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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l 31. 2020

무무 이야기

개와 고양이 이야기

2020.07.28


요새 이런저런(개나 고양이랑 상관없는) 생각들도 많이 하는데, 개들이랑 실랑이하고, 어떻게 입양 보내지 고민하다 보면 생각이 정리가 잘 안된다. 그냥 기록이나 잘하고, 개들이랑 산책하면서 했던 생각들도 잘 정리해두자.      


아침에 무무 실밥을 풀어주기로 했다. 일주일이 지났으니 어제나 그제 풀어주려고 했는데, 그제는 아이비, 보리랑 물놀이 갔다 와서 저녁에 하려다 못 했고, 어제는 비가 와서 못 했다. 혹시 수술하고 아무는데 무리일까 싶어서 긴 산책도 한 번도 못 하고 계속 약만 발라준 터라 스트레스도 많을 것 같아서 실밥을 푸는 정도의 행사를 하려면 충분한 산책을 해야 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너무 더워지기 전에 산책을 나섰다. 무무가 산책을 잘한다고 생각했던 건, 단지 산책을 처음 해 봐서 쫄아서 얌전했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몇 번 더 해 보니 어찌나 힘을 쓰는지.. 무무 산책은 혼자서는 엄두가 안 난다. 물론 산책을 매일 하게 되면 훨씬 좋아질 것이지만.. 게다가 도로만 나오면 자꾸 가운데로 가려고 한다. 큰길에서 왜 가운데로 걷지 않고 길가로 가냐는 것일까.. 모슬포에서 유유히 도로를 걷고, 도로에 앉아 있기도 하던 개들이 생각난다. 하긴 개들 입장에서는 길 한가운데를 왜 차들을 위해 비켜줘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지. 암튼 지난밤에 술 마시고 해장도 못한 형용이랑 무무가 만족할 만한 긴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올레길도 조금 걸으려고 했지만 오늘 바다에 떠밀려온 쓰레기들을 치우는 날이었나 보다. 힘들게 일 하고 계시는데 그 길로 개를 데리고 들어설 수가 없었다.

집에 와서 손님들이 나가기를 잠시 기다린 다음 마당에 자리를 잡고 무무 실밥 풀기를 시작했다. 처음 두 땀은 잘랐는데, 네 땀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무무가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형용이가 쪽가위를 들고 실을 자르고, 내가 무무를 잡고 있었는데, 잘못하면 민감한 부위가 칼에 다칠 수 있으니 너무 겁이 났다. 나라면 실밥을 직접 풀어줄 생각도 못 했을 것 같은데, 보리 수술했을 때부터 실밥은 형용이가 풀어주었다. 실밥 풀어주러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가기에는 너무 힘드니 할 수 있다면 직접 해 주는 것이 합리적인 일일 것이다. 보리는 우리 손을 더 오래, 많이 탔고, 수술 부위가 배 한 가운 데니 내가 없이 혼자서도 어렵지 않게 한 모양인데, 무무는 뒷다리를 벌린 상태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큰일이 날 수도 있어서 우리 둘 다 무무를 붙잡고 실랑이가 길었다. 책인지 어디선지 본 대로 등 뒤에서 안아보기도 했는데 오히려 자세가 잘 안 잡혀서 불편했다. 그러다 다시 눕혀서 머리를 다리에 살짝 얹고 한 손으로는 눈을 가리듯이 얼굴을 어루만져주고, 다른 손으로는 어깨 부분을 쓰다듬어 주었더니 조금씩 안정이 되었다. 자세가 크게 변한 건 아니니 어느 정도는 무무가 포기한 것인지도 몰랐는데, 눈을 가리듯 한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어쩐지 눈을 가늘게 떴다 감았다 하며 마치 잠을 잘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 무무는, 보리와 아이비는 한 번도 누군가가 이렇게 차분하게 가만히 만져준 적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사람 손길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니 산책할 때 쉬면서도 많이 만져주고, 오가면서도 쓰다듬어 주고, 보리가 집에 온 다음에는 장난치면서도 만져주고, 이래저래 많이 만져주기는 했지만, 지금 이렇게 무무를 만져주듯이 안정적인 상태로 차분하게 만져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가만히 온 정성을 다해 만져준다면 어떤 개라도 훌륭한 개가 될 수 있을 텐데. 갑자기 개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내 다리 위에 누워있는 무무에게도 너무 고맙고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꽤 한동안을 가만히 있어줘서 무사히 완벽하게 실밥을 다 뽑았다.                

