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처럼 스며드는 설악의 빛과 색
붉고 노란 단풍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과 바람,
그 속에서 느낀 가을의 색채
뭐가 그리 급할까요.
왜 그렇게 황급히 떠나려는 걸까요.
붙잡고 싶었습니다.
찰나 같은 가을날이 그려가는 흔적을 따라,
끝내 쫓아가고 싶었습니다.
강원도 설악산 오색 주전골.
그곳에 지금, 가을이 머물러 있습니다.
자동차 시트에 몸을 기대자마자
늪에 빠지듯 깊은 잠 속으로 스며듭니다.
짧은 가을날을 놓치지 않으려고
몇 주 전부터 마음을 담아 준비한 산행이었지요.
새벽에 일찍 나서야 한다는 부담감,
아침부터 스산하게 감도는 찬 공기,
가을을 빨리 만나야 한다는 조급함,
단풍의 시작과 함께하는 수많은 인파,
조금이라도 다른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긴장감.
그 모든 것이
자동차에 몸을 싣는 순간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며
깊은 잠으로 데려갔습니다.
얼마 후, 굽이굽이 이어지는 고갯길.
가다 서다 반복되는 속도감에 잠에서 깨어
순간, 외마디 비명을 내지릅니다.
익숙하면서도 처음인 듯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성능 좋은 카메라 렌즈로 들여다본 듯,
가을은 선명하고 깊게 번져 있었습니다.
폭포의 힘찬 물줄기를 따라
걸음은 성큼성큼 빨라집니다.
폭포의 소를 지나고,
골짜기의 풍경이 지나고,
소나무 뿌리내린 기암괴석이 지나갑니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은
감빛으로 수 놓여 있었고,
한낮의 햇살은
투명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나누어 놓았습니다.
마치 내 영역과 네 영역을 따지듯이.
그 섬세한 경계 속을
인파에 섞여 오래도록 나아갑니다.
개울 건너편 누런 절벽 한 구석.
손으로 그린 듯 짙은 검은 동굴 하나가 보입니다.
혹시라도 가을이 그곳으로 숨어버릴까,
사라지지 못하게 막고 싶습니다.
걸음을 늦추고,
바위 위에 멈추어 나직이 속삭입니다.
“가지 마. 조금만 더 있어 줘.”
붉게 물든 잎새들이
오늘따라 더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오색찬란한 아름다움은
어느새 집착이 되어
내 눈을 붙들어 둡니다.
물살이 떨며 흐르는 소(沼) 옆에
내 모습 하나를 그려 넣습니다.
겹겹이 이어진 산봉우리들은
오랜 세월 한자리에서
가을이 흩뿌리는 몸짓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파란 하늘을 이고 선 오색석사 지붕 위에도
가을은 고요히 내려앉아 있습니다.
가을을 붙잡고 싶어 찾아간 주전골.
그가 머물다 간 흔적을 따라
빛깔은 점점 짙어지고,
봉우리마다 조금씩 다른 색조를 드리웁니다.
노랑으로,
주황으로,
붉은빛으로...
마침내 산 전체가
빛의 바다로 타오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