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우리는 웃고 있어

by 신민화

지난 일요일 사진앨범 정리를 했다. 우리 집에는 내 앨범 2권, 동생 앨범 2권, 엄마아빠 앨범 1권 이렇게 5권에 작은 앨범 하나 더 이렇게 늘 있었다. 그런데 이사를 다니면서 다 잃어버리고 동생 앨범 중에서 두꺼운 거 하나, 내 앨범 작은 거 하나, 작은 앨범 하나만 남았다. 내가 신생아 시절에 찍은 사진에도 그 앨범이 찍혀있으니 정~말 오래된 앨범인 거다. 그래서 종이가 정말 누렇게 변했고 필름도 조금만 힘주면 바스러져버릴 것 같아서 새 앨범으로 사진을 옮겨야지 생각만 하고 미루다 미루다 드디어 앨범 정리를 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서부터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사진을 엄청 많이 찍으셨는데 그 뒤로는 먹고사는 일이 바빠져서 사진이 뚝 끊겼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는 사진이 거의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 아무튼 유년시절의 모습이 대부분인 사진을 한 장 한 장 꺼내서 들여다보고 새 앨범에 자리를 찾아서 다시 끼워 넣는데 한참이 걸렸다. 살면서 여태까지 몇 번이나 봤는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본 사진앨범인데 이번엔 아주 오랜만에 보는 거여서인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저 사진 속에 있는 사람이 내가 맞는지. 사진 속에 있는 사람들이 내 가족이 맞는지. 모든 게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 아빠, 동생의 가장 최근 모습과 너무 다른 모습이 담겨있는 사진들. 내 느낌에 우리 엄마는 늘 그대로였던 것 같은데 초등학생 시절 내 옆에 있던 엄마,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젊은 시절의 곱고 예뻤던 엄마. 그때도 내겐 엄마는 그냥 엄마일 뿐이었는데 그때의 엄마보다 더 나이를 먹고 나서 나보다 어린 나이의 그 시절의 엄마를 보니 너무 앳되고 곱고 예뻤다. 저렇게 예뻤구나 우리 엄마.




6학년 운동회 날 여학생들은 부채춤을 췄는데 부채춤추는 사진을 왜 그리 많이 찍어놨는지 정리하는 김에 몇 장 남기고 버리려고 다 꺼내서 한 장 한 장 보는데 94년 가을 어느 날 찍힌 그 많은 사진들. 심지어 살면서 몇 번이나 봤는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들춰본 사진들인데 처음으로 그 사진들 속에 찍힌 엄마를 발견했다. 사진 중앙에 부채춤추는 나, 웃을 줄 모르는 뚱했던 나, 그 저 편에 사진 구석에 아주 작게 엄마가 찍혀있었다. 엄마가 웃고 있었다. 내 쪽을 바라보면서. 내 쪽을 향해 걸어오면서 엄마는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흐릿했지만 선명했다 엄마의 웃는 모습이. 저 때 엄마가 날 보고 있었구나. 여태 엄마가 저기에 서계셨다는 걸 몰랐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뒤로 가지런히 하나로 묶은 머리, 엄마가 늘 입고 다니셨던 수수한 옷차림. 맞아. 그때 늘 보고 살았던 엄마의 웃는 얼굴. 동생과 똑같이 생긴 엄마의 얼굴.




부채춤을 추던 나는 누가(누구였는지는 모르겠음) 날 찍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던 건지 죄다 입이 툭 튀어나온 뚱한 모습으로 찍혀있어서 너무 보기 싫어서 사진을 다 버리려고 했는데. 구석에 엄마가 같이 찍힌 사진 빼고는 전부 다 정리했다. 나한테 그 사진은 내 사진이 아니라 엄마사진이니까.

새 앨범 속에는 시간 순서와는 아무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정리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나는 보면서 이게 언제 적 사진인지 단번에 알 수 있으니까. 이 사진앨범은 나만 볼 테니까. 나 죽을 때 같이 태워달라고 할 거니까.




사진은 더 과거의 엄마, 아빠, 동생의 모습도 담고 있다. 나는 국민학생이었다. 1학년 때 소풍사진엔 엄마도 있고 동생도 있다. 그땐 소풍 갈 때 엄마도 같이 갔었나 보다. 단체사진 속 내 옆에 서있는 키 작은 동생이 너무 귀엽다. 그땐 내가 어딜 가나 내 옆에 딱 붙어있던 내 껌딱지였다. 엄마 말로는 동생이 어디 가서 맞고 오면 내가 가서 때려줬다고. 동생의 운동회 사진도 있다. 동생은 하얀색 스타킹을 거꾸로 신고 있다. 머리에 무슨 왕관을 쓰고 있다. 저렇게 입고 무슨 율동을 했던 모양이다. 엄마도 하얗게 같이 입고 둘이 같이 손을 잡고 있는데 우리 엄마도 동생도 너무 귀엽다. 그때 저 사진을 보면서 동생이 자기 스타킹 거꾸로 신고 있다고 하고 둘이 같이 배꼽이 빠지도록 깔깔거리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저 사진이 그렇게 웃겼나 보다. 지금은 하나도 안 웃긴데 그때는 정말 눈물을 흘리면서 깔깔거렸다.



동생을 목마 태우고 함께 달리는 엄마 아빠도 있다. 엄마, 아빠 목을 꽉 끌어안고 목마에 탄 동생도 엄마도 아빠도 모두 웃고 있다. 맞아 저 세 사람. 내 사랑하는 가족. 그리운 내 가족. 내 엄마, 아빠, 동생.

더 과거에는 동생이 태어나기 전 외동딸 시절의 내 모습도 있다. 동생이 없던 시절 난 뭐 하고 놀았을까. 내 유년시절은 동생 없이는 말이 안 되는데. 우리는 연년생이어서 이내 동생이 태어났을 테지만 동생이 있던 내 유년시절은 매일매일 행복했다. 그땐 몰랐지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를 안고 있는 엄마 사진이 있다.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엄마의 미소. 엄마는 저 때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맞아 난 저렇게 엄마가 안아준 아기였구나. 저 엄마 품에서 무럭무럭 자라서 지금 여기까지 왔구나. 저렇게 어린 나이에 아기를 낳아서 키우고 엄마가 됐구나 우리 엄마.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 정말 맞는 말이다. 83년도의 어느 날, 89년도, 94년도의 어느 날 어떤 순간이 그 한 장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이 남아있고, 같이 살면서 매일 봤지만 시간이 흘러 이제는 기억에서 흐려진 그들의 웃는 모습이 사진 속에 남아있다. 너무 고맙다. 사진을 찍어준 엄마, 그리고 사진을 찍어준 사람들.




여태 우리 집엔 5권 정도의 사진 앨범이 있었는데 이제 한 권이 됐다. 그 한 권에 시간 순서는 뒤죽박죽이지만 엄마, 아빠, 동생, 그리고 내 사진이 다 있다. 청춘시절의 아빠가, 고운 엄마가, 내 귀염둥이 껌딱지 동생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환하게 밝게 웃고 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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