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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ccoli pen Oct 14. 2021

낮잠 (세 살, 2월)

여섯 살의 스케치북


딸아이는 집에서도, 어린이집에서도 낮잠을 자는 일이 거의 없었다. 집에서 내가 낮잠을 재우려고 같이 누워 토닥이면 나만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어떤 때는 잠을 자기는커녕 차고 있던 기저귀에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을 잔뜩 만들어놓고 거실로 뛰어나가 혀를 내밀고 씩 웃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한숨을 내쉬며 낮잠을 좀 자 준다면 나도 잠깐 쉴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에 야속하기도 했다. 아마도 밤에 깨지 않고 충분히 잠을 자서 낮잠까지 잘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아이가 낮잠 자는 모습을 그리다니 무슨 생각이었는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친구들이랑 같이 누운 거야.”라고 대답했다. 어린이집에서 낮잠 시간에 다 같이 모여 누운 장면을 그린 모양이었다. 그렇다. 꼭 낮잠을 자는 것이 아니어도 그 시간이 인상적일 수 있겠지.

대부분의 어린이집에서는 이렇게 개인 이불을 죽 펴고 나란히 누워서 잠을 잔다. 딸아이는 낮잠을 거의 자지 않았지만, 낮잠 이불은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빨아서 월요일 어린이집 등원 길에 함께 가져갔다.

그 시간에 친구들과 누워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형제가 없이 외동인 아이에게 여러 친구와 불을 끄고 누워 있는 그 시간은 특별한 놀이처럼 느껴졌을 수 있겠다. 게다가 어린이집에서도 딸아이의 낮잠을 포기했으므로 꼭 잠을 자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없다 보니 낮잠 시간이 더 즐거웠을 것이다. 함께 누워있는 이 흥미로운 시간은 다른 친구들이 꿈나라로 여행을 떠나가면 바로 끝이 났다. 친구들이 새근새근 잠든 모습을 뒤로 한 채 선생님 손을 잡고 조용히 방문 밖으로 나온 아이는 혼자 다시 놀이를 시작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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