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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l 30. 2020

아이비가 아팠다

개와 고양이 이야기


오늘 오전과 오후는 정말 힘들었다. 혼자 있으니 요가도 좀 길게 하고, 아침 일정을 몇 가지 한 다음 민박집 청소를 했는데, 가끔 돕기나 했지 혼자 하는 건 처음이다 보니 평소에는 못 보던 것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수건 상자에 먼지라거나, 물기가 남아있는 그릇이라거나, 완벽하게 닦이지 못한 싱크대라거나 하는 것들. 게다가 늘 하는 일도 아니다 보니 시간도 더 많이 걸렸다. 한 시간 내내 민박집 청소를 하고, 지금까지 쌓아놓은 쓰레기들을 분리수거해서 버리고 오기로 마음먹었다. 어제 팟캐스트 ‘듣똑라’에서 열심히 분리해서 버려도 실제로 재활용되는 수는 많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런 얘기를 듣고 대충 분리해서 버릴 수는 없었다. 그런다고 해도 많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나라도, 그리고 좀 더 많은 사람이 비닐과 페트를 분리하고, 플라스틱을 깨끗이 씻어서 버리는 정도를 한다면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튼 쓰레기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많은 생각은 하지 않고 일단 걸어서 5-6분 정도 거리에 있는 클린하우스에 차를 타고 가서 버리기로 했다. 그 많은 꾸러미들을 다 들고 왔다 갔다 할 수는 없었다. 차에 싣는 것도 세 번 정도 반복을 했고. 아침부터 계속 눈에 밟히던 아이비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아이비는 차를 타 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왠지 수월하게 잘 탈 것만 같았다. 게다가 보리나 무무는 조금 작은 사이즈의 켄넬에도 들어가지만, 아이비는 가장 큰 사이즈의 켄넬이 필요한데, 그건 빌려오질 않았으니 어딜 가려고 하면 켄넬 없이 차를 타야 할 것 같았고, 오늘 클린하우스까지 가는 것이 연습을 하기에 적당할 것 같았다.      


(어제에 이어 쓴다)


쓰레기를 버리러 오가는데 아이비 입 아래쪽에 거품이 조금 있었고 왜 그러지 싶어서 일단 물을 더 줬다. 내가 가니까 아이비는 또 담을 넘어 나오려고 하고, 앞집 아저씨가 물 주고 있던 나를 보고 참외를 주러 나오셨다가 아이비에게 내려가라고 윽박지르며 담에서 떨어진 돌을 올려놓으셨다. 아이비는 계속 왔다 갔다 할 테고, 혹시 돌이 떨어지면 다칠까 봐 다시 올려놓지 않은 거였는데, 그래도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집에 참외를 갔다 놨다. 쓰레기를 차에 다 싣고, 아이비를 데려왔다. 평소에는 담을 자연스럽게 넘어서 나오는데, 왠지 힘들어해서 가만 보니 줄이 큰 돌 밑에 깔려있었다. 그 줄을 풀어주려고 더 자세히 보니 줄 위쪽에 천으로 된 부분이 담에 쓸려서 끊어져있었다. 그렇잖아도 그 부분이 불안하던 터였는데 결국 끊어졌구나 싶었다. 아까 아이비를 윽박지르던 아저씨 모습이 떠오르면서, 줄이 풀린 아이를 아저씨가 다시 넣어놓고 줄을 고정시키려고 돌로 눌러 놓은 거구나 싶었다. 산책 줄을 연결해서 데리고 나왔는데, 아이비가 천천히 가는 모습을 보고 ‘이제 정말 산책을 잘하게 되었구나’라고만 생각했다. 차에도 잘 올라탔고, 쓰레기 실으면서 조금 식긴 했지만 그래도 밖에 세워둔 차가 열을 받았으니 식힐 겸 차를 돌려서 클린하우스로 바로 가는 대신 조금 달려서 바닷가 쪽으로 가면 차도 금방 시원해지고, 아이비도 좋아할 것 같았다. 마을길이라 크게 속도는 못 내지만 그래도 달리니 조금 시원했고, 백미러로 본 아이비는 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즐거워하는 건지, 무서워하는 건지 구분은 잘 되지 않았다. 바닷가를 지나 마을 어귀로 들어왔을 때 뿌지직 소리가 나더니 똥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소리로 봐서는 설사를 한 건 아닌지 싶어서 걱정이 되었는데, 거기서 내려서 확인하는 것보다는 일단 빨리 클린하우스에 도착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클린하우스까지는 1분도 안 남았다.

