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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G Sep 23. 2021

커피 중독자

커피 중독자. 라고 썼지만 나는 커피를 하루에 열 잔씩 마시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루에 한 잔은 기본으로 마시고, 많으면 두세 잔(네다섯 잔..) 정도 마신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날은 거의 없으므로 커피를 마시지 않은 날의 후유증 같은 건 겪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포가토 존맛탱

최근 밤만 되면 심장이 벌렁거리고 조여 오는 듯한 증세로 인해 걱정하던 차였다. 이미 공황장애 증세, 한랭두드러기 등으로 밤만 되면 엉망진창인 몸상태가 된 지 수년이 지났다. 여기에 웬 또 심장이상인가. 이제는 나도 나를 모르겠다. 몸이 고장 난 건지 위의 두 가지 병으로 인한 부작용인 건지. 오랜 미국 생활로 병원 안 가고 존버하는 덴 이력이 났으므로 그저 고민만 하고 있었다. 남편은 “커피를 줄여보면 어때?”라고 말했다. 우리 부부는 잠들기 전 티타임에 커피를 한 잔씩 하곤 하던 사람들이다. 우리 둘 다 커피를 마셨다고 해서 잠을 못 자거나 아침시간에만 제한하여 커피를 마시지는 않는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 방학의 끝자락에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느라 아침, 점심, 저녁 할 것 없이 커피를 마셔대긴 했었다. 커피 때문인가…? 커피를 줄여보기로 했다.

핸드드립 세트를 샀는데 잘 쓰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수업 방학이 끝나고 이제 미국은 전면 대면 수업을 시작하였다. 우리 아이들은 뉴욕에서 뉴저지로 전학을 해야 했고, 준비과정과 적응이 만만치가 않았다. 엄밀히 말해 아이들은  적응하는  보였다. 딱히 지들이 준비할 것도 없었고. 나는 서류, 온갖 준비물 구비하고 아이들 라이드 하며  지내는지 걱정하느라  주가 홀딱 지나갔다.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집에 오면 모처럼의 고요함에 적응하느라  며칠이 걸렸다. 한국에 살았다면 친정이나 시댁 부모님께라도 아이들을 맡기고 자유로운 시간을 때때로 누렸겠지만 나는 첫째가 태어난 2012 12월부터 학교 보내는 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아이들과 함께였다. 맡길 곳이 아무데도 없었다. 힘들고 버거운 일이었다. 그런데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정적이라선가 왠지 불안하기도, 혼란스럽기도 했다. 이건  .


오히려 방학에는 눈뜨자마자 커피를 내렸던  같은데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고, 혼자된 아침이면 그냥 털썩 주저앉기에 바빴다. 도시락  개를 싸는 아침은 너무 지쳤다. 적막 속에서 혼자 아무리  다리로 서보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오징어가  기분이랄까. 심장이 벌렁거린다고 의도적으로 커피를 줄인 것도 한몫을   분명했다. 남편까지 내려주고 집에 도착하면 오전 9. 오전 9시부터 오후 2 30분까지 나는 오징어가  채로 흐느적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혼자 마시는 커피도 ㅈㅁㅌ


오징어도 어쩔  없이 종이 울리면 후들거리는 다리를 곧추세워 아이들 픽업을 가야 했는데 그게 어느 날엔 괜찮았고 어느 날엔 정말 힘들었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괜찮았던 날엔 내가 커피를  잔이라도 마셨다는  깨달았다. 지금 내가 여기 이렇게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것도  커피로 수혈된 덕분이다. , 나는 진정 커피 중독자였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다리로 걸어 다니는 것조차 불편한 카페인 의존자. 뭔가에 의존하여 사는 것은 정말 별로인데. 별로인 인간으로 사는  탐탁지 않지만 그게 술이나 도박이 아니란 것에 위안을 삼는다.

한국 커피는 뭐든 맛나다

밤 커피를 줄이고 나니 심장 벌렁거리는 것도 줄었다. 그렇다면 나는 오징어가 되지 않기 위해 최소한 아침에는 커피 한 잔을 해야 한다. 도시락을 너무 열정적으로 싸지 말아야겠다. 그래야 아침에 커피 내릴 힘을 비축할 수 있을 테니. 커피 내리는 데 무슨 에너지가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요즘 나는 핸드드립 커피에 빠졌다. 핸드드립으로 맛있게 마시려면 좋은 커피를 잘 갈아 숙련된 테크닉으로 내려야 한다.  무엇보다 우주의 기운을 모아야 한다. 뭐든 수제가 고급인데 커피도 그렇다. 지금은 급하게 수혈하느라 맥심 캔커피를 마시고 있지만 내일은 반드시 아침에 손으로 내린 커피를 마실 테다.


아침에 커피 한 잔, 밤에는 카모마일 차로 균형 있는 하루를 보내겠다. 끝.

드립커피에는 홈런볼이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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