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배우러 갔다가 알게 된 것들_03
“수태.. 기?”
내 말에 친구 눈이 동그레 졌다. “수태기인 것 같아…”라는 내 말에 임신을 뜻하는 수태(受胎)를 떠올린 거였다.
인터넷 수영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다 처음 본 단어 ‘수태기’. 무슨 말인가 싶어 커뮤니티 글을 눌러봤다. 글쓴이의 사연은 이랬다. 수영장 갈 시간만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1년간 재밌게 수영을 배웠는데, 이젠 스포츠센터 주차장에 도착하고도 수영장에 가기 싫어 차를 돌린다는 거였다. “요즘 나도 그렇다” “그럴 땐 수영복을 새로 사 입어라” “수영 두어 달 쉬어라” “수영장 친구를 사귀어라” 등 공감과 위로의 댓글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그러니까 수태기는‘수영+권태기’의 합성어인 것 같았다.
의아했다. 1년 배웠다고 지겨워질까. 나는 5년 10년을 해도 수영이 재밌을 것 같은데. 수영을 잘하게 되면 물개처럼 수영장을 누비며 더 재밌게 수영을 할 것 같은데. 수영 배운 지 한 달밖에 안된 데다 수영 동작 하나하나 익히는 재미에 푹 빠져있던 내게 수태기란 영원히 오지 않을 미래 같았다.
그러나 1년도 아닌 40일 만에 그분이 오셨다. 그 날은 7월 10일, 13번째 수영 수업 날이었다. 속상한 마음을 일기장에 빼곡히 적어놔 날짜까지 기억한다.
발단은 '킥판'이었다. 처음 수영을 시작하면 물속 호흡법 ‘음~ 파!’와 자유형 발차기를 배운다. 물밖 데크에 걸터앉아 발차기 연습을 한 후 킥판을 잡고 물속에서 발차기를 한다. 자유형 팔 동작까지 어느 정도 익히면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숨을 쉬는 측면 호흡을 연습한다. 여기까지 배우는 동안 내 손엔 늘 킥판이 있었다. 오른팔을 돌릴 땐 왼손이 킥판을 잡고, 오른손이 킥판을 잡으면 왼팔을 돌렸다.
그리고 이때까지 난 내가 수영 꿈나무라고 생각했다. 왕초보 치고는 몸에 힘을 빼고 부드럽게 수영을 하는 것 같았고, 수영 ‘동기’들보다 배영을 빨리 익히는 것 같아 약간 우쭐해 있었다.
하지만 킥판 없이 자유형을 하자마자, 내 착각은 산산이 부서졌다. 킥판 없이는 물에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데다 오른팔과 왼팔이 따로 놀았고, 동작이 안되니 호흡도 무너졌다. 계속 숨이 차고 심장이 방망이질 쳤다. 수영을 시작한 후 코와 입으로 물이 그렇게 마구마구 들어온 것도 처음이었다. 코도 맵고 속도 안 좋았지만 그보다 속상한 건 그동안 배운 동작을 하나도 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내 몸놀림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대는 나를 누가 볼까 무서웠다.
어깨가 축 처져서 스포츠센터를 나왔다. ‘내가 계속 수영을 배울 수 있을까’ ‘아무래도 자유형은 끝내 못 배울 것 같아...’ 부정적인 생각만 꼬리를 물었다. 늘 수영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그 후론 ‘또 허우적 대기만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수영장 가는 게 두려웠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자유형 때문에 계속 스트레스를 받았고, 수영장에서도 위축돼 있었다. 그리고 이게 어쩌면 ‘수태기’ 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스트레스의 원인이 조바심이라는 걸 안 건 얼마 뒤였다. 어느 전직 수영 선수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서다. 그는 ‘수영 종주국인 호주에서는 자연스럽게 물에서 놀면서 어떻게 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몸으로 체득할 수 있게 수영 교육을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처럼 ‘숨쉬기’부터 ‘팔 돌리기’까지 체계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놀이의 일종 같아서 굉장히 신선했다”는 게 호주의 수영 교육을 직접 보고 온 그의 소감이었다.
난 ‘주입식’이 당연한 줄 알았다. 한 동작 한 동작 선생님이 알려준 동작을 무한 반복해 몸에 익혀야 수영을 할 수 있게 되는 줄 알았다. 모든 수강생이 수업 50분 내내 수영장을 뱅글뱅글 돌면서 쉼 없이 연습만 했고, 나 역시 그랬다.
물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 나간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10명 안팎의 수강생들이 한 줄로 선 후 한 명씩 차례차례 영법을 연습하는 방법으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만약 앞에 있는 수강생 한 명이 늦게 가면 뒤에 있는 사람 모두가 제대로 수영을 할 수 없게 되는 구조다. 그래서 ‘내가 천천히 헤엄쳐서 뒷사람에게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급하게 수영할 때가 많다. 혼자 물 위에 둥둥 떠서 여유롭게 영법을 연구하는 건,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다.
이런 교육 방식은 비교를 불렀다. 수영 동기들보다 내가 조금이라도 잘하는 것 같으면 우쭐한 마음이 들었고, 좀 처지는 것 같으면 안 그래도 동작이 안 돼서 속상한 마음이 몇 배나 더 커졌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나만 수영을 못해서 계속 유아풀에 남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최대한 빨리 수영을 마스터하겠다’는 조바심으로 가득 찬 채 남들과 비교하며 수영을 하고 있었으니, 킥판 없이 하는 자유형이 잘 안됐을 때 와르르 마음이 무너진 건 어쩌면 너무 당연했다.
스트레스와 불안의 원인을 알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수영도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하기로 했다. 호주처럼 스스로 영법을 터득하는 수업을 받을 순 없지만, 수업을 물에서 놀며 쉬엄쉬엄 동작도 익히는 시간으로 여기자고. 시험을 앞둔 사람처럼 조급해하며 자신을 들들 볶는 수영은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그 후 나는 좀 관대해진 것 같다.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대는 몸놀림이 여전히 부끄럽지만, 한숨 대신 웃음이 나왔다.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헛웃음인데도 웃고 나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수많은 헛웃음 뒤, 나는 이제 킥판 없이도 25m를 자유형으로 헤엄칠 수 있게 됐다. 언젠가 또 수태기가 올지 모르지만 적어도 ‘남들보다 빨리 수영을 익히겠다’는 조바심 때문에 오지는 않을 것 같다.
‘빨리, 마스터’였던 내 수영 목표가 ‘천천히, 놀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