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말 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딱히 무슨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지만, 그냥 문득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아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라기보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요즘이랄까.
하루가 아니라 한동안 지속되는 무기력함이 나를 짓누르는 중이었고, 그중에서도 정말 정말 너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딱 오늘이었다.
이런 날의 귀차니즘을 이겨내고자 돈기부여 한 요가수업을 정말 겨우겨우 마치고 집에 왔는데,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정돈되지 않은 집안이 나를 반겼고, 정말 손하나 까딱 하고 싶지 않았다.
으어어어어! 도저히 집에선 못 견디겠어.
겨우 붙잡은 돈기부여의 힘을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놓쳐버린 기분. 어쩌면 놓고 싶었는지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점심약속을 잡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왜 식욕은 멈추지 않는 건지.
친구에게 달려가는 차 안에서 전화를 걸어 친구에게 건넨 한마디는
”나 닭갈비가 먹고 싶어…. “ 였다.
친구네 동네로 가서 닭갈비를 먹으며, 일하랴 애보랴 집안일하랴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것 같다는 친구에게 “그래도 이렇게 밥 한 끼 함께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야. 이거라도 감사하자 “ 라며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전했다.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것 같다는 친구에게 무기력을 핑계로 한탄하려니 어딘가 마음이 불편했다. 이제 정말 이런 날 밥 한 끼 함께하며 무기력을 논할 육아동지가 없다. 다들 일터로 돌아갔다. 모두들 바쁜데 여전히 전업맘으로 남은 나 혼자 무기력을 논하려니, 사치처럼 느껴졌다.
‘무기력하다 한탄할 시간에 일이라도 하지 그래?’ 라며 속으로 욕을 하고 있을지도.
그래, 누가 들으면 참 배부른 소리겠다.
서른일곱의 내가 이렇게 살고 있을 줄이야.
지금의 내 모습이 후회되거나 싫은 건 아니지만, ‘뭔가 부족하다, 아쉽다’ 느끼는 건 사실이다.
대학시절 만들어 놓은 내 인생곡선의 서른일곱은 애둘낳고 복직해서 열심히 일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니(아 이젠 돌아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일터를 찾아야 할 판이다) 인생의 낙오자가 된 기분이랄까.
그렇다고 지금 당장 일하러 갈 상황도 아니라 더 답답하다. 당장 다음 주에 아들의 과잉치 수술이, 다음 달에 딸의 편도수술이 예정되어 있어 꼼짝없이 올해는 일할 수 없고, 또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의 학교적응이라는 핑계로 한 학기정도는 더 아이들에게 집중해야겠지.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 생각하니 가슴에서 불이 타오르는 것 같다.
어차피 못하는 거 그냥 안 한다 생각하고 남은 나의 전업맘 기간을 즐겨야겠다.
이제 곧 아이들이 내 도움이 점점 더 필요 없어질 테고, 그때가 되면 일을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