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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람 Mar 02. 2023

새로운 시작

새로운 학년의 시작.


방학 첫날부터 반배정 언제나오냐, 개학하면 준비물이 뭐냐 묻던 첫째는 개학 전날인 어제까지도 준비물을 챙겼다.

며칠 동안 가방을 이리저리 들고 다니며 준비물을 넣었다 뺐다 하더니 어제저녁이 되어서야 사인펜 사러 가야 한다며 징징거렸다.


응? 이미 다 준비한 거 아니었어?

분명 다 준비했고, 어제까지 확인했을 때는 있었는데 지금 보니 아무리 찾아도 사인펜이 없단다.

아.. 참을 인… 개학 전 날 화내기 싫은데, 나 진짜 좋은 엄마 하려고 하는데 안 도와주네^^

아무리 찾아봐도 도저히 사인펜은 안 보이고, 당장 내일이 개학이니 급한 마음에 집을 나섰다.

마트에 가서 사인펜만 사려했는데 색연필도 새 거를 사면 좋겠다고 하고, 연필뚜껑도 새거 사고 싶고, 지우개도 또 사고 싶대서 그럼 용돈으로 사라고 했다.

아.. 새거 좋아하는 건 또 누굴 닮아서… (응? 나를 닮아서^^)


사실 작년에 썼던 학교준비물을 방학하면서 그대로 들고 왔길래, 잘 뒀다가 내년에도 쓰면 좋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그러겠다고 약속하고 정리해 두었었다.

그런데 개학을 앞두고 가방을 싸고 또 싸다 보니 아무래도 새것을 갖고 싶었나 보다. 오늘에서야 집정리를 하다 보니 찾은 사인펜, 색연필은 방 한편에 살짝 숨겨져 있었다.

보자마자 순간 분노가 다시 차올랐지만, 아홉 살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새 준비물을 가져가고 싶었으면 싶어 다시 참을 인을 새겼다.


그래... 뼛속까지 내 딸인데 내가 왜 너를 이해하지 못했을까.


마트로 향하는 길에 남편이 “그냥 처음부터 새 걸 사주지 그랬냐”는 말에 순간 발끈했지만, 어차피 사줄 거 그냥 미리 사줄걸, 괜찮다 해서 정말 괜찮은 줄 알았는데, 역시 ‘너도 나처럼 한 번만 묻지 말고 여러 번 물어야 하는 스타일이구나’ 했다.


이렇게 너를 또 알아간다.


집으로 돌아오는 와 준비물을 챙기며, 새 학기 첫날 새 준비물을 가지고 등교하고 싶은 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사과하고, 앞으로는 너의 마음을 미리 정확하게 말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새것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매번 새로운 것을 사는 건 낭비가 될 수 있다고, 그리고 이렇게 전날 급하게 준비하게 하면 서로가 힘들다고 말했더니 딸아이도 알겠다고 했다. (다음엔 얄짤없어^^)


아이는 개학첫날 입을 옷과 책가방을 정리해 두고 평소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한 달 반의 겨울방학이 드디어 끝났다.

방학 시작 전에는 정말 어떻게 또 한 달 넘게 아이와 있을까 걱정했는데, 방학 끝자락에는 아쉬울 정도였다.

조금 더 시간이 있다면 여행도 가고 더 많이 놀았을 텐데 싶어서.

이런저런 생각에 나 혼자 새벽까지 잠못이뤘다.


방학 동안 늘 늦잠을 잤던 터라 긴장했는데, 아이는 “학교 가야지” 한마디에 아침기상도 가뿐하게 했다.

등교 직전까지 친한 친구 중에 같은 반 된 친구가 한 명도 없다며 걱정하는 딸아이에게 새로운 친구들도 분명 아주 멋지고, 새로운 담임선생님도 아주 좋을 거라고 긍정의 기운 듬뿍 넣어주며 힘차게 배웅했다.


내일 개학하는 둘째와 집으로 돌아와 방학의 잔재가 묻어나는 집안 곳곳을 치우고 자리에 앉아 글을 쓰는 이 시간이 참 평화롭다.


3월 2일. 드디어 새 학년이 시작됐다.

너도 2학년, 나도 2학년. 올해는 작년보다 좀 더 여유롭고 안정적인 한 해를 보내면 좋겠다.


온전한 나의 시간은 둘째도 정상등원하는 다음 주에 시작되겠지만, 이미 마음은 온전히 자유를 누리는 내가 되었다.

차 한잔 마시며 이 기쁨을 즐기고 여유롭게 오늘을 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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