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G Jul 16. 2020

뷔페에서 깨달은 선택과 집중

 외국생활에서 가장 비참함을 느낄 때:

 첫째는 단연코 영어가 안될 때(영어권이 아닌 지역에 계시는 분들은 해당 나라의 언어가 되겠다.)이고 둘째는 먹고 싶은 한식을 마음껏 먹을 수 없을 때이다.  


 뉴욕이나 LA 같이 한국음식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지역 말고 한인들이 많지 않은 지역에 살고 있다면 이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쉽게 말해서 에이치로 시작하는 마트가 근방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확연히 달라진다.


 내가 처음 미국에 정착해 7년을 살았던 미시간의 랜싱 지역에는 대형 한국 마트가 없고 한국 음식점도 많지 않다. 그래서 그 지역에 오래 사신 교민분들의 집을 방문하여 음식을 얻어먹어보면 특급 레스토랑이 따로 없다. 메인 메뉴부터 디저트까지 손수 만들어 먹지만 수준 급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먹고 싶으면 해 먹다 버릇하니 모두 요리에 도가 트셨다 할까.


 어쨌든 우리는 한식에 굶주리며 살았다. 무더운 여름이면 얼음 가득 진한 육수의 물냉면이 그리워 괜스레 마른침을 삼켰다. 불금에는 매콤 달콤한 양념치킨이, 짜장면집의 짜장면과 탕수육과 양장피가 그리웠다. 남편과 같이 유학생활하던 친구 부부는 가끔 컴퓨터를 켜고 음식 사진을 본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먹방이 대유행하기 전이라 사진으로나마 먹고픈 마음을 달랬던 것이다. 회가 먹고 싶으면 싱싱한 활어회의 사진을, 갈비가 먹고플 땐 석쇠 위에 지글지글 익고 있는 갈비 사진을 찾아봤다고…이 ‘웃픈’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었지만 그들의 허기짐과 그리움을 나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이런 허기짐을 달래기 위해 종종 찾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중국 뷔페’다. 중국 뷔페라고 해서 중국 음식만 파는 건 아니다. 미국에서 중국 뷔페라 함은, 서양 음식과 한국, 중국, 일본 등의 음식이 대충대충 섞여 있다는 걸 의미한다. 반드시 중국인이 가게 주인이거나 중국 말로 주문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이런 곳을 ‘중국 뷔페’라 부른다. 쫄깃한 광어회 대신 푸석한 연어 초밥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짜장면이 먹고 싶지만 로메인 누들로 목구멍에 기름칠을 하며, 코코넛 치킨도 눈 감고 먹으면 양념치킨 맛이 나는 뭐 그런 곳이다.


 배고픈 나날을 보내던 와중이었다. 박사 후 과정으로 천문학을 연구하는 지인 부부와 작정하고 한 시간 가량을 달려 한 중국 뷔페에 갔다. 우리가 먼 곳까지 간 이유는 단 하나. 그곳에 대게가 있기 때문이다. 땅이 마치 손 모양 같다고 해서 ‘Mitten State’이라는 애칭을 가진 미시간주는 주변이 물로 둘러 쌓여 있지만, 알려진 대로 그것은 전부 바다가 아니라 호수다. 신선한 생선을 구하기 어렵고 대게라면 더욱 그렇다.

 목메게 그리웠던 음식들에 대한 한을 풀기 위해서. 아니, 한식을 대체할 만한 음식들로 그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우리는 중국 뷔페로 향했다. 수고 없이, 누가 잔뜩 해놓은 음식을 먹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가는 내내 콧노래가 나왔다. ‘너네들 진짜 혼날 준비 해라’, 야무지게 다짐을 하면서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렸다.


도착해서 미리 결제를 하고 결연한 마음으로 테이블과 음식 사이의 거리를 측정한 뒤 오로지 마음을 집중하여 어떠한 순서로 먹어야 할지 고민했다. (보통 나는 이런 때 집중한다.) 먼저 가벼운 샐러드랑 깐 새우 정도로 시작해야지. 그다음에는 로메인 누들과 브로콜리 치킨? 너무 배가 부르면 초밥이랑 롤을 못 먹으니까 탄수화물은 그 정도로 하고…머릿속에 한참 계산을 하고 콜라를 시키고 있었다. 동행한 천문학 박사님이 주저 없이 벌떡 일어났다. 뭐부터 먹을까 순서를 정하느라 머리가 복잡해 아무거나 집어와 테이블에 앉았을 때 박사님은 이미 먹고 있었다. 대게와 초밥을. 나의 주특기 “먹은 것도 없이 배가 부르네.”를 연발하며 다음은 뭘 먹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박사님은 다시 벌떡 일어나 단호히 한 접시 더 가져왔다. 대게와 초밥을. 더부룩한 배를 콜라로 누르고 있을 때도 박사님은 먹고 있었다. 초밥과 대게를. 그 모습을 보고 남편이 장난스럽게 던진 한마디. 그게 나의 운명을 뒤바꾸어 놓았다.


