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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르샤 Apr 09. 2023

너를 위한 선물이야

Cris from barcelona

방콕에서의 셋째 날. 방콕 3 대장 왕궁 시리즈를 보러 갔다.

뚝뚝도, 버스도, 택시도 무서워서 그냥 걸었다. 참 더운 날이었다.
무조건 보아야 한다는 핫플이 나에겐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사람이 많았고,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몰랐으며, 그래서 힘들었다. 500밧. 한국 돈 3만 원이면 엄청 비싼 티켓 값인데.. 자꾸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돈을 내고 여기를 왜 온 걸까... 돈이 아깝다...’ 본전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하지만, 오지 않았더라면 또 분명 후회를 했겠지. 그래 It's Ok. 좋은 깨달음이었어.

하루종일 걸어 다니느라 지친 나는 제일 일찍 숙소에 들어와서 누워 있었다.

옆 침대의 친구가 말을 걸었다. ‘우리 카오산 갈 건데, 같이 갈래?’ 너무 좋은 제안이었다. 동행이 없이 밤의 카오산을 구경하기는 어려웠는데, 든든한 동행이 생겼다.
물론, 동행을 구할 때 나만의 철칙이 있었다. 호스텔에서 만난 사람이어야 할 것. 3인 이상일 것. 여자가 꼭 끼어 있을 것. 등 내가 세운 개똥철학이랄까. 이 모든 것이 만족되는 완벽한 나의 첫 동행들. 바르셀로나에서 온 cris와 벨기에에서 온 k. 신이 난 강아지처럼 친구들의 뒤를 졸졸 따라 나갔다.

태국 맥도널드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콘파이를 먹고, k의 친구를 만나러 펍에 들렸다. k의 친구의 비쥬(유럽인의 볼 뽀뽀 인사)에 당황한 건 나뿐. 동양에서 온 친구라 낯설 거라고 설명해 주는 착한 친구들. 나 정말 외국에 온 것 같다. 이 핫한 플레이스를 뒤로 하고 우리는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밖에서는 클럽음악이 쿵쿵거리는데 안쪽에서 마사지를 받고 있는 우리, 이질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너무나 방콕 같은 기분에 설렜다. 사부작사부작 걸으며 밤의 카오산 분위기를 체험하고 숙소에 돌아와서 맥주를 한잔, 아니 몇 병 했다. 호스텔 직원인 또 다른 cris까지 공통된 언어는 하나도 없는데 우리끼리 참 즐거웠다.

언어에 주눅 들어 있던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물론 다들 나보다 훨씬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내가 영어를 잘하던 못하던 별로 상관이 없는 눈치였다. 어릴 적 놀이를 못하는 친구들을 그냥 끼워주던 깍두기처럼. 호스텔의 깍두기가 된 느낌으로 다들 나를 끼워주었다. 그렇게 한 마디씩 두 마디씩 입 밖으로 말을 꺼내고, 내가 다녀온 여행과 그들의 여행을 공유하며 어느 순간 웃고 있었다.

다음 날 cris에게 맥주값을 주려하자 그녀가 말했다. ‘It's a gift for you. Have a nice trip.' 우리가 함께여서 즐거웠다는 듯, 그저 그것이 전부라는 듯, 웃으며 말하는 너. 나도 꼭 그렇게 멋진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왕궁 500밧에 마음이 쪼그라든 나는, 조금 부끄러웠고 많이 고마웠다. 고마워, 손 내밀어줘서. 덕분에 조금 더 자신감이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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