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막바지,
곧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입니다.
산꾼들은 아이젠과 스패츠를 챙기고,
동물들은 겨울을 날 먹이를 모으며,
나무들은 다음 생을 위해 겨울눈을 준비하느라
소리 없이 바쁩니다.
저는 겨우내 먹을 김치를 담그느라 바빴습니다.
눈부신 토요일,
서울 둘레길을 걷거나 라이딩을 하며
여유를 즐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김장은 되도록 빠르게 끝내려고 마음을 다잡았지요.
하지만 일이 예상보다 늦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서울까지 가기엔 시간이 모자랐고,
라이딩이나 서울 둘레길 산책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신,
집 근처에 자리 잡은 문학산이 떠올랐습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짧은 시간에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산.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문학산으로 이어졌습니다.
문학산 내 ‘학산 둘레길’은
떨어진 나뭇잎과 차가운 바람,
가을 향기로 가득 차 있었고,
부드럽게 지저귀는 새들이 그 사이를 오갑니다.
생을 마친 나무가 만든 넓은 흙 계단을 밟으며
사뿐히 올라가는 길,
사람들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고,
자연과 동화되어 그 일부가 되었다가,
숨바꼭질처럼 서로를 찾아 헤맵니다.
참 가볍게 나선 길이었습니다.
둘레길을 걸을 생각에 신고 나온 러닝화,
도시를 누빌 생각으로 입은 레깅스,
물 한 병 없는 크로스 바디 백을 메고,
오늘도 도심이 아닌
산으로 발길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하나하나가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주 작은 떨림 속에서도
생명은 묵묵히 견디고 있었고,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모습에
참, 살아간다는 게 이런 거겠구나 싶었습니다.
정상에 오르니,
확 트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차가운 공기 위로
부드럽게 스며든 석양빛이 퍼져갑니다.
바람에 몸을 떨던 나뭇잎의 움직임은
더 이상 애처롭지 않습니다.
그 소리는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자연의 힘찬 노래임을 알기에, 슬프지 않습니다.
11월의 짧은 해는 여전히 낭만적인 빛을 발산합니다.
애써 가을을 보내고,
곧 찾아올 겨울을 견디면,
찬란한 봄의 새싹이
아침 햇살처럼 번지겠지요.
바람에 떨던 나뭇잎은 이미 사라진 뒤였습니다.
저는 새잎을 기다리며
다시 따뜻하고 부드러울 그날을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