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연
절연이라는 한 단어에서 파생되는 생각들,
단어 하나인데, 갑자기 무수한 대화들이 떠오른다.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이 절연했는가. 당시에는 대개 그 사람의 잘못으로 절연, 했으나 지금 생각하면 과민 반응한 내 지분도 그에 못지 않다.
당장 몇 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절연에 대해 굉장히 신속하게 생각했다. 내가 굳이 '신속'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는 건 '가볍지 않은' 사고 회로를 거쳤다는 걸 강조하기 위함이다. 가볍게 관계를 끊지 않았다.
신속하게 생각하고 결정내린 절연은 몇 가지 기준을 토대로 진행됐다. 현재와 미래의 내 옆에 두고 싶은 사람인가, 뒀을 때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조금이라도 주는 사람인가. 그 사람 자체의 가치도 물론 중요하지만, 관계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와의 케미가 주는 가치다. '내 사람'이라고 불리는 집합 안에 넣어놓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나 사이의 끈끈함, 유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 사람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의 방식이 나와 케미가 잘 맞는지, 내가 그 방식을 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사람을 쉽게 평가하려 하지 않는다. 실제로 사람을 첫 인상만으로 잘 파악하지 못하는 편인데, 쉽게 말해 사람을 잘 못 보는 편이다. 그런 나를 몇 년간의 경험을 통해 알았기 때문에 나는 사람을 오래 두고 보려하고, 오래 두며 다양한 상황에서의 대처 방식, 행동 양식을 빅데이터화해 평가한다. 그러다보니 충분한 빅데이터가 없는 경우에는 그 사람에 대해 중립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해당 태도가 누군가에게는 현명하게, 누군가에게는 비겁하게 비춰질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다시 돌아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그 사람과의 절연 여부를 '신속하게' 결정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머리가 차가워지는 시간이다. 내 가장 중요한 자산인 관계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편리하지만 다르게 보면 책임감이 막중하다.
차분히 돌아본다. 내가 억지로 절연한 관계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노력하지 않음에 따라 자연히 절연된 관계. 얼마나 많은 관계를 흘려보냈는가. 이건 놓친 게 아니다, 애초에 잡지 않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