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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Aug 16. 2020

아이비가 폭주했다.

강아지와 고양이 이야기 

전날의 다짐대로 조금 일찍 일어나서 보리랑 산책도 하고, 마당에서도 한참 놀고, 요가도 하고, 여유 있게 아침도 먹고 알찬 하루를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는데, 아이비가 줄이 풀려 폭주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폭주’라니.. 아이비가 그런 아이가 아닌데.. 얌전하기만 하고, 산책이 부족해도 집에 가자고 하면 버티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순순히 묶이고, 줄이 풀려도 멀리 갈 줄도 모르고 동네 한 바퀴 도는데 그것도 부르면 오고.. 하지 말라면 안 하고, 먹지 말라면 안 먹고,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한데 폭주를 했다니.. 하긴 ‘폭주’라는 말을 착한 사람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열 받았을 때 쓰기도 하는 것 같다. 

지금은 민박집 두 채로 운영하고 있는 이전 집 창고를 뒤지기도 하고, 버린 고기도 주워 먹고, 고양이가 물어다 온 쥐를 멀리 버려놓은 걸 다시 주워오기도 했단다. 시꺼메져서 돌아다니는데, 아저씨가 산책시키려다가 밭에 들어가서 그렇다고 했단다, 그러고 묶어 놓지도 않고 나간 것 같다고. 아저씨 말대로 정말 산책을 시킨 거라면, 아침부터 해가 뜨거운데 땡볕에 데리고 나갔으니 당연히 농수로로 뛰어들었겠지. 더위도 많이 타는 애가.. 그러니 새까매졌을 테고. 지난번 더운 날에 차에 태웠다가 더위에 멀미까지 더해져서 농수로로 막 뛰어들려고 했을 때가 생각났다. 정말 무서워서 병원으로 바로 달려갈 뻔했었는데.. 어떤 지경일까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주인인데 그런 것도 모른다는 게 화가 나고. 하긴 뭐는 알겠냐마는.. 

원래 저녁에 들르려고 했었는데, 바로는 못 가도 조금 일찍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줄이 풀려있다니 걱정이기는 해도 아이비가 멀리 가는 아이는 아니니 그건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해서 일이 손에 잘 잡히지는 않았다. 

다섯 시가 조금 넘어 출발했는데도 해는 너무 뜨거웠다. 선팅도 안 돼있고 에어컨도 안 되는 차라니.. 그래도 차가 있는 게 어디냐.. 

불안하게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을 다독이며 골목에 들어서자 하얀 개 한 마리가 쫄래쫄래 나오는데 순간 아이비인가 아닌가 싶었다. 전날 들렀을 때 하얀 수컷이 한 마리 돌아다니는 걸 봤는데 요즘 자주 온다더니 그 아이인가 싶고.. 그런데 가까이 오는 걸 보니 아이비가 맞다. 나는 안심도 되고, 꼴이 왜 이 모양인가 싶어서 마음이 복잡한데 아이비는 그저 나를 보고 반가워할 뿐이다. 아무래도 씻겨야 할 것 같아서 동생에게 전화를 하는데, 아이비는 당연히 나랑 같이 마당으로 들어서고, 만져달라고 치댄다. 고양이까지 야옹거리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정자에 앉아 한숨 돌리고, 저녁 바람이 더 시원해지기 전에 흙이라도 좀 씻어주려고 서둘렀다. 어딜 돌아다녔는지, 게다가 시간도 좀 지나서인지 굳어서 잘 안 떨어지고, 목줄도 온통 진흙투성이였다. 하는 수 없이 목줄도 풀어놓고 몸이 마를 때까지 시간을 보내며 좀 기다렸다. 그 사이 애들 밥도 주고, 물도 주고. 마당에 있으려니 고양이까지 옆에 와서는 아이비한테 성질을 내서 밖에 나와 조금 돌아다녔다. 오프 리쉬는 당연히 위험하고 해서는 안 되지만, 동네인 데다 아이비는 부르면 바로 오니까 오랜만에 동네를 조금 걸어보았다. 잘 다니긴 했지만 위험한 순간도 한두 번 있었다. 아이비가 멀미한 날 똥 쌌던 화단에 들어갔다가 그 앞 점방에 있는 어른들한테 또 혼났다. 나도 짜증이 나서 ‘저희 개 아닌데 줄이 풀렸어요’라고 쳐다보지도 않고는 꽤 빠르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저희 개 아니'라고 한 말을 계속 생각했다. 아이비가 우리 개면 어떨까. 우리 개가 아니라서 어렵고, 우리 개 하겠다고 데리고 올 수 없어서 더 힘들다. 생각이 많은 게 좋은 건 아니다. 

 그 동네는 바다가 가까운 것도 좋고, 평온한 느낌이 드는 동네인데, 개들이랑 산책을 하면 꼭 한 소리를 듣거나 따가운 눈초리를 느껴야 한다. 집집마다 개들이 짧은 줄에 묶여 있는데, 잘 다니지 않는 골목 안쪽에는 얼마나 많은 개들이 있을까 알기가 겁이 날 정도다. ‘밥이라도 잘 주면 다행이다’라는 마음으로 다녔다. 

오랜만에 보는 투샷. 얼굴에 묻은 흙은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많이 진정된 아이비를 다시 묶어 놓고, 오랜만에 오는 짝꿍 마중 겸 동생이랑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발이 잘 안 떨어졌다. 간식도 챙겨갔는데 정신이 없어서 다 못 주고 왔다. 

늦은 저녁이었고, 오자마자 보리랑 산책을 했다. 이제 보리는 하루 두 번 산책이 적응되어서 그렇게 해 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이 정도는 아주 기본 적인 것이고, 개를 키운다면 어떤 일들과 상황들을 겪을 수 있을지,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들과 희생해야 할 것들이 무엇일지 아무리 상상을 해 봐도 부족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상상도 제대로 해 보지 않고 개를 키우겠다고 나서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하긴 아기를 낳는 것도 고민과 상상 없이 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상상해 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아기를 낳거나 동물을 키우는 일에 대해 나보다 덜 상상해 보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상상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일들이 분명히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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