“형은 완전 선택과 집중이구나!”


 선택과 집중. 선택과 집중, 선택과 집중. 아, 그거구나 선택과 집중. 이거 저거 섞어 먹느라 니맛인지 내맛인지도 모르고 먹을 바에야 차라리 한 두 개 선택하고 집중해서 그 맛을 즐겨라! 맛보고 싶은 게 많은데 시간과 위장의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면 선택과 집중하여 먹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그러나 그 많은 매력적인 음식들 맛보기를 포기하려면 엄청난 결단이 필요하다. 거기에 아예 눈길을 주지 않거나, 보고도 별 맛 아니라고 단정해버리는 대범함이 필요하다.

 박사님은 말했다.

“대게를 먹으러 왔으면 대게를 먹어야지.”

 이 얼마나 명쾌한 진리인가! 그 순간 대게를 발라 먹는 박사님의 모습에서 광채가 났다. 하늘에는, 헷갈릴 것 없이 별만 있어서 그런지 천문학 박사님은 그렇게 선택과 집중에 도가 터 있었다.


 뷔페에서 집으로 돌아와 한참 동안 나는 선택과 집중에 대해 생각했다. 문득 인생을 헛살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소위 ‘잡기’가 많은 아이 었다. 뭐든 처음 해보는 것도 금방 배웠다. 못하는 게 없었지만 딱히 잘하는 것도 없었다. 어느 한 주는 하루 종일 바이올린만 연주하며 지냈다. 어느 한 주는 책만 들입다 읽어댔다. 베이킹에 꽂히면 이틀에 한 번씩 카스텔라를 구웠다. 집을 꾸민다고 한 달을 쿵쾅거리기도 하고 미용을 배워볼까 하여 관련 유튜브를 섭렵하는 식이었다. 인생에 질서가 없었다. 그렇게 사는 데에 매일매일의 훈련 따위는 필요가 없었다. 단기 집중력만으로도  충분했다.


 사는 방식에 뭔가 정리가 필요했다. 잘하는 기술은 더욱 갈고닦고, 좋아하는 것은 충분히 즐기면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하늘에는 별만 있는 게 아니었다. 잡새들이, 드론들이, 거기에다 잔뜩 낀 미세먼지 때문에 별은 보이지도 않았다.

 

 남은 인생을 선택과 집중해 살려면 나는 과연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누구나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내가 그나마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것, 글쓰기. 잘하지는 않지만 내가 정말 정말 사랑하는 음악. 나는 이 둘에 평생 선택과 집중하기로 했다.


 선택과 집중하며 살면 시간뿐만 아니라 돈에도 영향을 준다. 시간과 돈 관리를 주제로 한 글은 다른 지면을 더 할애해야 할 것이다. 짧게 얘기하자면 한 예로, 나는 바이올린을 어렸을 때부터 연주해 왔는데 마음가짐이 바뀌니 여윳돈이 생기면 자연스레 옷을 사기보다 악기에 투자하게 됐다. 돈이 생기면 송진을 사고, 줄을 갈고, 활을 바꾸었다. 틈만 나면 음악을 듣고 연주한다. 내가 익숙지 않은 장르의 음악에는 아직도 손이 잘 안 가지만 그 또한 나아질 것이다.   


 책은 늘 나의 사방에 있다. 교육을 전공한 나는 환경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아이들도 손이 닿는 곳, 눈에 보이는 곳에 책이 있으면 읽는다. 선택과 집중하기로 한 나는 책을 여기저기에 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읽는다. 읽지 않고는 쓸 수가 없다. 읽으면 안 쓰고는 못 배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생각지 못한 장소와 상황에서 깨달음이 온다. 그 깨달음을 삶으로 옮기는 것은 나의 몫이다. 뷔페에서 깨달은 ‘선택과 집중’은 마흔을 앞둔 나의 삶의 대전환에 가장 중요한 씨앗이 되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작가의 이전글 프롤로그: 서른아홉, 두 번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