 과거가 됩니다.

 지금 이 순간 내 몸, 내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그 순간이 지나면  그 동작은 과거가 되니 편안한 마음으로  수련하세요."

하던 동작이 너무 힘들어 언제 이 시간이 지나가나 하던 그때, 이 동작도 과거가 된다는 말에 그 순간이 조금 덜 힘들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동작이 힘들면 좀 더 내 몸에 집중하며, 이 순간도 결국 지나간다라는 마음으로 수련하기 시작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었다.


 달리기도 뛰는 순간은 괴롭지만 한 발짝 앞으로 나갈 때마다 내가 달려온 길은 과거가 된다.

달리는 현재 이 순간은 과거가  될 것이고, 다가오는 길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목표지점에  도착해있을 것이다.  '눈물이 날만큼 도저히 못 뛸 것 같은 지금도 지나가는 과거가 되니 너무 괴로워하지 말자. 이 순간을 조금이라도 편한 마음으로 달려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는 아주 천천히 달렸다. 남들이 나를 봤을 땐  그저 빨리 걷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난 걷지 않고 끝까지 오랫동안 달려 목표지점에 들어왔다.


 번뇌와 고난을 이겨내고 꾸역꾸역 억지로라도 해내는 이런  순간순간들이 쌓이다 보면  그 형벌 같았던 행위가, 때로는 하찮다고 생각한 이 행위가 나를 단단하게 지켜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기도 한다. 물론 그런 일말의 작은 기대로 꾸역꾸역 가봤는데 그 끝에  아주 대단한 뭔가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은 늘 우리의 얄팍한 기대를 저버릴 때가 더 많았으니까.


하지만 설사 그 끝에 아무것도 없다고 한들,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못하더라도, 고통스러워하고 귀찮아하면서도 달리던 그 순간의 나를 나 자신만은 오롯이 알고 있다.  

그 마음으로 그렇게 또 달리는 것이다.

달리는 길 위에서 만나는 나는 이렇게 천천히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이전 09화 달리는 길 위에서 만나는 나-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