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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일러 Aug 28. 2024

감성 혹은 청승

청승의 기원

좋게 말해 감성, 툭 까놓고 말해 청승.  

나의 청승은 아빠로부터 시작된다.


연약한 남자와 조금 억세 보이는 여자,  

흔한 조합이지 않은가. 바로 우리 부모님이다.


어릴 적 아빠는 소설을 좋아했고,  

김현식과 박상민의 노래를 즐겨 들었다.  

특히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이~"  

로 시작하는 노래는 그의 애창곡이었다.


아빠는 술을 마신 날이면 전축 앞에서  

김현식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어린 마음에 그때는 그 모습이 참 싫었다.  

흐느끼는 듯한 노래에 심취한 아빠의 모습은  

우리의 가난과 꼭 닮아 있었고,  

부부싸움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연약한 마음을 가진 여자가 되었고,  

강해 보이는 남자와 가정을 꾸렸다.  

아이 둘을 키우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새 아이들은 엄마 손이 덜 가도 될 만큼 성장했고, 엄마의 자리가 줄어들자 나는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내 안의 청승이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우연히 듣게 된 노래 때문이었다.


미친듯한 고음으로 유명한 가수의 노래가  

나의 우울을 깨웠고,  

나는 청승과 마주하게 되었다.


가족 모두가 잠든 새벽,  

나는 유튜브로 흘러들어가  

노래에 빠져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눈에 모래가 굴러다니는 것처럼 뻑뻑하고

벌겋게 충혈되어도

나는 깊은 밤의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나 문득,  

나는 내게서 아빠의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아빠는 커다란 전축 앞에서,  

나는 조그마한 휴대폰 앞에서  

감정을 호소하고 있었으니,

놀란 나는 서둘러 유튜브를 닫아버렸다.


며칠은 잠잠했으나

한 번 발동 걸린 청승은 참기 힘들었고,

나는 다시 노래에 빠져들었다.


수없이 노래를 반복해 듣다 보니

속에서 하고 싶은 말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그러면 나는 그것들을 메모장에 적어두었다.


사실 노래에 집중하기로는 밤 시간이 최고라,

낮동안에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었던 책을 기록하기 위해 인스타그램도 시작했다.

인스타에서 알게 된 책친구들 덕분에

에세이를 읽기 시작했는데,

내 안의 청승은 또 한 번 폭발했다.  


말 못 하는 청승은 자기를 대변해 줄 글을 만나면  

허겁지겁 옮겨 적기 바빴고,  

굶주린 듯 책을 읽고 먹이 같은 글을 주워 담았다.


책 속에서 만난 청승의 기록들이  

인스타그램에서는 ‘감성’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되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내일도 청승을 떨겠지.


이것이 나의 청승의 역사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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