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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가의 꽃 Oct 04. 2022

달리는 길 위에서 만나는 나-1

그해 봄밤, 시작된 달리기

5년 전 35살이 되던 그 해,  나는 한없이 웅크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저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기도하며 흘러가는 시간을 속절없이 바라만 보았다.


새해의 분주함과 어수선함이 지나가자 눈치 없는 봄이 찾아왔다. 따스한 햇살이 잔인하게만 느껴졌다.

발을 딛는 순간 땅속으로 꺼져 버릴 것 같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봄날의 밤은 콧등을 간지럽히고 사람의 마음을 괜히 설레게 하지만 나에게 찾아온 그해 5월의 봄밤은 텁텁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집에만 있기가 답답해 밖으로 나가 오랜만에 공원을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씩씩하게 걷고 있었다. 자전거가 반대편에서 달려오고 곳곳에는 맥주를 마시며  그날 밤을 즐기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난 그들 사이에서 떨어진 외딴섬처럼  낯선 밤공기를 마시며  텅 빈 눈빛으로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벚꽃이 흐드러진 그날 밤 공원은 사람들로  점점 더 붐비기 시작했고  결국 난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행인들과 부딪힐까 어깨를 한껏 움츠린 채  옆으로 비켜가며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난 그들 사이를 빠져나와  나도 모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며 한 사람 두 사람을 제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걷는 것을 멈추고 뛰던 순간, 봄밤의 따스한 바람이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몸은 무거웠지만 찰나의 그 바람이 나를 들뜨게 했다. '어라 '싶은 마음에 조금 더 달려볼까 하고  아주 느린 속도로 한 발짝 한 발짝 뛰기 시작했다.  역시나 1분도 못 뛰고 헉헉 거리며 멈춰 섰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그 많던 사람들이 저 멀리 아득히 보였다. 내가 선두에 서있는 듯한 묘한 기분도 들었다.


 빨리 걷는 것은 했어도  달리기는 고등학교 체육시간 이후로 처음이었다. 심지어  오래 달리기 시험을 볼 때 거의 꼴찌로 들어왔던 내가 아니었던가.


 달리는 것은 내게 그저 고통이었다. 그런데 내가 뛰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날 저녁은 일단 빨리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잠깐 달리는 건 어찌했다 하더라도 본격적으로 달리는 건 아무래도 자신이 없고 쑥스러웠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 속에서 뛴다는 건 괜히 주목만 받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 밤 누워서 달리기를 검색창에 입력했다. 그리고 몇 개의 달리기 어플을 다운로드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사람이 조금 한적한 산책로로 향했다.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는 때를 숨죽여 기다리다  거리가  한산해지자 드디어  첫걸음을 내딛고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순간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달리기 전에는 누가 내가 뛰는 모습을 볼까 두려웠는데  뛰기 시작하자 그러한 생각도 사라졌다. 그저 지금 달리는 이 순간의 나만 존재했다.   

그날 밤의 공기의 냄새가 아직도 기억에 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기도하던 내가

그렇게 달리기라는 것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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