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말. 여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애매한 계절의 문턱을 넘으며, 나는 공중에 흩뿌려진 체력과 에너지를 되찾아야 했다.
추석을 기점으로 바빴던 일정을 정리하고 10월부터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기로 했다.
무작정 쉰다고 체력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 운동을 시작해 볼까?
너무 과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운동은 지레 겁먹고 시작조차 하지 못하겠고, 내게 맞는 낮은 허들의 무언가를 찾다 보니 그 끝에 ‘요가’가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고되게 하는 운동이 아니라 부담이 적었고, 집 근처에 요가, 소도구필라테스, 바른 자세교정운동을 번갈아 진행하며 요일과 시간을 지정해 갈 수 있는 요가원이 있다기에 바로 등록했다.
결혼 전 잠시 다녔던 요가원이기도 하고(내가 다녔던 곳은 다른 지점이지만, 최근에 원장님이 이곳에 본점이 오픈했다고 한다) 아주 생소한 느낌은 아닐 거라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요가.
추석연휴가 끝나자마자 요가원으로 달려갔더니, 첫 수업은 아직 연휴일정이 끝나지 않은 수강생들이 많아 소규모로 진행되었고, 긴 연휴 끝 오랜만의 수업인지라 가볍게 시작했다. 럭키^^
눈앞에 펼쳐진 요가원 창밖으로 보이는 제주의 푸른 바다와 등뒤엔 한라산과 고근산이 받쳐주는 곳에서 요가를 한다니. 그저 생각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듯했다.
처음에는 기분 좋게 가벼운 동작들로 시작해서 ‘그래, 이 정도 딱 좋네! 뭔가 잡생각도 나지 않고, 온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몹시 시원하다. 나 요가 진짜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싶었다.
그런데 갈수록 점점 강도가 세지는 요가동작들로 정신이 혼미해지며 ’아, 뭔가 잘못 생각했나 보다. 난 왜 요가가 땀 뻘뻘 안 흘리는 운동이라는 생각을 했지? 나도 모르게 팔다리가 제어가 안될 만큼 후들거리고, 땀이 비 오듯 흐르면서, 그냥 환불해 달라고 할까? “할 즈음 첫 수업이 끝났다.
와, 나 정말 몸이 많이 굳었구나. 유연하지도 않았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는데 진짜 문제가 심각하네. 포기해야 하나 ’ 못해도 고‘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계단을 내려오면서도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으며 ‘지금이라도 시작해서 망정이지, 계속 안 하고 이렇게 살다 간 나중에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없을 것 같아. 못해도 고다!’ 다짐했다.
가볍게 생각했던 주 3회의 요가수업도 갑자기 밀려드는 10월의 행사로 다 채우기 어려웠지만, 주 2회 이상은 꼭 가야겠다 마음먹고 한 달을 버텼더니 12회 중 10회의 만족스러운 실적이 나왔다.
아침마다 갈까 말까 고민하다, 그래도 가야지 결심하고 집을 나서면, 어설프게나마 한 시간을 꽉 채우고 해냈다는 기쁨과 기분 좋을 만큼의 미세한 근육통을 가지고 돌아오는 게 참 좋다.
하루에 10분조차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던 내가, 요가를 통해 내 몸과 마음을 한 데로 모으는 시간을 한 시간이나 가지게 되었다.
뭐든 시작하면 끝을 못 맺는 것 같아 낮아진 자존감이 매일 조금씩 채워져 간다.
처음엔 안되던 자세가 회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조금씩 가능해지고, 손끝이 닿는 위치의 범위가 늘어나는, 나만 알 수 있는 이 작은 성취와 만족에 취한다.
이렇게 한 달. 나에게 요가새순이 살짝 돋았다.
가지치기로 정돈된 일상에 요가새순을 더했더니 온몸에 생기가 돋는다.
3개월 후 재등록을 할 즈음엔 요가새순이 쑥쑥 자라 요가새싹이 될 수 있을까.
올 연말 요가새싹으로 거듭날 나를 기대하며.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