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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 Nov 14. 2019

굿바이, 유아풀

수영 배우러 갔다가 알게 된 것들_07

수영장에서 유아풀은 가장 만만한 곳이다. 준비운동 시작 전 발을 담그고 대기하는 곳이고, 성인풀에 가기 전 몸에 물을 한 번 끼얹는 곳이기도 하다. 다음 시간 수업에 조금 일찍 온 사람들이 이전 시간 수강생들이 수업 중인데도 몸을 풀러 들어오는 곳도 유아풀이다.

이름 그대로 유아들이 수영하는 곳. 물이 내 허벅지에서 찰방거리는 수심 70cm의 작은 수영장을 나는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다니는 스포츠센터는 성인풀과 유아풀 사이 공간에서 성인풀을 바라보며 준비운동을 한다. 준비운동이 끝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진해 성인풀의 자기 레인을 찾아간다. 하지만 나는 뒤돌아서 유아풀로 갔다. 그때의 머쓱함이 싫었다. 다른 사람들이 가는 방향과 반대로 가는 것은 언제나 사람을 불안하게 하지만, 그게 실력 때문일 때는 초라함까지 더해진다. 유아풀에 있으면 왕초보 딱지를 이마에 붙이고 있는 것 같았고, 모두가 만만하게 드나드는 곳에서 배우는 게 자존심 상하기도 했다.

연습을 하다 지칠 때면 5m 건너 성인풀에서 물살을 가르는 다른 수강생들을 바라보곤 했다. 성인풀에 있다는 것만으로 모두가 수영을 잘하는 것 같았고, 멋있어 보였다. 수영 동작이 좀 잘 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이제 나도 성인풀로 갈 수 있을까’란 생각부터 고개를 들었다.

수영을 배운 지 두 달이 됐을 때, 여느 때처럼 준비운동 후 유아풀로 갔다. 선생님이 말했다. “이제 여기 있지 마세요. 저기(성인풀 초보 레인)로 가세요.”  

뛸 듯이 기쁠 줄 알았다. 그런데 서운한 마음이 앞섰다. 유아풀만의 평온함을 알아버렸기 때문일까. 각자 최선을 다해 치열하게 연습하지만 물만 요란하게 튀길 뿐 한 없이 느리게 수영하는 수강생들, 수영은 안 배우고 늘 킥판에 매달려 찰방찰방 발차기만 하다가 가시는 할머니까지. 유아풀에 있는 걸 부끄러워했던 오랜 시간은 말끔히 잊은 채, 이 풍경들이 갑자기 애틋해졌다.

유아풀에 있을 때도 가끔 성인풀에 가긴 했었다. 자유형 기본 동작을 거의 다 배웠을 때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 20분 정도 성인풀 초급 레인에서 연습하게 했다. 처음 성인풀에 풍덩 들어갔을 때의 당혹감을 나는 잊지 못한다. 키가 150cm 초반인 내가 130m 깊이 물속에 들어가니 턱까지 물이 찼다. 남들이 볼까 봐 얼른 발 뒤꿈치를 들었다. 그래도 어깨가 나올랑 말랑한 깊이였고, 가만히 서 있어도 왠지 가슴이 답답했다. 또 물이 깊어서인지 같은 동작을 해도 유아풀에서보다 물을 헤쳐나가는 게 더 힘들게 느껴졌다.

가장 힘들었던 건 끊임없이 돌고 도는 수업 방식. 쉴 틈 없이 25m 레인을 오가는데, 뒤에서 헤엄쳐 오는 사람에게 방해가 될까 봐 중간에 멈춰 쉴 수도 없었다. 그렇게 성인풀에 갔다가 유아풀에 돌아오면, 정글에서 맹수들에게 쫓기다 아늑한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마저 들곤 했다. 성인풀 진출은 내 2개월 수영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일이었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건 그래서였다.




나는 이제 준비 운동이 끝나면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향으로 걸어간다. 맨 왼쪽, 초급반 레인이다. 깊은 물 공포증도 어느 정도 극복했고, 하나 안 하나 별 차이가 없는 까치발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뺑뺑 도는 수업이 너무 힘들 땐 적당히 연습하는 요령도 늘었다.


그리고 가끔 건너편 유아풀을 가만 바라본다. 첨벙첨벙 발차기에 맞춰 요란하게 흩어지는 물과 데크에 엎드려 동작을 반복 연습하는 수강생들의 수모를.

나와 비슷한 시기에 유아풀에서 수영을 배운 사람은 대여섯 명 정도 됐지만 함께 성인풀에 건너온 사람은 1명뿐이다. 각자의 사정으로 수영을 그만뒀겠지만, 성인풀에서 함께 수영 희로애락을 나눴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 유아풀에 있는 수강생들은 포기하지 않고 이곳으로 건너오기를, 작은 응원을 보낸다.


Photo by albert hysen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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