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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Aug 11. 2020

하루

개와 고양이 이야기

흐린 아침이다. 햇빛이 강하지 않아 조금 게으름을 피워도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몸을 일으켜본다. 평소 아무리 일찍 일어나려고 계획을 세워도 쉽지 않았는데, 오늘은 그래도 일어나기가 수월한 편이다. 아이비가 더울 거라고 생각하니, 나중에 괜히 후회하지 말고 늦지 않게 일어나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역시 벌떡 일어난 아이비는 산책을 가는 것 같은 낌새에 벌써 꼬리부터 바쁘다. 아이비와 산책을 하고 돌아와 보리와 무무에게도 밥과 물을 챙겨준다. 나도 씻고, 아침 먹을 준비를 한다.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

아이비와 보리, 무무는 제주에 와서 만나게 된 강아지들이다. 앞집에 묶여 있는 강아지들을 무심히 봐 넘겼는데, 작년 어느 날 새끼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진드기 범벅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다른 새끼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한 마리가 남아 보리라고 이름을 붙여줬다. 털이 ‘아이보리’ 색을 띠고 있어서 그렇게 붙여줬고, 비슷한 털빛의 어미개는 그와 같은 색깔의 크래커 이름을 따서 아이비라고 부르기로 했다. 원래 ‘제크’도 있었지만 어느 날 사라졌고, 다시 한 마리가 왔는데 아이비가 작년에 낳은 새끼 중 다른 한 마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세 마리의 밥과 물, 산책을 챙겨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세 마리 강아지들이 제주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인간과 동물, 환경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 동물들을 기르고, 동물들이 인간에게 의존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인간은 많은 동물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고, 그것을 조절하는 것을 ‘인류’의 역할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런데 정말 ‘인류’가 다른 생명들을 좌지우지해도 괜찮은 것일까. 결론은 ‘안된다’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변기 물도 1 급수니 아껴 써야 한다고. 그래서 샴푸도, 치약도 쓰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도 최대한 버리지 않기로 한 학교에 다녔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지구시민’이라는 말을 많이 썼기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혼자 해 왔던 이런 고민들을 실천으로 바꿔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울에서 지냈던 동네에는 일회용품 없는 카페가 있었고, 근처 시장의 ‘알맹 상점’이라는 곳에서는 화장품이나 세제를 소분해서 팔고, 향신료와 식자재들도 무게를 재서 가져갈 수 있고,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들을 다양하게 팔고 있었다.

제주에 와서는 ‘핸드메이드 라이프’라는 가게를 알게 되었고, 에센셜 오일과 정제수로만 이루어진 토너를 사서 썼는데, 다른 어떤 화장품보다 만족하며 썼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고민을 실천으로 바꿔가고 있는데, 내가 생활에서 할 수 있는 실천은 직접 만들거나 뜬 수세미를 사용한다거나, 플라스틱이나 비닐 사용을 줄이고 내가 만든 주머니나 가방을 이용하는 것 정도이다.  

더 이상 농촌이나 시골이라고 해서 깨끗한 자연을 기대하기 힘들게 되었다. 제주도 곳곳의 클린하우스는 거의 매일 꽉 차 있고, 바닷가에 밀려온 쓰레기는 주워도 끝이 없는 것만 같다. 내가 만드는 쓰레기도 많고, 그걸 재활용을 위해 다시 손질하는 일은 귀찮고 쓸데없이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하는 노력이 전혀 소용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런 고민과 노력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좋겠다.

세계 자연유산이기도 한 제주도는,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가까운 여행지를 찾는 청년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섬이 되었고, 자연에서 모든 것을 얻어 살아온 사람들의 바다와 산이 있는 곳이다. 그들 모두가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작은 상점을 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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