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배우러 갔다가 알게 된 것들_04
나는 몇 년 전부터 에세이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글을 쓸 수 없는 이유들이 너무 많았다.
책을 많이 읽어 지식을 풍부하게 해야 했고, 다양한 경험으로 통찰력을 길러야 했으며 남들이 쓰지 않는 나만의 글감을 찾아야 했다. 또 아이들이 좀 더 크고, 회사에서는 덜 바쁜 부서에 배치돼 혼자만의 시간이 충분해야 했다.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끝이 없었고, 나는 이 조건들이 평생 갖춰지지 않을 거란 것도 알았다. 이 이유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핑계일 뿐이었다. 사실 내게 중요한 건 그냥 글 쓰기가 아니라 좋은 글, 아주 완성도가 높은 글이었다. 서툰 글로 내 얕은 지식과 유치한 문장, 모순덩어리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름다운 문장과 빛나는 통찰력으로 “내가 이렇게나 근사한 사람이랍니다” 꾸미고 싶은 욕심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완성도 높은 글에 대한 강박 때문에 한 글자도 못 쓰던 나는 수영을 배운 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서툴고 투박한 그대로 일단 쓰기로 했다. 온갖 핑계로 한사코 거부했던 ‘일단 쓰기’를 받아들인 건, 수영을 하며 내 몸을 통과한 작은 성취의 경험 덕분이었다.
처음 자유형 발차기를 배울 때였다. 머리를 물속에 넣고 유아풀 반대편까지 헤엄 쳐 갈 때면 중간에 3,4번이나 고개를 들고 숨을 쉬어야 했다. 물리적인 거리는 고작 10m 남짓. 하지만 물속에서는 금방 숨이 가빠져 도저히 숨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겨우 반대편에 닿으면 선생님은 알듯 말듯한 말씀을 하셨다. “종아리로만 찰방찰방 차지 말고 허벅지부터 다리 전체로 물을 꾹꾹 누르세요.”
물속에서 조금만 숨을 참아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물은 또 어떻게 누르라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일주일에 세 번씩 수영을 했다. 그리고 아주 미세한 변화들이 느껴졌다. 숨을 두 번만 쉬고도 반대편에 도착할 때가 있었고, 허벅지를 큰 폭으로 움직이니 몸이 앞으로 더 쭉 미끄러지는 것 같았다. ‘아 이거 구나. 계속 연습하니까 되는구나.’ 너무 당연한 이치인데, 마치 몰랐던 사실을 처음 발견한 것처럼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글 쓰기 근육’도 이렇게 늘려보기로 했다. 폐활량, 다리 근육처럼. 도무지 늘 것 같지 않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 막막하지만 일단 써보기로 했다.
아직 근육 하나 붙지 않은 빈약한 글을 온라인에 공개하며 쓰기로 결심한 건 얼마 후다. 수영을 배우는 의외의 순서를 알게 되면 서다. 수영에는 4가지 영법이 있다.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수영 수업 첫 한 달간 자유형만 배웠던 나는 자유형을 모두 마스터해야 다른 영법을 배우는 줄 알았다. 자유형으로 수영 기초를 탄탄히 다져야 더 어려운 영법도 하나씩 차례로 배울 수 있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킥판을 잡고 겨우 자유형을 할 수 있게 됐을 때 선생님은 천장 보고 누워서 뜨기를 가르쳐줬다. 아직 자유형도 제대로 못하는데 벌써 배영 기초 동작을 배워도 되나 의아했다. 그런데 자유형, 배영 둘 다 헤매고 있을 때 평영 동작을 새로 배웠고, 이런 방법으로 접영까지 모든 영법의 기초 동작을 익혔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내 우려와는 달리 자유형 실력이 늘고 있었다. 준비 운동 후 물에 들어가면 일단 자유형부터 연습한 후 다른 영법을 차례차례 익혔기 때문이었다. 일단 네 가지 영법의 기초 동작을 모두 배운 후 매일 그 영법들을 연습하며 조금씩 실력을 늘려가기, 이게 내가 다니는 스포츠센터의 수영 배우는 순서였다.
한 가지를 꼭 완벽하게 매듭짓지 않아도 되며, 모두 어설프고 엉성한 그대로 다 같이 느릿느릿 나아가는 일. 이 느긋함 속 보일 듯 말 듯 작은 걸음들이 나는 좋아졌다. 성큼성큼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고 싶었던, 완벽한 글에 대한 강박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나는 여전히 책을 많이 읽지 않으며 통찰력은 또 어디서 어떻게 기르는 건지 모르겠다. 아침엔 회사, 저녁엔 육아 출근을 반복하는 일상에서 글 쓸 시간도 많지 않다. 하지만 나는 허약한 글들을 짓기로 했다. 이 글들이 느리지만 앞으로 나아가길 응원할 것이고, 오랜 후 조금은 근육이 붙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다. 훗날 이 글들을 읽으며 수영을 참 좋아하던 나, 어떻게든 글을 쓰려 애쓰던 지금의 나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기쁠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