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보람 Jul 04. 2023

내 이름은 김보람


람보!!! 두두두두!!!

요즘 새로 알게 된 언니는 나만 보면 이름드립을 친다.

와 정말 초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 들어보는 이름드립이라 ‘너무 신선해!’

생각해 보니 어릴 때 이름을 말하면 당연하게 람보를 찾았었는데, 이제는 내 이름보다 아이이름이 먼저 나오는 삼십 대를 사느라 그토록 지긋지긋했던 이름드립조차 잊고 있었다.

이젠 웃으며 이름드립을 받아줄 수도 받아칠 수도 있는 서른일곱이 되었지만, 어린 날 나의 이름은 극도의 스트레스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름드립을 치지 않나, 여기저기 흔한 이름이라 자꾸만 다른 사람으로 오해하질 않나.

한참 싸이월드가 유행하던 시절에 같은 해에 태어난 ‘김보람’을 검색하면 최소 589명이 나올 만큼 흔했고, 이름 같은 친구가 같은 학교에 7명, 같은 학년에 4명, 성까지 같은 친구가 2명이나 있을 정도였으니…

어느 해에나 유행하는 이름이 있다지만, 유독 너무너무 유행이었던 내 이름은 김보람.

그래도 다행인 건 한참 한글이름이 대세였을 때라 다들 한글이름이라는데 나는 특별하게 한자이름이었다는 것.

보전할 보에 아름다울 람.

아름다움을 보전하라는 건가… 보전할 만큼 아름답다는 건가…

뭐 늘 내 마음대로 보전할 만큼 아름다운 사람이라 해석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문제는 ‘람’ 자의 한자가 이름에는 잘 쓰이지 않는 한자였다는 점.

평상시에는 별로 쓰일 일이 없어 잊고 지내다가, 공문서 작성할 때마다 툭 튀어나와 나를 괴롭혔다.

특히 입시원서접수 할 때, 교무실에 얼마나 불려 다녔는지…

아무리 찾아도 한문이 나오지 않는다며, 도대체 무슨 한문이냐 물으면 물어물어 찾아 가져다 드리곤 했다.

왼쪽부수 계집녀 하나에 나무목 두 개(수풀림). 그래서 우리 집에 딸이 둘이다. 뭐 이런 말도 있었는데, 어쨌거나.

한글문서에서 찾아져야 갖다 붙일 텐데 그게 안되니 네가 어찌해보라고 나 몰라라 하는 걸 겨우겨우 계집녀와 수풀림을 찾아 자간을 좁히고 장평을 줄여 겨우겨우 글자를 만들어내서 원서를 접수하곤 했다.

그러고 보니 그 흔한 이력서 한 장조차 쓸 일 없는 요즘은 내 이름을 잘도 잊고 살았다.

도대체 서른일곱이라는 나이는 어떻게 된 건지, 잊고 사는 것이 참 많다.

뭘 하고 사는지, 뭘 하고 싶은 건지, 내가 가는 길이 이 길이 맞는지, 잘 가고 있는 건지 조차 알 수 없는 서른일곱의 김보람은 대체 어디쯤 부유하고 있는 걸까.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데, 남길 이름조차 잊고 사는 나는 대체 어디쯤 가고 있을까.

평생 이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참 다행인 건 내가 부유하고 있는 이곳은 참 좋은 제주라는 것.

행선지를 정하지 않고 떠다닐 수 있는 이곳이 제주라서 참 좋다.

천천히 자유롭게 부유하다 보면 내 이름 길이 남길 어느 날도 오겠지. 뭐 꼭 굳이 남기지 않아도 괜찮지만.

우선 좀 더 여유롭게 제주를 부유해야겠다. 내 이름은 김보람을 되새기며.



작가의 이전글 안녕, 나의 맥시멀라이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