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을 어떻게 다녀야 되나 막막했지만 안 가봐서 후회하는 것보단 차라리 가는 게 낫다는 마음으로 기차에 몸을 실었다. SRT를 끊지 못해서 KTX로 발행하였고 뒤늦게 차편을 구매한 것치곤 수월하게 도착했다. 부산역에 도착하니 택시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부산은 운전이 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약간 걱정한 상태였는데 역시나 예상했던 바는 맞았다. 그래도 정 많은 택시 기사님을 만난 덕에 운 좋게 숙소에 잘 도착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상하게 운 좋은 일이 2-3번 정도가 있었다.
해운대역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짐을 풀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시간이 좀 여유로웠다면 골목을 돌아다니고 싶었지만 막상 도착하니 오후 3시가 되어 걸어 다닐 시간이 많지 않았다. 여행 가기 전 미리 찾아놓은 음식점에서 '갈치 솥밥'을 주문했다. 부산에 가면 돼지국밥과 밀면을 먹으라는 책 내용과 달리 실제로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한정적이다. 잘못 먹고 탈이 나버리면 여행이 힘들어지니 멀리 올 땐 먹는 것에 몸을 사리는 편이다.
잡채, 김치, 메추리알 조림, 꽃게 무침 등 간단한 반찬과 갈치구이 그리고 솥밥이 나온다. 생각보다 음식점에 대기팀이 있어 잠시 기다렸는데 음식도 깔끔하고 밀가루 음식이 부담스러운 분들에게 추천드리고 싶은 음식이다.
일부로 숙소를 해운대역과 해운대 해수욕장이 가까운 곳으로 예약했다. 부산에 온 가장 큰 목적은 바다를 보기 위함이었으니 제일 효율적인 루트다. 내가 막연하게 상상했던 해운대 해수욕장의 모습은 비키니를 입은 여성분들이 몸을 태우고 있거나, 젊은 친구들이 비치볼을 치며 노는 모습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친구, 연인, 가족 단위로 온 관광객들이 모래사장에 돗자리도 없이 앉아 자유로이 해변을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나 역시 신고 있던 신발을 벗고 부드러운 모래사장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날씨가 화창하여 더욱푸르렀고 바람까지 선선하여 행복감이 느껴졌다. 집 근처에 바다가 있다면 행복할 것 같은데 항상 바다를 보며 살아가는 분들에겐 감흥이 없는 것 같았다. 택시 기사님은 "부산에 볼 것도 많이 없는데 해운대에 많이 와요~" 하던 기사님의 말이 떠오른다.
해운대점에 오설록 티하우스를 오픈하여 궁금한 마음에 방문했다. 기대한 것보다는 볼 것이 많이 없어서 실망했지만 바다와 가까운 점이 장점인 것 같다. 예전에는 말차라테를 종종 마셨는데 요즘은 잘 마시지 못한다. 카페인이 이제 더 안 받다 보니 먹고 싶어도 잘 못 먹는 음료다. 그래도 오설록에서 유명한 음료가 '말차'이니 나는 어디를 가든 그 매장에서 제일 유명하다고 하는 시그니쳐 음료는 꼭 한 번은 마셔보려 하는 편이다.
주문한 말차라떼
오랜만에 DSLR 사용
오래 쓰던 DSLR이 그만 망가져 버려서 급하게 카메라를 렌트했다. 4.5일에 6만 원이면 꽤 저렴하다. 여행 첫날은 검정 바지에 톡톡한 니트를 입고 돌아다녔다. 바다 근처라 생각보다 바람이 불어서 쌀쌀했고 9월 말에 오신다면 얇은 코트나 외투를 가져오시면 좋을 것 같다.
시크한 분위기의 인테리어
오설록 해운대점의 인테리어 디자인은 전반적으로 시크하고 차가운 느낌이었다. 검정과 철재가 그대로 드러나는 인테리어였고 1층은 주문과 차 상품들이 디스플레이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블랙 톤으로 채워진 인테리어도 좋아하는 편이다.
식사 후 바다까지 보다 보니 해가 뉘역뉘역 해져갔다. 여기까지 왔는데 F1963을 안 보고 갈 수는 없을 것 같아 급히 망미역까지 도착한 다음 역 근처에서 바로 택시를 잡았다. F1963은 고려제강의 첫 생산 기지인 수영 공장을 리뉴얼한 복합문화공간이다. 6시가 넘어서 도착한지라 전시도 일부 닫은 상태였고 볼 수 있는 게 많이 없어서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훨씬 멋있었고 철제로 만들어진 외골조가 마치 현대미술 작품 같았다. 낮보다 밤이 더 멋있어 보이는 건축물이었고 부지가 넓은 곳에 오면 좋은 점은 브랜드를 다양하게 볼 수 있고 구조적인 심미감이 커서 웅장함이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덜 지루하고 기억에 남는 공간으로 남게 되는 것 같다.
복순도가 매장
사진으로 남기진 못했지만 F1963은 중정 같은 구조로 되어있고 외각 둘레에 '복순도가', '테라로사', 'YES 24' 매장이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각 매장마다 문이 연결되어 있어 공간 이동이 수월했고 식사도 간단한 게 처리할 수 있는 구조라서 편리해 보였다. 한 1-2년쯤 선물로 들어온 복순도가 막걸리를 마셔본 적이 있는데 일반 장수막걸리보다 톡 쏘는 맛이 강하여 탄산음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YES 24 도서관
책이 정말 많았는데 늦은 시간에 도착한지라 여유롭게 읽을 수 없어서 아쉬웠다. 급한 마음에 불에 콩 구워 먹듯 둘러봤고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책상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공장의 내부를 어느 정도 유지한 체로 리뉴얼한 곳이라 그런지책장 사이로 넓은 통창과 경사진 바닥이 눈에 보였다.
2층으로 연결된 도서관 이동 통로
좋아하는 꽃 그림
2층으로 올라가면 예술 도서와 스테이셔너리, 그림과 몇 가지 포스터들이 디스플레이되어 있었다. 나는 항상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지금은 그릴 시간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래도 항상 마음 한켠엔 언젠가 또다시 해외에서 전시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손하트 해주신 기사님
급히 공간을 둘러보고 더 시간이 늦어지기 전에 매장을 서둘러 나왔다. 그런데 주변에 택시가 잘 잡히지않아 근심 섞인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운 좋게 근처에서 일하고 계시는 택시기사님 덕분에 안전하게망미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요즘 세상이 흉흉하다 보니 사람 믿기가 영 쉽지 않지만 이 낯선 곳에서 친절하고 정 많은 아저씨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감사한 마음에 마지막 사진을 남겨도 되는지 여쭤봤고 아저씨께 앞으로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랄 뿐이다.
솔직히 서울역에 가기 전까지 부산에 가지 말까 싶었는데 또 와보니 오길 잘했구나 싶다. 그간 지루했던 브랜드 매장을 보다 이곳에서 그간 볼 수 없던 새로움을 마주하니 일적으로나 마음적으로나 리프레시되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