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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Blues Jan 16. 2019

7. 화성에서 온 아빠, 금성에서 온 딸

풀타임 아빠 육아기 <아내가 이사갔다> 7화

아빠와 딸 - 어감마저 사랑스럽다.
하지만 아직 사람인지 인형인지 분간 안 되는 5세 이하의 딸들 제외하고, 퇴근 후 잠깐 응석받아주기만 하면 되는 파트타임 아빠들 제외하고, 24시간 붙어사는 ‘현실 부녀’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어른과 아이의 간극에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더해져 생기는 혼돈의 카오스가 있다.  


가령,


배고프다고 성화여서 아이에게 간식을 만들어준다. 울상을 하고는 안 먹고 있길래 물어보니 접시 색깔이 안 예쁘다고 한다. 다른 색 접시로 바꿔 담아주니 잘 먹는다.(띠용~)


머리 좀 묶고 다니면 더 깔끔해 보이련만 안 묶는 게 더 이쁘다며 한사코 거부하고 반 산발을 하고 나간다. 옷은 며칠씩 입어서 더러워진 ‘예쁜 옷'만 고집한다. 밖에 나가면 다른 엄마들이 '역시 아빠 혼자 애를 키우니 쯧쯧' 하기 십상인 행색이다. 애원하다시피 수정을 요구해보지만 너무나 강경하다. 여기서 조금 더 강경하게 나가면 또 '아빠 무셔워' 노래를 부르겠지..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의 평판과 아이와의 관계 중 눈물을 머금고 후자를 택한다. 오늘도 아이는 본인의 스타일을 사수하고 엣지있게 집을 나선다.


얼마 전에는 겨울이 되었는데도 반팔 입고 싶다고 난리였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반팔이 예뻐서란다. 잠시 한눈 판 사이, 정리해 놓은 여름 옷 박스를 다 풀어헤쳐서 저 좋아하는 반팔 옷을 꺼내 입고 있는 딸아이를 보고 분노가 솟아올랐다가도 거울 앞에서 그리 행복해하는 표정을 보고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만다.


이렇듯 딸아이의 미적 감수성은 언제나 나에게 새롭다. 어쩜 저럴까. 그냥 다른 종족을 대하는 느낌이랄까 그런 게 있다. 접시 색깔이 허기를 누르다니! 낮이고 밤이고 땀을 팥죽같이 흘리며 공만 차는 아들내미를 보는 엄마들의 심정이 이와 비슷할까.


미적 감수성 영역 말고도 또 있다. 소통 감수성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 글쓰기에 제법 자신이 붙자 자꾸 편지를 쓰는 것이다. 책가방에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나눈 쪽지의 흔적 남아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 “아빠 나 있다가 TV 봐도 돼? 답을 아래에 적으세요”류의 편지가 수시로 날아온다. ‘내밀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니즈’ 따위의 건조한 표현이 미안할 정도로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이제 제법 적응하여 답신을 적을 때에는 적절한 수의 하트, 그림 등을 기교 있게 첨부한다.


위계서열에 대한 감수성도 확실히 다른 것 같다. 어느 날 아이가 말을 안 듣고 한껏 미적거리고 있었길래 최대한 교양 있고 친절하게 "왜 그러는고야~?" 했더니 딸아이가 웃으며, “아빠 무서워서 내가 복수하려고”라고 하는 것이다. 충격적이었다. ‘안 예뻐서 안 먹어’를 들었을 때와 같은 매우 이질적인, 어떤 다른 세계를 느꼈다.


내가 아들을 키워보지 않았으니 정확한 비교는 안 되겠지만 나의 어린 시절과 비교해 볼 때, 나는 아버지를 무서워하는 동시에 ‘윗사람’으로 인식하여 감히 대들 생각을 못하였다. 그런데 나의 사랑스러운 딸아이는 가끔 엄격해진 나를 대하면 무서움은 느끼면서도 수직적 위계로는 포지셔닝하지 않는 듯하다.


무서워서 복수라.. 위계서열 지도를 디폴트 탑재하고 살아온 아빠는 딸아이의 저 신박한 논리가 당혹스럽기만 하다. (내가 무섭다는 말인지 안 무섭다는 말인지. 앞으로 무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다 복수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어쩐다지..) 하지만 나는 교양 있는 아빠. 얼른 정신을 수습하고 아내의 충고에서 답을 찾는다. '윗사람'이 못되면 '옆사람'이 되어야지. 훈육을 하려면 딸아이의 마음을 먼저 얻으라는 말이 바로 그 말이었던 것이다.


다름이 주는 당혹감. 아이는 나만큼, 아니 더 크게 느낄 것이다. 길지 않은 인생에서 갑자기 이렇게나 잘 안 통하고 답답한 존재와 단 둘이 살게 되다니. 그래도 어쩌냐. 서로 잘 적응해봐야지. 이 시간이 얼마나 뜻깊은 시간인 줄 아는 아빠가 더 잘해야지 뭐^^


그렇게 아빠는 오늘도 아이의 더 가까운 옆으로 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예쁜 색을 골라 답장을 써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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