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배우러 갔다가 알게 된 것들_05
“옳지!”
2019년 7월 24일 이른 아침, 나는 이 말을 좋아하기로 했다.
무언가를 새로 배우는 사람이 곧잘 따라 할 때 칭찬할 수 있는 말은 많다. “그렇지” “잘한다” “좋아” “완벽해”라고 하거나, 그 대상이 아이라면 “오~~” “와우” “최고” 등 온갖 감탄사를 갖다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많고 많은 칭찬의 말 중 판소리에서 북을 치며 추임새를 넣는 고수(鼓手)나 할법한 “옳지!”를 좋아하기로 한 것은, 나의 수영 선생님이 이 말로 나를 칭찬했기 때문이다.
나는 평영 발차기를 배우면서 긴 어둠의 터널에 진입했다. 개구리가 헤엄치는 것과 비슷한 평영 발차기는 너무 낯설고 어색했다. 발목과 무릎을 쭉 펴고 발차기를 하던 자유형, 배영과 달리 발목은 구부리고 무릎은 접었다 펴기를 반복해야 했다. 개구리 뒷다리 모양처럼 접은 다리를 뒤로 뻥 차고 모으면서 추진력을 얻는 발차기였다.
처음 배우던 날, 당연히 잘 안됐다.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유튜브 수영 동영상을 보며 동작을 익혔다. 하지만 도무지 몸이 앞으로 나가지 않고 엎드린 채 둥둥 떠있기만 했다. 의욕을 내 더 힘차게 허리를 구부리며 다리를 엉덩이 쪽으로 당기면 몸이 오히려 뒤로 가기도 했다. 더 가혹한 것은 이 동작을 함께 배운 수영 동기들은 모두 앞으로 쭉쭉 잘 나가고 있었다는 거다.
아주 가끔 “아 이렇게 차면 되겠다”며 혼자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느낌을 안다고 다음번 발차기 때 똑같이 되는 건 아니었다. 수많은 좌절과 드문 드문 한 설렘으로 이 주일 가까이 평영 발차기 늪에서 몸과 마음이 허우적 대고 있을 때였다.
선생님이 평영 팔 동작을 가르쳐주셨다. 하체는 물 밖 데크에 엎드리고 상체만 물 위에 뜬 채 동작을 배웠다. 머리를 물속에 넣은 채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가 팔을 아래로 내려 물을 깊게 뜨며 모을 때 머리도 수면 위로 들어 호흡을 하는 거였다. 데크에 엎드려 50번쯤 팔 동작을 연습한 후 물속에 들어갔다.
선생님은 일단 자유형 발차기를 하며 평영 팔 동작을 연습해보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박자를 딱딱 맞춰 머리가 물속에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리듬감, 나도 당황스러웠다. 타고난 박치인 나는 노래 박자를 못 맞추는 것은 기본, 준비 운동을 할 때마다 PT 체조 시작 박자를 맞추지 못해 엉거주춤 대다가 겨우 체조를 따라잡는다. 그런 내가 이렇게 리듬감 있게 평영 팔 동작을 하다니. 낯섦과 신기함, 뿌듯함이 교차하며 유아풀을 두 바퀴쯤 돌았을 때였다.
수강생들을 한 명씩 봐주던 선생님이 나를 보며 말했다. “옳지!”
온몸에 퍼지던 행복 호르몬. 내 안의 세포들이 일제히 춤이라도 추는 듯 온몸이 간질간질 전율했다. 수업이 끝나고 샤워실로 가는 계단을 오를 때도 몸이 물 위에 붕 떠 있는 듯 가벼웠다. 스포츠센터 셔틀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회사에서, 퇴근하고 돌아와 잠들 때까지 “옳지”는 그날 하루 오롯이 나와 함께 했다. 그리고 나의 칭찬 보관함에 고이 저장됐다.
보관함에는 30년간 받은 칭찬들이 모여있다. 일곱 살 때쯤 할머니, 엄마 앞에서 ‘콩쥐팥쥐’를 소리 내 읽은 후 엄마가 “책을 참 잘 읽는다”라고 했던 말부터, 입사 후 존경하던 선배에게 들은 업무에 관한 칭찬까지. ‘칭찬받은 것 같기도 한’ 애매한 기억 말고, 칭찬받았던 당시의 온도와 냄새, 풍경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들만 보관돼 있다.
이 칭찬들은 ‘꼭 기억해야지’ 다짐하고 자꾸 곱씹은 것도 아닌데 문득 눈 앞에 펼쳐진다. 몸과 마음에 너무 강렬한 기쁨이 지나가 서였을까. 뼈에 새기기라도 한 듯 내 몸에 녹아있다가 불현듯 솟아오른다. 아무 맥락 없이 느닷없이 떠오를 때도 있고 비슷한 상황에서 옛 칭찬이 소환되기 한다. 또 ‘나는 도무지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 ‘지금 하는 일은 적성에 너무 안 맞아’ 같은 부정적인 생각에 포위됐을 때 나를 구하러 오기도 한다. 10개도 채 안 될 이 눈부신 장면들은 나를 단단하게 해 주었고, 여전히 나를 지탱하는 중요한 힘이다.
그런데 ‘옳지!’가 회사 선배의 칭찬 후 8년 만에 새로 저장된 칭찬이란 건 아무래도 좀 씁쓸하다. 지난 7년은 내가 가장 열심히 살았던 시기다. 출산, 육아라는 낯선 세계를 만나 고군분투했고 직장과 집을 번갈아 출근하며 쉼 없이 살았다. 하지만 여성의 출산, 좋은 엄마 되기는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힘들지” 걱정을 해준 사람들은 있었어도 “잘했어” 칭찬을 해 준 사람은 없었다. 아이들을 낳고 비할 데 없는 충만감을 느끼면서도, 이따금 밀려들던 서늘함은 그래서였을까. 인정, 칭찬의 부재 속에 쓱싹쓱싹 내가 지워지던 느낌.
나는 어느덧 회사에서도 10년 차가 넘는 중간급 직책이 됐다. 업무 처리를 잘하는 게 당연한 사람이 된 것이다. 잘하는 게 당연한 일에는, 잘하는 게 당연한 사람에게는 인정이나 칭찬이 있을 수 없다. 어쩌면 나는 지난 7년간 집에서는 칭찬을 기대해선 안 되는 일을 했고, 회사에선 칭찬을 바랄 수 없는 연차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7월 24일을 ‘옳지의 날’로 명명하며 호들갑을 떨었나 보다. 너무 오랜만의 칭찬이었고, 팔 동작 50번 연습이라는 노력으로 이룬 작은 성취를 있는 그대로 칭찬받을 수 있어서. 못 하는 게 당연한 초급반 수강생, 수영장은 내가 머무는 공간 중 유일하게 ‘잘하는 게 당연한 사람’으로 살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쓱쓱쓱 여기에선 지워졌던 나를 다시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옳지! 추임새에 맞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