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역과 라마다 앙코르 호텔 맞은편에 위치한 피자집 매드독스에 들렀다. 저녁식사로 피자 한 판을 먹기엔 부담스럽고 취향껏 한 조각만 주문할 수 있어 고른 식당이다. 저녁 시간인데도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특히 중동 지역 외국인 분들이 정말 많이 보였다. 왜인지 지금도 궁금하다. 부산항이니까 노동력이 다 외국인이라서 가족들이 여행 온 건가 싶기도 했다.
민락역으로 가는 길수변도로
밀락 더마켓에서 역으로 가는 길 수변도로가 있어 구태여 걸어갔다. 멀리 센텀시티와 신세계 백화점이 보였고 너무 많이 걸었더니5시 정도 됐을 땐 체력이 고갈됐다. 그래도 언제 마음껏 바다를 볼 수 있겠나 싶은 생각에 지쳐도 여행 마지막까지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피로했는지 눈 다래끼가 나버려서 지금은 소염제를 먹고 있는 게 웃플 뿐. 여행을 가면 다시 올 수 없다는 생각에 지속적으로 돌아다니는 편이다. 서울이 지겹다 보니 멀리 타 지역에 와 있다는 게 새로웠고 한편으로 끊임없이 허망함과 허무함이 끊임없이 몰려와 애써 꾹꾹 누르는 게 버거웠다.
비비비당 앞 골목
골목은 특별히 볼 것이 많이 없었지만 오래된 빌라명과 아파트 브랜드 명이 서울보다 훨씬 많이 보였다.
맨션이라는 용어는 한국에서 초기 빌라나 주택이 지어질 때 고급스러운 브랜드 호칭으로 쓰였던 단어라고 한다. 길을 걷다 보면 맨션 또는 맨션이라 쓰인 주택명을 더러 볼 수 있었다. 가끔 옛날이 그리워질 때가 있는데 지금은 모든 게 칼같이 나뉘어 각자 도생하는 세상으로 변했지만 저렇게 벽돌로 지어진 낮은 빌라에 살던 때에는 윗집 이웃과 밥도 같이 먹고, 밤에 영화도 보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지나왔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웃 간 정이었다. 모두들 바쁜 20대를 보내고 성인이 된 지금은 삭막할 뿐이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보면 인사를 하긴 하지만 어떻게 그 시절처럼 허물없이 지낼 수 있겠는가.
바다뷰가 보이는 호텔을 예약하고 싶었는데 이번에는 바다를 볼 자신이 없었다. 심적으로 안정할 곳이 없어서 걸으나 서나 영혼이 방랑한 시간이 길었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맞이하였고 밤 잠을 설쳤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고, 그간 무슨 일이 있었어도 잘 지내왔었지만 이번 여행은 쉽지 않았다. 운 좋게 친절한 택시 기사님을 만났고, 다행히 좋아하는 브랜드와 공간이 있었서 정신 차릴 수 있었던 것이지 그조차도 없었으면 어찌할 바를 몰라 우물 속에 고여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서울에 올라가지 말고 며칠간 더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간단하게 먹은 조식
숙소에 묵는 고객일 경우에는 조식 비용이 22,000원 정도다. 음식 종류는 접시에 담은 것보다 더 많았지만 아침 식사는 영 내키지가 않는다. 그래서 간단하게 감자 샐러드, 양상추, 밥 조금, 타코야끼, 수프로 배를 채웠다. 원래 둘째 날 여행 계획은 감천문화마을에서 스냅사진 촬영 일정을 잡아놓은 상태였지만 몸이 영 따라주지 않는 듯하여 취소하고 자유 여행으로 돌렸다.
어머니는 나를 보면 겁도 없는 것 같다고 하시지만, 겁이 없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으니 선택했을 뿐이었다. 부산 여행에 오기 전, 부산역으로 데려다줄 수 있는 택시를 사전 예약해 놓은 상태였다. 일반 택시보다는 조금 크고 짐칸이 있어 여행객들을 위한 전용 택시다. 예약하고 나서도 솔직히 부산은 처음이다 보니 사람을 잘 못 믿겠고 한밤중에 차를 탄다는 것도 무섭고 그런데 어쩔 수 없었다. 차편이 새벽 5시 40분 차라 호텔에서 새벽 3시에 일어났고, 3시 45분쯤에 택시를 탔고 4시 20분인가 생각보다 빨리 부산역에 도착해서 여유롭게 기차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다시는 차편을 이렇게 잡지 않으리라.
설마 나처럼 새벽차 타고 가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가보니 앉을자리가 서서히 없어질 정도로 사람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구역은 부산보다 조금 더 규모가 크고 내부에 먹거리도 많았던 것 같은데 부산역은 생각보다 좀 허전했지만 형광빛 열차안내판 덕분에 넓은 공항에 있는 것 같았다. 2박 3일을 머무는 동안 갈 곳은 있어도 도착지는 없었고 끊임없는 배회하는 느낌이었다. 마치 이정표 없는 허공을 날아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갈 곳은 있지만 가고 싶지 않았다. 사실 억지로 더 걸었던 것 같다. 걷는 것만큼 심적으로 위안을 주는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