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 에세이를 쓸 때 여행 가기 전에 대부분의 글을 써놓고 여행 중에는 감정만 덧붙이다고 했다. 소설가 임경선도 미리 여행정보를 찾아서 여행 가기 전에 글을 써두고 간다. 감정만을 더하는 과정을 빗대어 김치를 담그기 전에 배추를 절이고 소를 만들어 놓는 것이 여행의 전 준비 과정이고, 다녀와서는 절임배추에 소만 무치는 정도로 여행 에세이를 마무리했다고 소개했다.
여행 가기 전 진작 이 과정을 알았던 나는 이것을 실천할 수 있을까? 아니다. 세계적인 작가,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아니 정식 작가도 아닌 내가 이를 실천했을 리 만무하다.
물론 여행 가기 몇 주 전부터 여행 준비를 해왔다. 소멸예정인 항공권 마일리지를 사용하기 위해 수십 번 대한항공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기항지별 잔여좌석을 검색해서 운 좋게 원하는 날짜의 항공권을 유류할증료와 세금만 내고 예약했다. 예약을 확인한 후 큰 아이의 학원 스케줄을 확인한 결과 여행 계획일과 학원의 방학이 겹치지 않았다. 학원에 결석하지 않기 위해 학원 방학과 여행 일정을 극적으로 맞춰서 예약한 항공권의 날짜를 변경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휴.
두 번째로는 여행일을 약 2주 정도 남기고 호텔을 예약하려고 보니 원하는 날짜에 유명한 호텔은 여석이 없거나 연말 성수기답게 가격이 상당히 높았다는 것이다. 치앙마이의 모든 호텔을 찾아보겠다는 각오로 부킹닷컴에 들어가 최저가순으로 호텔, 아파트를 찾아봤다. 만 10세, 만 12세의 어린이 둘을 동반한 4명의 가족 여행객이 한 방에 머무룰 수 있는 호텔은 거의 없었고, 그렇다고 방 2개를 빌리자니 그 성급의 호텔에서는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 나왔다.
깔끔한 호텔은 다 포기하고 수영장이 있는 아파트를 찾아서 결제했는데 원인불명의 결제 오류로 3번이나 예약이 취소되어 그냥 다국적계열의 체인 호텔로 예약하는데 이 과정에서 모든 진이 다 빠졌다.
마지막 위기는 여권이었다. 항공권을 예약할 때 여권번호는 나중에 등록으로 해놓았는데, 여행을 11일 앞두고 갑자기 여권을 확인했다. 그 결과 4명의 가족 중에 막내딸은 여권의 유효 기간이 한 달밖에 안 남았고, 코로나 이후로 해외여행을 가지 않았던 남편의 여권은 만료된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토요일에 발견했기 때문에 급한 데로 여권용 사진을 사진관에서 찍어놓고, 주말을 지나고 여행을 9일 앞둔 월요일에 여권을 신청했다.
구청이나 시청에서는 여권이 일반적으로 신청 후 7일에서 9일이 돼야 발급된다고 안내하는데, 9일 있다 여권이 나올 경우 우리 가족 2명은 정해진 날짜에 출발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집 근처 서초구청에 신청할지 회사 근처 안산 시청에 신청할까 고민하다가 접근이 좀 더 용이한 안산시청에 여권을 신청했고, 등기로 신청하면 조금 더 빠르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과연 여권이 없어서 여행을 못할 것인가?'
우려와는 달리 여권은 신청한 지 3일 만에 등기우편으로 발송받을 수 있었다. 휴우. 안산시청에 신청한 것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이처럼 여행을 준비하는데 초보적인 실수를 했다.
1. 학원방학을 알아보지 않고 항공권을 예약하는 바람에 임박해서 항공권 스케줄을 변경한 것
2. 급하게 호텔을 예약하니 인기가 많은 곳은 이미 풀부킹으로 예약이 불가능했던 점
3. 여권을 확인하지 않은 것.
가장 기본적인 항공권, 호텔, 여권 준비가 제대로 되지 못해서 이번 여행 준비가 충분치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3주 전부터 빌려둔 치앙마이 가이드 북 4권 중에 전자책 한 권 만을 여행 전에 완독 하고, 한 권은 여행출발 전 오전에 남은 부분을 다 읽고, 한 권은 인천 가는 차 안에서 읽었으며, 마지막 한 권은 치앙마이 가는 비행기에서 읽고 있다.
하루키 씨가 말한 것처럼 여행 전에 미리 에세이를 다쓰는 완벽한 작가식의 여행법은 이번에도 글렀다. 그래도 그런 방식을 적용해 보기 위해서 책을 읽고 글을 써보는 지금의 변화로도 나 자신을 응원해 주기로 했다.
치앙마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치앙마이 가이드북은 한참 동안 무릎 위에 펼쳐두고 먼저 도파민이 이끄는 데로 영화 바비를 봤다.
영화 바비에서는 바비의 남자친구이자 사이드역할에 지나지 않는 켄에서 '켄다움'을 찾으라고 한다. 켄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파트에서 켄이 입은 옷에 Kenough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 방식과 달라고 괜찮다. 나다움으로 충분한 여행이 될 테니까. 연착된 비행기를 타기 전 탑승구 앞에서 가족들에게 브런치스토리 앱을 다운로드해 주고, 글 쓰는 방법을 안내했다. 이번 여행을 하는 가족들도 글을 쓰며 각자다움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글루틴 #팀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