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시절, 수업의 일환으로 미술관 인턴을 1년 가까이 했었다.
어느 작가님의 전시회를 준비하며 교육팀을 도와 전시 도슨트 지원생들을 위한 저녁 수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지원생들 대부분은 대학생 및 직장인들이었고 그들은 자신의 일과를 마치고 소중한 저녁시간을 이곳에 할애하고 있었다. 수업 첫 시간, 자기소개와 지원동기를 돌아가며 말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어느 여성 직장인 지원자분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 팍팍한 일상 속에서 잠시라도 예술 곁에 머무르고 싶어서 지원하게 됐어요."
나는 그 당시 소위 예술이란 것과 눈떠서 잠들 때까지 함께 하고 있었지만 그때의 나에게 예술은 동경의 대상일 뿐 곁에 있지만 가까워질 수 없는, 그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고 싶지만 왠지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영역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저 예술 어느 변두리쯤에서 서성이며 수업과 과제와 일에 허덕이며 하루하루를 버겁게 이어나가고 있던 일개 대학원생일 뿐이었다.
그 후, 꽤 시간이 흘러 그때 그 지원자분이 말하던 일상의 팍팍함을 몸소 느끼게 되었을 때쯤, 꽃이라는 새로운 동경의 대상이 나에게 찾아왔고 작은 꽃 몇송일지라도 이를 통해 무언가를 창작한다는 것은 바라만 보며 동경하던 예술과 달리 내가 직접 과정에 참여하여 결과물을 창조하는, 마치 내가 예술가가 된 듯 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예술이 별것인가?
그때 그 시절 막연한 심정으로 맴돌기만 했던 심오하고 고고한 예술이 아닐지라도 이제 나는 매일 크든 작든 감동을 느끼며 예술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스스로 창조하고 향유하는 미적인 모든 활동 또한 예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퇴근길 아무 일도 없지만 꽃집에 들러 그 계절의 꽃을 구입하고, 유리병에 꽃 한 송이를 꽂아 식탁 위에 올려 두며, 직접 요리한 음식을 예쁜 그릇에 옮겨 담아 지인들과 함께 나누고 , 손수 그린 작은 그림을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고 창가에 작은 식물을 올려 매일 보던 풍경을 조금 다르게 만들어보는 등 일상 속 우리가 행하는 작은 행위가 소소한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사소하지만 누군가에게 감동을 준다면 이것 또한 일상 속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예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는 예술을 한다라는 말 자체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을 만큼 어색하고 쑥스러웠지만 지금의 나는 매일 하루 일과 속에서 예술을 감상하고 예술가가 되는 경험을 한다.
그 예술은 꽃 몇 송이를 이리저리 배치하는 것에서부터, 집안을 정돈하고, 가구를 새롭게 배치하고,음식을 하고, 이 공간에 글을 쓰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남들이 알아주지 못하는 것들 일지라도 나는 의식을 치르듯 정성을 다하여 그 순간에 몰입하고자 한다. 특별하거나 거창한 장소가 아닌, 현재 머물고 있는 이 공간에서 매일매일 스스로가 좋아하는 어떤 일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무아지경의 상태에 이르며 예술가에 가까워지는 경험을 한다.
이처럼 일상 속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매 순간이 예술이 될 수 있을 때, 우리는 좀 더 자주 감동받고 행복하며 늘 예술 곁에 머무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오늘부터라도 나의 작은 행위가 예술이 될 수 있도록 좀 더 의식하고 집중하여 몰입해보는 건 어떨까.
계란 프라이를 하나 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