무무는 올해 봄에 갑자기 나타난 아이다. 아이비, 보리 그리고 제크라고 이름을 지어준 갈색 강아지가 있었는데, 지난겨울 즈음에 도망을 갔다고 들었고, 한동안 아이비랑 보리 둘만 있다가 갑자기 뉴페이스가 나타난 거였다. 강아지가 새로 온 지 한참 뒤에야 형용이가 내가 너무 속상해할까 봐 말을 못 했다며 말해주었다. 강아지가 한 마리 또 왔다고. 제주에 와서 보니 저기에 공간이 있었나 싶을 만큼 풀과 나무로 무성한 곳에 강아지 한 마리가 묶여 있었다. 밥 주러 들어가기에도 힘들 만큼 풀, 나무뿐만 아니라 건축 자재 같은 것들까지 널브러져 있었다. 그래도 굶고 있는 게 뻔한데 밥을 안 줄 수가 없어서 들어가서 밥과 물을 챙겨줬다. 밥을 주려고 험한 길을 뚫고 들어가면, 강아지는 분명 사람을 반가워는 하는데, 누가 만져주거나 간식을 준 일이 없는지 마구 달려들고 왔다 갔다 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냄새 맡고, 가까이 오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우리도 혹시라도 물리지 않을까 겁이 나서 산책시켜줄 엄두는 내지 못했다. 그래도 두 달 여가 지나고 조금 익숙해지고 친해진 것 같아서 산책을 나서 보기로 했다. 골목에서 무무 집으로 들어가는데 아주 낮은 담장이 있고, 또 철제 스툴 같은 것이 하나 가로막고 있어서 무무가 나오는데 두 번의 고비가 있었다. 처음 밖으로 나오는 게 겁이 나는지 나오지 못하고 버틴 것이다. 한참을 어르고 달래다 끄집어내다시피 해서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웬걸, 산책을 시작하자 무무가 너무 잘 걸었다. 아이비나 보리처럼 잡아당기지도 않았다. 천천히 따라오다가 조금 속도를 내서 걷는 정도여서 조깅하는 속도로 편하게 같이 뛸 수도 있었다. 마침 날씨도 좋아서 해안길에 소풍 나온 지인들을 만나 간식도 얻어먹고 중간중간 쉬기도 하면서 재밌게 산책을 했다.

처음 산책 하던 날

그렇게 무무까지 총 세 마리의 강아지를 밥을 주고, 산책을 시켜주게 되었다. 아이비와 보리 때문에 ‘제주동물친구들’에 ‘실외견 중성화 지원사업’을 신청했는데, 실사를 나오신 분들이 보고는 주인아저씨의 의지 없음과 아이들이 지내는 환경에 대해 크게 놀라고 안타까워하셨다. 그러고는 무무 지내는 곳을 좀 정리해서 개들을 다 같이 지내게 하면 괜찮지 않겠느냐고, 다른 아이들 지내는 곳보다는 그렇게 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우리 집에서도 가까우니 아이들 보살피기도 더 좋고, 그런 식으로 관리하면서 입양처를 알아보면 좋겠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주인아저씨께 말씀드리고, 형용이가 나서서 무무 집으로 들어가는 부분을 싹 정리했다. 치울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나무를 베다가 톱날이 베이기도 했다. 끝도 없이 많은 나뭇가지와 풀들을 우리 집 뒤편으로 들어 날랐다. 그래도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확 달라져 접근성도 좋아지고, 모기나 다른 벌레 걱정도 덜 해도 될 것 같았다. 다만 아이비와 보리를 이곳으로 옮기려는 계획은 실행할 수 없게 되었는데, 맞은편 집 할머니가 여름이면 개 똥 냄새가 바로 넘어올 것이라며 그곳에 개집을 만들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형용이도 나도 일 하고 있는데, 똑같은 얘기를 높은 음색으로 계속 말하니 듣기가 어려웠다. 할머니 말씀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고, 나무를 베어내고 보니 맞은편 집이 정말 가깝게 보였기에 그 계획은 고집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바뀌기 전과 후 무무가 사는 집

그렇게 무무 집은 전보다는 낫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쾌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땅에 돌이 많아서 줄이 잘 걸리고 위험하기도 한 데다, 묶여 있는 아이들의 배변 문제는 정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나마 중성화 수술하러 가기 전에 형용이가 줄을 길게 해 주었고, 집도 조금 더 정리해 주기는 했지만, 지붕이 있는 공간 안은 어떻게 손대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중성화 수술하고 와서 달리 둘 곳이 없어 다시 집에 데려다 놓기는 했지만 많이 걱정되고 안쓰러웠다. 수컷이라 환부가 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잘 아무 탈 없이 잘 아물었고, 소독하고, 실밥 뽑는 동안도 잘 버텨 주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무무는 워낙 건강한 아이인 것 같다. 처음 산책을 나간 날 무무를 보고 이 아이가 아이비의 첫째가 아닐까 생각할 만큼 튼튼한 몸과 부드러운 털, 예쁜 얼굴을 가진 아이다. 어느 아이든 한 마리가 입양이 안 되고 남는다면 기꺼이 내가 키울 것이다. 아이비나 보리랑은 정이 정말 많이 들었지만, 외모로는 무무가 내 로망에 제일 가까운 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부드러운 털의 골든리트리버. 무무는 보통의 리트리버들보다 체구도 작아서 더 예쁘다. 이번에 서울 다녀왔을 때 무무의 그 부드러운 털들이 다 뭉쳐 있어서 너무 안타깝고 화가 났다. 뭉친 부분들을 가위로 잘라주어서 쥐 파먹은 꼴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잘라주니 피부병처럼 빨갛게 일어났던 부분들이 다 가라앉았다.

뭉친 털들을 잘라주어 털이 듬성듬성하다. 예쁘게 자라길 기다려야지.

사람도 사랑을 받으면 예뻐진다고 한다. 이 아이들이 예쁜 외모를 빛내며 재밌고 행복하게 살 날이 꼭 올 거라고,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 거라고 포기하지 말자고. 그렇게 매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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