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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G Jul 29. 2021

저는 14시간을 자지 않으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타인을 이해해 보려 쓰는 글


“저는 14시간을 자지 않으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록밴드 ‘부활’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 김태원이 이렇게 말했다. 남편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본 것은 바로 그때였다.


“14시간을 잔대~이야…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만!!!”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8시간을 꼬박꼬박 잠으로 채우는 남편이다. “저런 고수가 다 있었다 야!”, “부러운 것도 가지가지 하고 앉아 있네” 등의 대화가 오갔다. 까칠한 나의 태도에도 남편은 꿋꿋해 보였다. 왜 하루 8시간밖에 자지 않았던가 심히 후회스러운 모양이었다.


하루는 24시간. 14시간을 자면 10시간이 남는다. 적어도 한 두 끼 식사는 할 테니 거기서 식사시간을 빼면 9시간이 채 안 될 것이다. 그마저도 몇 시간은 휴식(!) 시간으로 떼어 놓고, 남은 시간에는 술을 마시며 보낸다고 하니 참으로 방탕한 일과가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가끔 유체 이탈을 하고 UFO를 보는 등 (그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범인이 공감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일상을 보낸다.


김태원은 저작권협회에 자작곡이 무려 240곡 이상이나 등록되어 있는 작곡가이기도 하다. 작곡 전공한 사람과 같이 살면서 보니 평생 200곡은커녕 20곡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실망스럽게도 그는 하루 종일 잠만 자는 게 아니었다. 어느 날엔 14시간을 자겠지만 또 다른 날엔 하루에 16시간씩 기타 연습을 하고 음악을 만든다.


음악을 만들 때는 엘리베이터의 “띵” 소리도 듣지 않으려 귀를 틀어막는다고 한다. 자기가 만든 음악에 “띵” 소리가 조금이라도 들어갈까 싶어서이다. 정말이지 해골을 띵하게 만드는 얘기다. 세상의 소리에 귀를 닫고 자신이 만들어내는 선율과 리듬에만 집중하는 시간. 그렇게 차단할 걸 차단한 채 집념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200곡 넘는 작품이 나왔다는 건 간헐적이긴 해도 극강한 집중력과 음악에의 집념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혼자 왔니?” 머릿결만 믿고 따라가지 마세요 핫초코 미떼


막상 김태원 얘기를 끝까지 들어보니 막 사는 것처럼 보여도 모든 것에 진지하고, 세상만사를 아름답게 보려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14시간을 자면서도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살면서 마음이 동할 때마다 가끔 지구에 내려오는 ‘머릿결 좋은’ 천사일지도.

 


시간 운용의 방법이 각자 다르듯 생긴 , 사는 방식, 생각하는 것도 그렇다. 수박 껍데기 하나도 줄가라가  제각각인데 하물며 사람이랴. 지문의 모양도 같은  하나 없다지 않나. 사람을 평균화 일반화하여 재단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김태원도 김태원이지만 사실 멀리 남의 얘기할 것도 없다. 나는 사람이 다 다르다는 것을 남편을 보면서 매일 뼈저리게 느끼니까. 오늘도 양복에 여자 양말을 신고 나간 남편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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