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의 차이 안에서
울산여행의 마지막 글입니다.
울산시립미술관은 고흐 작품을 전시할 때 가보고 싶었다. 비록 고흐는 전시 기간이 끝나 볼 수 없어 서울에서 본 인상주의 전시회 때 본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렇지만 울산까지 와서 미술관 정도는 가고 싶은 마음에 버스를 타고 울산롯데호텔에서 갔다. 롯데호텔 버스정류장에서 십 여 분 정도 기다리면, 바로 가는 버스가 있었지만, 기다리는 것보다 15분 정도 걷는 편이 낫겠다며 다른 것에 올랐다.
울산공항 쪽에서 내려야 했음에도 잠시 안내 방송을 놓친 것이 화근이었다. 이런 ~ 어디서 내려야 하나 ? 가장 빨리 정차하는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뒤 네이버 지도를 켰다. 한 번에 바로 가는 버스가 있었지만, 어느 쪽에서 타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 버스가 올 때까지 1분 여가 채 안 남았다. '윽 ~~' 눈앞에서 맞은편 정류장을 지나는 것을 타야 했구나!
우선 너무 외져 보이는 장소로부터 나가기 위해 가장 먼저 오는 버스 편을 타고 가장 뒷자리에 앉아 네이버 지도를 다시 검색했다. 동네 근처에서도 걸어서 5분이면 갈 거리를 20여 분 동안 돌고 도는 여행자에게 길을 안내해 주었을 만큼 네이버 지도는 항상 정확하고 빠른 시간으로 도착할 방법을 알려주진 않는다.
지도를 검색하니 미술관 바로 앞에서 내려주진 않지만, 근처에서 내려주는 버스 노선을 탔던 지라 그대로 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안내 방송을 기필코 들으리라'
시간이 흘러내릴 때가 되었다. 누군가에는 집 앞에 나가 동네 병원을 가거나 가게를 다녀오는 일상이 담긴 익숙하고 친숙한 길이지만, 초행길의 여행자에게는 늘 설레면서도 긴장하는 길이다
울산시립미술관은 전시품 교체로 인해 무료 관람이 가능했다 다만, 전시 작품이 몇 점 안 되어 시립미술관을 다녀왔다는 말이 다소 무색하지만
그렇지만 몇 점의 작품 안에는 가구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자연의 소멸에 관한 심도 깊은 성찰과 새로운 미술 사조를 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안소니 맥콜의 전시회였다
본래 영화감독이던 그는 빛과 연무에 관한 관점을 1970년 대에 가졌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그의 생각을 모두 표현할 수 없어 잠시 중단되었던 이야기가 기술력의 발전에 힘입어 다시금 전시 작품으로 관객 앞에 서게 된 것이다
뿌옇게 흘러나오는 연기 속에 웃으며 오가는 이들과 달리 나는 이게 대체 뭔가 싶었다
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던 지라 단지 다른 관람객의 경쾌한 웃음소리와 검은 그림자의 실루엣이 하나의 작품처럼 보여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가 연기 안으로 손을 넣고 몸을 넣고 연기가 퍼져 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이 작품은 이렇게 보고 갈 것이 아니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전시실 밖으로 나가 작품 설명을 꼼꼼히 읽은 뒤 다시 들어와 작품을 대했다
빛은 하나의 초점으로부터 시작해 넓은 스펙트럼과 같이 번지고 퍼져나갔다. 그 사이를 채우는 하얀 연기는 빛 안에 머물지만, 빛이 없는 공간 안에도 머물렀다
또한, 이를 접하는 관객은 자신의 신체와 입김, 바람 등을 통해 또 다른 움직임을 만들고 새롭게 정의 내려진 작품 안에서 자신만의 해석을 더한다.
억지로 끼워맞추자면, 아이디어는 있었으나 오랜 기다림이 필요했던 안소니 맥콜처럼 나 역시 울산에서의 첫 직장생활을 오래 견디며 기다렸다면 어디선가 학생을 가르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지는 않을까? 라는 말을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이러한 상황에서 사용해도 되는지 감히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의 기다림, 그건 대체 어떤 걸까 ?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씨름한 지 몇십 년째다
에어팟 케이스에 'Endurance'라는 각인을 넣었을 만큼 내게 필요한 성품이라는데, 나는 아직도 이 단어가 낯설고 어렵다
아무런 기대와 소망 없이 시간만 흘러가길 바라며 물리적인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기다림이 충족되는 건 아니었다
지금은 내가 무언가를 바라고 그것이 지금 이루어지지 않고 무언가 진척 상황이 없는 것 같더라도 끝까지 소망함으로 기다리는 것이 기다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듯싶다
하지만 그렇기에는 대체 언제 까지냐는 물음이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르려고 한다
그냥 매일매일 주어진 것을 하다 보면 그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고 그때는 나의 어떠한 간절한 바램이 어떠한 모습으로 나를 찾아와 주어 오래 기다렸노라며 내 이마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눈을 덮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며 어깨를 다독여줄까
그때, 기다림의 열매는 과연 어떤 것일지 궁금해진다
에필로그 :
여행의 마무리가 된 지금도 어떠한 치유가 이루어졌는지 다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할 치유는 이미 다 이루어진 건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20대 사회 초년생 시절에 보던 현대 자동차 소속 점퍼를 입은 직원이 길거리를 다니고 이질감이 느껴지던 백화점, 경상도 사투리, 모든 것이 낯설었고 어렵기만 했던 울산을 스스럼없이 (아니, 조금은 지난 시절의 무언가가 튀어나올 까 전전긍긍하며 조심히 저를 데리고 다니느라 긴장했지만요) 다녀온 것부터가 치유였지요
그리고 하나 더 붙인다면, 벚꽃 구경 간다고 같이 차를 타고 경주에 다녀오고 강원도로 여행도 다녀왔던 그 정 많던 사람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