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리건 코스트 - 여름의 캐논 비치
8년 전의 바다와 8년 뒤의 바다가 마주친 곳.
시간이 쌓아 만든 그리움과 슬픔의 해변.
8년 전 여름
조그마한 사구,
내게는 꽤 거대한 사구를 기어올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비릿한 냄새, 머리칼에 스며든 바람으로
바다가 가까워졌음을 알았지만
아직 눈앞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구, 즉 모래 언덕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죠.
모래는 자꾸만 흘러내리고,
발이 미끄러지며 나도 함께 흘렀습니다.
그래도 연신 기어올랐습니다.
언덕 너머에 무언가 설레는 일이
기다릴 것만 같았으니까요.
몇 번이고 오르고, 흘렀던 끝에
사구 너머의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순간, 숨이 막히는 듯했습니다.
먼저, 물기 어린 바람이 볼을 스쳤고
곧 머리칼이 흩날렸습니다.
해는 찰랑이는 바닷물에 곧 잠길 듯했고,
바다는 하늘의 금빛을 그대로 닮아 출렁였습니다.
압도적인 분위기의 바위섬 위엔
갈매기들이 모여 밤을 기다리고 있었고,
너른 모래밭에는 벌겋게 타오르는 태양과
그것을 삼키려는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가슴속에서 차오르는 감정을 어찌할 수 없었거든요.
그리고는 어린아이처럼 달려갔습니다.
모래언덕을 미끄러져, 바위섬을 향해,
곧 바닷물에 잠길 해를 향해.
그때 직감했습니다.
이곳이 '내 여름'이 될 거라고.
이 풍경은 앞으로도 내 가슴속에 살게 될 거라고.
아주 오래도록,
그리움의 형태로 남게 될 거라고.
낮의 영역과 밤의 영역이 바뀌는 순간,
그 사이의 빛과 공기 속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습니다.
2023년 여름
과거를 생각하는 일에는 슬픔이 따릅니다.
힘들게 살아낸 시간들뿐 아니라
즐겁고 아름다웠던 기억마저도
어느새 그리움의 무게로 바뀌어버렸습니다.
그건 아마,
시간이 쌓일수록 그리움도 깊어지기 때문일 겁니다.
오래도록 그리워한 '내 여름'을 다시 찾아 나섰습니다.
한국에서 시애틀까지 비행기로 11시간,
시애틀에서 포틀랜드를 거쳐
오리건 코스트까지 차로 4시간 30분.
멀고도 먼 여정을 거쳐 다시 도착한 곳입니다.
비치 특유의 공기,
바위섬, 태양,
그리고 하늘에 걸린 철사 같은 초승달까지,
8년 전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내가 왜 여기에 서 있는지,
이곳을 얼마큼 그리워했는지,
그리움으로 인해 만들어진 슬픔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해 왔는지
가만히 속삭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캐논 비치는
그저 아름다웠고,
여전히 시간을 쌓으며
또 다른 슬픔을 만들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