도착해서 보니 똥은 다행히 예쁜(하지만 아이비 똥은 항상 크다) 모양이었다. 쉬는 예상 못 했지만.. 돗자리를 깔아 둔 게 다행이었다. 돗자리를 꺼내 놓고, 쓰레기를 버리고, 똥도 치우고 났더니 아이비가 묶어둔 자리에서 맹렬하게 흙을 파고 있었다. 큰 로즈마리가 있는 화단이었는데, 저러다 로즈마리 가지를 다 부러뜨리거나 뿌리가 드러나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았다. 차는 놔두고, 돗자리랑 아이비만 데리고 급히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오는 길에 아이비 상태가 너무 이상했다. 자꾸 얼굴과 몸을 땅에 비비는데, 전에도 그런 적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빈도도 더 많고 정도도 심했다. 게다가 집 앞 밭에서 잠깐 줄을 풀어줘 봤더니 진흙탕뿐인 수로로 달려가서 정신없이 물을 먹으려고 했다. 온통 검은색 물 밖에 없는데도.. 그 물에 농약이나 비료라도 있을지 모르니 급히 아이비를 데리고 나왔다. 그러다 생각이 혹시 앞집 아저씨가 오전에 못 먹을 것을 먹였나 하는데 까지 미쳤다. 나쁜 생각이었지만, 오전에 아저씨가 보여준 비우호적인 모습 때문에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집에 와서 물을 먹이는데도, 계속 숨을 헉헉대고, 정신이 없어 보였다. 혹시 너무 더워서 그런가 싶어서 발부터 물에 적셔보긴 했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 몸에도 조금 뿌려줘 봤지만 찬물을 몸에 끼얹으면 안 좋을지도 몰라서 그만두고 계속 물만 마시게 줬다. 친구 남편이 수의사라 통화해 보려고 했는데 전화가 안 되고, 형용이랑 통화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전까지는 괜찮았는데 갑자기 너무 무서워졌다. 보리랑 무무 중성화 한 병원에 전화해 보니 평소랑 다른 모습이면 병원에 데리고 오라고 하고, 나도 병원에 갈 생각으로 일단 채비를 했다. 채비를 하고 아이비를 보는데 아까보다는 상태가 조금 나아진 것처럼 보였다. 물을 계속 틀어놔서 바닥에 흐르는 물 위에 엎드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멀미가 심해서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까지는 멀미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차를 계획보다 조금 길게 탄게 아이비한테 별로 안 좋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을 조금 돌아보니 쉬도 하고, 아까보다 훨씬 안정되어 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토할 것처럼 목 울림을 해서 또 겁이 났지만 괜히 차에 태워 한 시간 거리의 병원으로 가는 것보단 일단 상태를 좀 더 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이비는 결국 잠시 뒤에 괜찮아졌다. 우리 집 마당 수도꼭지에 줄을 걸어두고 계속 봤는데, 마당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에게만 반응하는 정도고 점점 편안해 보였다. 아이비가 자기 집에 가기 싫어서 더 심하게 엄살을 부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좀 나아져서 앉아있는 아이비

원래 쓰레기 버리고 커피 마시려고 했는데 아이비 때문에 마음 졸이고 왔다 갔다 하느라 못 마시고, 좀 나아지자 다시 커피 생각이 났다. 아침부터 청소며 일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마음고생도 해서 디저트를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집 앞에 아주 맛있는 디저트를 파는 카페가 있어서 아이비 데리고 짧은 산책을 할 겸 나섰는데, 카페 앞에는 아이비를 기다리게 할 곳이 없어서 집에 왔다가 다시 다녀왔다. 그 사이 아이비는 화단에 똥 싸서 동네 분들한테 한소리 듣고.. 왜 개를 데리고 밖에 나오는지 이해를 못 하시는 분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시골에는 그렇게 평생 짧은 줄에 묶여만 지내는 아이들이 많다. 그 아이들의 죽음이라도 평화로우면 좋겠는데, 어느 날 없어지는 아이들이 어디로 가는지 도저히 상상하고 싶지 않다.      


아무튼 그래서 아이비는 우리 집에서 잤고, 아이비를 묶어둔(담을 넘어가 버릴까 봐 묶어 놔야 한다) 수도꼭지에는 그늘이 없어서 아이비 데리고 산책하려고 일찍 일어났다. 다행히 오늘 아침에 날이 흐려서 너무 일찍 일어나지는 않아도 됐다. 그런데 갑자기 세수하면서 든 생각이, 아이비가 어제 멀미뿐 아니라 더워서 그랬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쓰레기 버리러 갈 때 데리러 가기 전까지 아이비는 거의 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물 줄 때는 마시고 밖으로 나오려고 했지만 그 외에는 거의 앉아 있어서 내가 ‘왜 거기 앉아 있어? 안 더워?’ 하고 말도 걸었던 것 같다. 평소 같았으면 내가 오가는 동안 벌써 담 위로 올라와 있었을 것이다. 그때 입술 밑에 있던 거품이 너무 뙤약볕에 앉아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돌에 눌린 줄이 너무 짧아서 그늘에 못 들어가고 거기 계속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앞집 아저씨도 개는 묶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고, 그 자리가 그늘인지 땡볕 아래인지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위를 먹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기운 없는 아이를 차에 태워 갑자기 낯선 경험과 멀미를 하게 하다니.. 정말 부주의하고, 편의대로 생각했구나 하는 반성을 했다. 바로 클린하우스로 가는 짧은 주행만 했더라면 상태가 그렇게까지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 차를 타 보는 아이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내가 과욕을 부렸다.  

