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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Aug 14. 2020

이사를 했다.

개와 고양이 이야기

보리만 데리고 이사를 했다. 이사가 결정 되면서부터 많은 고민을 했고, 이사하기 며칠 전부터는 아이비가 자꾸만 줄이 풀려 우리 집 마당에 있으려고 하고, 고양이가 있어도 마당에 있기를 편해 해서 어찌해야 하나 마음이 아팠다. 주인아저씨와 대화 같지 않은 대화도 고민을 더 가중시켰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리와 무무도 어쩌지 못하는 상태에서 아이비를 데려가겠다고 우길 수는 없었다. 고양이도 데리고 와서 집에서 키워야 할지 고민이 많았지만 결국은 동생에게 밥만 좀 달라고 맡기고 왔다.

이사온 다음 날 보리

이사를 하고, 친구들이 와서 같이 낭독공연을 준비하면서 용수리를 몇 번 오갔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비랑 보리는 목이 많이 말랐던 것처럼 보였다. 사료를 사 놓고 간 다음날에는 웬일인지 밥그릇에 깨끗한 물이 제법 있었다. 다만 아이비가 또 줄이 풀려서 한바퀴를 돌고 서래재(우리가 살던 곳) 마당으로 와서 잠시 놀다가 다시 집에 데려다 주었다. 그러고 나서 형용이가 서울 가던 날 한번 들르고, 사흘 동안 못 가 봤다. 아이비가 또 줄이 풀려서 마당으로 왔다며 동생에게 연락이 왔고, 무무는 어찌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늘 오후에는 꼭 가 보려고 한다.      

줄이 풀려 마당으로 찾아온 아이비. 동생이 보내준 사진. 아이비는 이 마당이 편한가 보다.


집이 넓어지고, 짐 정리도 아직 남아있다 보니, 할 일이 많은 것 같고 괜히 마음이 급하다. 혼자 있는 동안 해 놓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막상 보리랑 산책하러 왔다 갔다 하고, 청귤청 담그고 하는 동안 사흘이 금세 지나갔다. 어느 인스타툰에서 본 것처럼 나의 하루를 세세하게 적어 봐야겠다.     

이틀에 나눠 5kg의 청귤청을 담갔다.


어제는 보리가 두 번이나 가출을 했다. 오전 내내 창문을 열고 있었고, 지인이 아기와 놀러오기로 해서 청소를 하려고 왔다 갔다 하는 데 보리가 전에 없이 너무 더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샤워를 좀 시키고 같이 골목까지 마중을 나갔다가 마당에 길게 연결된 줄에 묶어 뒀는데, 집에 에어컨을 키고 주문한 피자를 받고 하는 사이 헐거운 목줄에서 빠져나가 없어졌다. 줄이 담 쪽으로 나가 있길래 골목에 있으면 위험할 것 같아 데리러 나갔더니 동그랗게 목줄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너무 놀라서 바로 골목 밖으로 찾아 나섰다. 이 동네로 오고 나서 잠깐씩 줄이 풀려도 골목 밖으로는 나가지 않고 바로 돌아 왔는데, 골목 밖 삼거리로 나섰는데도 한눈에 보리가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했다. 용수리와 달리 여기는 주차된 차도 많지만 낮에도 다니는 차가 많아서 익숙하지 않은 길에서는 사고가 날지도 몰랐다. 보리를 부르니 다행히 한쪽에서 나타나긴 했는데 날 보고 오는 듯하더니 또 지나쳐 다른 집 대문으로 들어가 버렸다. 대문 안으로 들어가서 여유있게 한바퀴를 돌고 나서는 또 다른 집에 들어가 한바퀴  돌고.. 그나저나 이 동네도 집에 사람은 없는데 대문은 물론 창문들도 다 열려 있는 걸 보니 읍내라도 문 열고 다니는 건 제주도가 다 비슷한 모양이다. 한참 남의 집 뒤꼍으로 들어가 안 보이더니, 다른 곳을 찾고 있는 사이 아기와 나온 언니가 담 안에 있는 보리를 보고 여기 있다고 알려주었다. 높지 않은 담이라서 담 사이로 보리를 잡아 목줄을 채우고 담 위로 손을 들어 데리고 나왔다. 중간에 손을 놓치긴 했지만 실컷 놀았는지 순순히 따라왔는데, 그러고 나서 조금 있다 한 번 더 나갔다 왔다. 목줄이 느슨하니 자꾸 빠지는 것이었는데, 한 칸을 더 줄이니 너무 조이는 느낌이라 그대로 뒀더니 또 도망을 간 것이었다. 용수리에서는 그렇게 널널한 줄을 하고도 한번도 도망을 안간게 신기할 정도였다.      

손님들이 돌아가고 저녁에는 집 안이 시원할 것 같아 줄에 묶인 채 집 안에 뒀더니 잠깐 쉬는 듯 하다가 답답해해서 산책만 두 번 하고 다시 작업실에 데려다 놓았다. 저녁 내내 강아지 장난감과 집을 검색했다.     

부엌에 들어옴.

 

아침에 일어나자 내가 창문 여는 소리에 달려와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 산책을 다녀오려고 했는데, 다시 잠들어서 결국 아침에 일어난 다음이었다. 똥이 마려워서 그럴까 싶어 급히 산책을 나섰는데, 보리는 이곳으로 이사한 다음에 산책할 때 똥을 누거나 오줌을 눈 적이 없다. 다 마당에서 해결하는데 왜 그러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한 30분 정도 산책을 했을까 해가 금방 뜨거워졌다. 내일은 꼭 새벽에 일어나야지.

아침에 실컷 놀아서 신이 난 것 처럼 보인다.


집에 와서 보리가 있는 작업실 옆 복도에 물을 뿌리고, 내 방과 거실에 걸레질을 하고, 요가를 하고 나니 오전이 금방 지나갔다. 토스트와 커피 한잔을 하니 금세 정오다. 마음을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루틴을 만들어야지. 너무 에너지를 쓰지 않고, 일과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찾아야 한다. 그 사이에 용수리도 다녀와야 하고, 아이들 입양 홍보도 꾸준히 해야지. 강아지 임보를 몇 달씩 하기도 하는데, 나도 마음을 진득하게 먹고 공부하면서 보살펴야겠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이비와 무무의 현실이 자꾸 마음을 찌르지만 그럴수록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도 진득하게 해 나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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