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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 Yoo May 26. 2020

불완전한 문장들 -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의 결

불완전한 문장들



내가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의 결

발표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최근에 해리님이 비교적 큰 무대에서 발표를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떨렸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지난날 해온 성과나 업적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주제였는데, 그 내용을 발표하는 자신이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다는 이야기도 함께. 순간, 나와 비슷한 조각을 가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업적이나 성취, 정보나 지식만을 이야기할 때 나는 불편함이나 혹은 지루함을 자주 느끼는 편이다. 생각해보면 충분히 유용한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와 닿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그 일을 하기 위한 과정이나 고민, 의미를 발견했던 순간을 이야기하거나 들을 때 눈이 반짝이는 것을 느낀다. (모든 이가 비슷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자기 계발서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좋은 정보에 늘 귀를 기울이니까.) 하지만 확실히 '내가 세성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의 결'은 존재하는 것 같다. 그 결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순간을 만나는 것은 귀한 경험이라는 생각도 든다. 발표를 마쳤는데 뭔가 찝찝할 때, 원고를 털었는데 뭔가 걸쩍지근할 때, 이야기를 마쳤는데 뭔가 아리까리 할 때, 그런 껄끄러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결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에 대해 많이 아는 것 같지만, 매 순간 다시 모르는 것 투성이라는 느낌이 든다. 오늘도 내일도 또 부딪히며 배우는 수 밖에.


내가 반가워하는 소속감

매주 화요일 성동구로 간다. 생활문화 2.0이라는 타이틀로 해리님, 비치님과 함께 성동문화재단의 일을 함께 일한다. 성동구의 생활과 일상, 문화와 예술을 다시 보는 작업이다. 프리랜서로 생활하고 있지만, 때때로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회사와 계약할 때 중요했던 것 중에 하나는 늘 계약 기간이었다. 어떠한 일이든 최대 3개월을 넘지 않도록 늘 조정해왔다. 3개월 이상 조직에 묶이는 느낌이 달갑지 않았다. 3개월 후에 다른 일을 하고 싶으면 어쩌지? 하는 약간의 불안도 있었다. 주요한 몇 가지 대안을 포기하고 얻은 자유로운 삶을 침범받고 싶지 않았다.


이번 일은 약간 달랐다. 매주 어디론가 출근하는 기분이 좋았고, 매주 논의하는 주제가 나의 자율성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틀 없이 생활문화에 대해 탐구하는 기분이 좋았다. 이런 형태라면 3개월 이상을 묶여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장기 프로젝트에 약한 사람이다. 꾸준하게 무언가를 해낼 지구력도 부족한 편이다. 새롭게 전환되는 기분을 좋아하고, 안정적인 굴레를 지루하게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소속감을 즐기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줬던 모양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문장 안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라는 업무 형태와 사람들, 그에 맞는 조건이 주어진다면 소속감도 나쁘지 않다는 것, 아니 반대로 꽤 만족스러운 소속감의 형태를 새롭게 구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간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신기하게도 짧게는 2개월 길게는 올해 말까지 프로젝트를 함께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물론, 코로나 사태로 고립을 경험하며 누군가와 엮이거나, 어디에 속하고 싶은 욕망이 커진 것도 원인 중 하나이다. 또 새로운 수입원에 대한 갈망도 있었다.)


지금 쓰고 있는 글과 출간 작업도 마찬가지로 그동안 익숙하게 해 왔던 프로젝트와는 호흡이 다르다. 다수의 독자 없이 묵묵하게 나와의 싸움을 해야 하는 장기 프로젝트이다. 이 긴 싸움을, 긴 호흡을 해 낼 끈기와 성실함이 내게 있을까. 의심스러웠(고 지금도 의심스럽)다. 글쓰기가 도전처럼 느껴지지만, 한편으로 나의 한계를 시험하는 새로운 단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단계를 넘어가면, 스스로에게 또 다른 타이틀을 붙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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