    

마당에는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는 멍멍이가 줄에 묶여 있는걸 알고 만만하게 보기 시작했는데, 멍멍이는 아직 고양이가 무섭다.

어제 갑자기 아이비 상태가 안 좋았을 때는 두려움과 함께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큰 병이 있는 거면 어떻게 하지, 아저씨한테서 아이비를 데려와야겠다. 아이비를 데려와서 어디서 어떻게 키우지, 보리는 어떡하지, 그럼 무무는 어떡하지, 고양이는 영영 못 데리고 오게 되려나. 원래는 일단 모슬포에 보리만 데려가서 임시 보호하고 있다가, 보리가 먼저 입양이 되면 무무를 데리고 오고, 그러면 아저씨에게 말해서 아이비도 데리고 와야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무무나 아이비가 먼저 입양이 되어도 좋고. 아이비도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아저씨에게서 돈을 주고 사서라도 입양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먼저 중성화 수술이 필요하다면 그것도 설득하고. 그런데 아이비가 아프다고 생각하자 그 모든 계획이 다 부질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장 아이비를 아저씨로부터 데리고 와야 할 것 같았다.


아침 산책

오늘 하루 종일 아이비는 우리 집 마당에 있다. 오전에는 동생 집 처마 밑에 있었고, 낮에는 정자 그늘 아래 고양이 자리에 신세를 졌고, 늦은 오후에는 다시 수도꼭지 자리로 왔다. 다른 아이들보다 확실히 더위를 더 타는지 많이 헥헥거리긴 했지만 그 정도는 정상으로 봐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디서 본 대로 얼음 물병도 주고, 물도 조금 뿌려주고, 마실 물도 많이 줬지만 달리 더위를 덜어줄 다른 뾰족한 수는 내지 못했다. 내가 마당에 없으면 혼자 잘 쉬고, 자기도 했고.

마당고양이와 옆집 개의 거리

지금은 아이비 집에 적당한 줄이 없다는 핑계로 우리 마당에 두고 있지만, 우리가 이사 갈 때 데리고 갈 수 없으면 다시 담벼락 안 원래 보리 집이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곳은 원래도 쾌적한 곳이 아니었지만, 아이비가 바닥 흙을 다 파헤쳐 놓은 데다가, 비어 있는 모습을 보면 절대 아이비를 데려다 놓고 싶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당장 우리가 아이비까지 모슬포로 데려갈 수 있을까. 그러면 무무는 어떻게 하나. 보리를 다시 데려다 놓고 아이비를 데리고 갈 수도 없다. 주인아저씨는 아이비가 없으면 다른 아이들은 더 챙기지 않을 것 같다. 아침에 아저씨네 마당을 언뜻 보니 사료를 큰 국자에 떠 놓은 게 있길래 아이들 주려고 가 봤더니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곰팡이가 있는 걸 보고도 애들한테 준 걸까? 무무가 집 바닥에 놓인 사료를 안 먹었길래, 왜 안 먹었지.. 원래 바닥에 있는 것도 잘 주워 먹는 아인데, 애초부터 바닥에 준 건 안 먹는 건가? 왜 아저씨는 사료를 그릇에 안 주고 바닥에 주지.. 그런 생각을 했는데, 곰팡이가 있으니 안 먹은 거였다. 정말, 정말, 정말 어떻게 된 분인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한 번 해 본 적이 있다. 불쌍한 동물들에게는 돕고 싶은 마음이 금세 생기는데, 뭔가 문제가 있거나 불행할 수도 있는 사람에게는 왜 선뜻 도우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걸까.. 하는 생각. 그들에게도 다가가 손을 내밀면 뭔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도움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는데 하는 생각. 아직 그 결론은 내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사람에게는 ‘의지’를 기대하기 때문인 것 같다. 스스로 변화하려는 의지. 잘 살아보려는 의지. 뭔가 애정을 가지고 삶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 ‘의지’를 바라는 것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기 마당도 치우지 않는 사람, 자기가 기르는 동물들에게 밥도 주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손을 내밀어야 할지, 나는 아직 그런 용기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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