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낮시간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환승을 한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는 불편함을 이럴 때 체감한다.
'키가 좀 더 컸으면 좋겠다'
비록 158cm의 키는 대한민국 여성 평균과 근접한 키지만, 붐비고 사람이 많아서 앞이 보이지 않는 지옥철 안이라면 평소와 다르게 키가 좀 컸으면 좋겠다고 소망하게 된다. 마흔의 나이에 이 소망은 절대 이룰 수 없다. 물론, 목숨을 걸고 사지연장술을 할 수 있지만, 건강한 노년을 준비해야 하는 중년이기에 결코 실행할 리 없다. 개인적으로 이루지 못한 소망은 살포시 딸들에게 전가해 본다.
'내 딸들이라도 키가 컸으면 좋겠다.'
아쉽게도 십 대인 두 딸들 성장과정에서 큰 키를 가진 적이 없었다. 아기였을 때 유난히 입이 짧았던 첫째는 분유를 거부하고, 모유수유만 하더니 키가 하위권에 머물렀다. 커 가면서 점차 키가 커져서 키 백분율이 아기 때보다는 많이 올라오기 했지만, 아쉽게도 상위권에 속하지는 않는다. 둘째는 분유를 먹고 자랐지만, 돌앓이를 시작으로 아픈 적이 종종 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역시 키가 크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키는 70%가 유전이고, 그중에서 아빠보다는 엄마를 많이 닮는다고 하는데, 역시 딸아이들도 키가 큰 아빠보다 키가 크지 않은 엄마의 유전자를 선택받은 것 같다.
물론 키를 키우기 위해서, 엄마로서 모든 노력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10시부터 성장 호르몬이 나온다고 해서, 무조건 일찍 재웠고, 다른 건 몰라도 골고루 좋은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도록 매끼 고기반찬에, 우유를 챙겨주고, 단백질 간식을 제공하는 등 나름의 최선의 노력을 했다. 성장클리닉을 찾고 예상 키를 운운하며 성장 호르몬 주사 치료를 권하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자연 성장을 택했다. 자연 성장을 택한 이후에는 줄넘기를 매일 1천 개씩 시키고, 태권도, 발레, 수영, 플라잉 요가, 농구, 리듬체조처럼 키에 좋다는 운동은 다 시켜봤다. 이처럼 자연적으로 할 수 있는 엄마의 노력은 다 했다.
'키가 컸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소망을 딸들이 이뤄줄 수 없다면 다른 소망은 무엇이 있을까.
몇몇 생각들이 머릿속에 휙휙 떠오른다.
'눈(시력)이 좋았으면 좋겠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했으면 좋겠다.' 등이 있다.
시력에 대해 말해 보자면, 나 자신은 눈이 좋지 않다.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해서, 계속 눈이 나빠져서 이제는 -5 디옵터, -6 디옵터의 시력을 갖고 있다. 기억이 선명한때는 줄곧 안경을 써온 셈이다. 자라오면서 내내 안경이 피부처럼 함께 했기에 그 불편함을 익히 알고 있다. 학교 체육시간에 잘못해서 안경에 공을 맞으면 맞은 부분도 아프고, 안경도 망가져서 내내 불편하다. 겨울철에는 그 불편함이 더하다. 밖에 있다가 따뜻한 실내로 들어가면 안경이 뿌예져서 앞이 보이지 않아 그렇게 불편할 수 없다. 고집스럽게 시력교정시술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자고 일어나면 천장 벽지의 무늬를 본 경험이 없다. 라식 수술을 한 지인에 따르면 자고 일어나서 천장 벽지 무늬가 보이는 순간 시력이 좋아졌음을 실감했다고 한다. 이제는 노안이 올 나이에 가까워졌으니 시력교정술을 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다.
엄마의 나쁜 시력을 닮기 바라는 소망도 보기 좋게 빗겨나갔다. 마흔이 넘도록 시력이 1.5가 넘는 아빠를 닮지 않고, 두 딸은 엄마를 닮아 드림렌즈를 낀다. 안경을 끼는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어 끼기 시작한 드림렌즈는 안경을 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빼면 꽤나 불편하다.
우선 고가이다. 2년 남짓한 수명을 가지고 있는 드림 렌즈의 가격은 백만 원이 넘는다. 매일 밤 렌즈를 세척하고, 눈에 끼어야 하는데 둘째는 아직 혼자 렌즈를 끼는데 어려움이 있어서 매일밤 렌즈를 껴줘야 한다. 엄마가 집에 늦게 오는 날이나 집에 없는 날에는 고스란히 렌즈를 끼지 못하고 잠들어야 한다.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 날이면, 나의 렌즈에 두 딸들의 드림렌즈와 용액으로 인해서 짐이 대폭 늘어간다.
'눈(시력)이 좋았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슬프게도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음의 소망
'좋은 대학에 진학했으면 좋겠다.'는 어떨까?
좋은 대학에 진학했으면 좋겠다는 사실 모든 부모들의 소망일 것이다. 하지만 그 소망만큼 이루기 힘든 소망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엄마인 나 조차도 더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그렇지는 못했고, 그런 아쉬움을 내내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학창 시절에 최선의 노력을 다했는지 되돌아보면, 꼭 그런 편은 아니라서 양심이 콕콕 찔린다. 나 자신도 좋은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목표를 개인적으로 이루지 못했는데, 아이들에게 그런 엄마의 이루지 못한 소망을 떠넘기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마지막 소망도 패스.
그럼 이제는 아이들에게 정말 바라는 바를 떠올려본다.
꿈을 가지고 그 일을 직업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글을 잘 썼으면 좋겠다.
부자로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자 위 세 가지 소망이 떠올랐다. '키가 컸으면 좋겠다', '눈이 좋았으면 좋겠다', '좋은 대학에 진학했으면 좋겠다'라는 소망은 이룰 수 없겠지만, 위의 세 가지 소망을 딸들이 이룰 수 있도록 충분히 이끌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다.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지원해 주고 이끄는 것이 참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다시금 생각해 봤다.
지하철에서 내린 청년들은 가파른 계단을 위험천만하게 뛰어서 내려온다. 모두 다른 지하철로 환승하기 위해 바삐 서두른다. 왜 청년들의 삶이 그렇게 고달픈지 조금은 측은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최근 모든 부분에서 완벽한, 외모, 능력, 집안까지 다 갖춘 '육각형 인간'이 트렌드로 나온다. 육각형 인간은 '키가 컸으면 좋겠다' '좋은 대학을 나왔으면 좋겠다'처럼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까지 충족시켜야 하는데, 이러한 현실이 씁쓸하게 느껴진다.
#글루틴 #팀라이트 #육각형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