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자가 치료법

by 차안빈

내가 ASMR을 듣기 시작한 건 불면증과 우울감에 좀비처럼 다니던 2018년 여름쯤이었다.


꽉 채운 시간표, 랩실, 동아리, 창업팀, 학생회, 매주의 봉사활동으로 몸을 아무리 바쁘게 움직여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맘때쯤 하나둘씩 휴학했던 친한 친구들의 부재가 내게 큰 영향을 미친 거다. 그맘때쯤 알게 된 ASMR은 지쳐있던 나를 쉬게 해주는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반복되고 잠 오는 소리

ASMR을 듣지 않는 내 친구가 내린 정의다. 하지만 이건 다양한 ASMR의 개성을 아직 몰라서 내린 정의다. 유튜버들마다 추구하는 소리의 질과 반복 주기, 심지어는 쓰는 마이크나 브러쉬마저도 다르다. 소비자인 나 역시도 매일매일의 기분에 따라 듣고 싶은 유튜버가 바뀐다. 비유하자면, 날씨에 따라 노래 플레이 리스트가 바뀌는 것과 같다. 하지만 노래에 있어서만큼은 막귀였던 난 이제 더 이상 아무 소리나 듣지 않게 됐다.


나는 ASMR시장의 소비자가 되면서 솔직한 사람이 된 것 같다. 내 호불호를 확실히 하게 됐다.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소리, 물건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콘텐츠들은 항상 신기하고 재밌다. 그것들이 내 심리적 안정감과 숙면을 가져다주니 고맙기까지 하다. 막연히 내가 싫어한다 생각했던 소리가 내 취향이었음을 알게 됐을 때의 황당함은 내 이십몇 년 인생을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사소한 것에서 기분 좋음을 느낄 수 있음을 알게 되니, 예민함이 줄었다. 그리고 바뀌는 내 기분에 따라 리스트를 선택한다는 자체로 나 자신에 솔직해지는 걸음이 됐다.


ASMR의 특성상 차분함이 기저에 깔린 경우가 많다. 그 차분함을 좋아한다. 그 차분함으로 자신의 주관을 몇만 명 앞에서 말하는 그들을 좋아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너무 차분해져 우울할 때에는 수다 ASMR을 선택한다. 그 수다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가치관 얘기를 듣는다. 각자의 가치관에 따른 영상을 만들고, 내면의 문제를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응원하게 된다. 긍정적인 얘기들은 그 나름대로 내게 위로가 되어 잔상처럼 남는다. 편집되고 짜여 있는 게 뭐가 중요하겠나. 그 사람들이 만드는 콘텐츠가 좋아서, 그 사람이 좋아서, 팬으로 남아 있는데. 그래, 나는 ASMR을 덕질하는 중이다.


*ASMR 관련 보카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는 자율 감각 쾌감 반응이라는 신조어다. 트리거(trigger)는 ASMR 콘텐츠를 만들 때 사용되는 도구들을 말한다. 물리적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팅글(tingle)은 ASMR이 주는 기분 좋은 소름을 말한다. 특정 감각이 뇌를 자극하면 신체 뒷면의 신경세포가 일을 해서 귀르가즘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이는 제니퍼 앨런이라는 인물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으로, 아직 학술적으로 증명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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