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업무적으로 무리한 부탁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답변을 해야 상대방도 나도 곤란해지지 않고 융통성 있게 그 상황을 잘 마무리할 수 있는지는 나에게 늘 큰 숙제였었다.
인간관계 처세술에 관한 책과 영상들을 보면 본인이 불편하고 내키지 않는 일은 처음부터 확실히 거절할 수 있어야 장기적으로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그러한 충고들을 숙지하며 누가 어려운 부탁을 하면 용기 내어 "NO"를 외치기 시작했다. 한 번이 어렵지 두세 번부터는 망설이지 않고 거절을 잘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당당하던 "NO" 안에 내가 갇혀버린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누군가의 부탁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내키지 않고 힘들 것 같다고 느껴지면 길게 생각하지 않고 거절을 하고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도 나에게도 혹시라도 생길지 모르는 물리적 , 감정적 소모를 줄이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믿었다.
그러다 보니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그 어떠한 '소모'도 겪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소모'는 다른 말로 상처가 될 때도, 불편함이 될 때도 있었다.
나는 우습게도 무슨 일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이 세상 안에서 어떻게든 나를 소모하지 않고 외부로부터 나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NO"를 방패 삼아 그 뒤에서 숨으려고만 했다.
NO를 앞세운 삶은 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불편한 일은 하지 않는, 어쩌면 내가 원하던 소모를 최소화하는 심플한 삶이었다. 나의 삶은 그 바운더리 안에서 안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NO라는 외침이 그어놓은 그 바운더리 안에 갇혀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안전할지는 몰라도 그 울타리 안에서 나는 변화를 두려워했고 뜻밖의 가능성과 기회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서로가 불편해지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택했던 거절과 하지 않았던 시도들이 나의 발목을 잡고 아래로 아래로 나를 끌어내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며 과연 이게 맞는 것일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얼만전부터 나는 일단은 "yes"를 실천 중이다.
일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조금 감정적으로 내키지 않아도 "yes"
조금 몸이 힘들어진다 해도 "yes"
를 일단 외쳐보는 중이다.
일단은 해보고 난 후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이 되면 그때 NO라고 말해보려고 한다.
물론 그것이 비합리적이고 상대방과 불편해질 수 있다 하더라도 내가 "yes"라고 외쳤을 때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는 것을 조금씩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내 능력 밖의 일이고 힘들어 보여 도저히 내키지 않았던 일도 막상 시작하니 막연히 예상만 했던 불편한 '소모'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조금은 무리한 부탁을 해도 "네 일단은 해볼게요"라고 답하기 시작하자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생각지도 못한 때에 그 누군가로부터 받기도 했다.
거절을 잘하지 못하면 '호구'가 되기 쉽다며 사회는 우리들에게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사회생활을 하며 그것은 매우 중요한 지침이었다.
하지만 그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몸을 사리고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스스로들을 방어하기 위해 그동안 그 많은 거절을 해왔던가. 그리고 그 거절을 위해 우리가 받은 스트레스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웠던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거절을 해왔는지 이 실천을 하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이래서 못하고 저건 저래서 할 수 없고..." 거절 투성이의 삶이었다.
무례한 부탁 또는 윤리적, 법적으로 허용 불가능한 범위의 일이 아니라면 일단은 받아들여보는 삶도 그동안 우리가 그토록 지켜내려고 애썼던 무거운 자아를 조금 가벼워지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동안의 수많은 거절을 통해 경계를 쳐놓았던 내 삶의 바운더리가, 나의 인간관계가 또 다른 방향으로 확장될 수 도 있지 않을까
상처받고 불편해짐을 감수하더라도
나는 이제 일단은 "yes"를 외쳐보려고 한다.
"좋아요 , 일단 해볼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