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배우러 갔다가 알게 된 것들_08
수영 선생님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뀐 후 몇 주가 지났다. 선생님이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왔다. 늘 수영복을 입고 물속에서 함께 수업하셨는데, 그날은 생리 중이라 물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물 밖 데크에 쪼그려 앉아 초보 수강생들의 동작을 바로잡아주는 모습이 불편해 보였다.
수영을 한 후 인간 몸의 한계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생리만 해도 그렇다. 여성의 몸이 물에 들어갔을 갔을 때 짠 하고 생리가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상상한다. 수영 초기 수영장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생리 때문에 수업에 빠져야 할 때마다 너무 속상했다. 수업에 빠져 나만 진도를 따라잡지 못할까봐 불안하기도 했다.
이런 불가피한 결석을 감안해 스포츠센터는 가임기 여성의 수영 수강료를 10% 할인해준다. 할인 제도도 있고 생리는 한 달에 한 번이니, 일단 그 한계는 감내하기로 한다.
내가 거의 매 수업마다 생각하는 인간 몸의 가장 큰 한계는 폐다. 자유형을 배울 때 측면 호흡이 안 돼 한참 애를 먹었고, 지금도 25m 두 바퀴만 돌아도 심장이 터질 듯 숨이 가쁘다. 이럴 때마다 나는 나의 폐를 생각한다. 인간의 폐에 저장되는 공기는 왜 이렇게 적은가. 곧 더 근본적인 질문이 따라온다.
인간은 왜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는가.
물속과 물 밖에서 자유자재로 숨을 쉬는 동물들도 있지 않은가. 바다거북은 물속에서는 피부로, 물 밖에서는 폐로 숨을 쉰다고 한다. 인간도 폐와 피부 둘 다 있는데 왜 바다거북 같은 하이브리드 호흡 체계를 갖지 못하는 걸까. 나는 수영장 코너에서 숨을 헐떡 거리며 인간의 호흡 체계를 원망한다.
이럴 거면 그냥 바다거북으로 태어날 걸.
산소가 부족해져 분별력이 흐려져서인지, 하소연할 친한 수강생이 없어서인지 나는 혼자 온갖 공상을 한다.
개구리가 헤엄치는 모양과 비슷한 평영 발차기를 배울 땐 개구리를 흠모했다. 별로 힘도 들이지도 않고 뒷다리를 펴는 것 같은데 물속에서 쭉쭉 미끄러지는 개구리. 나는 왜 개구리 뒷다리처럼 부드러우면서도 탄력 있게 물을 차지 못하는 걸까. 평영 발차기는 해도 해도 늘지 않았고, 차라리 개구리가 되는 게 더 빠르겠다 싶었다.
중급반에 가면 오리발을 끼고 수영을 한다고 한다. 얼마 전 중급반으로 옮긴 회사 후배는 처음 오리발을 낀 날 신세계를 만났다고 했다. "사람이 이렇게 빨리 헤엄쳐도 되는 건가, 이 속도로 가다가 수영장 벽에 부딪히면 크게 다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과장과 허세밖에 없는 후기를 들려줬다. 오리발을 경험하고 나면 나는 오리가 되고 싶어 질까.
수영하다 말고 후배의 말을 곱씹으며 '그래, 개구리 뒷다리에 오리발, 바다거북 폐랑 피부 정도는 갖춰야 수영 좀 할 수 있는 거지. 인간 몸은 한계가 너무 많아.' 혼자 정신승리를 한다.
이때 들이닥치는 ‘현실 자각 타임’. 내 바로 옆 레인에서 쉬지 않고 레인을 몇 바퀴씩 도는 고급반 수강생들. 개구리 뒷다리가 아니어도 평영을 할 때 쭉쭉 잘만 미끄러지고, 몇 바퀴를 돌고도 별로 지친 기색이 없어 보이는 그들. 인간 몸의 한계가 아니라 네 몸의 한계일 뿐이라고, 소리 없이 말해주는 그들.
그럼에도 나는 계속 바다거북이 생각날 것 같다.
마음만은 물개인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많은 날, 그런 공상들 덕에 한숨 돌릴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