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엄마에게 화가 났을까?

엄마, 저를 보아주세요.

by 나의신디

2023년 초겨울이었다. 김장을 한다고 하니 엄마가 외사촌 언니 두 명과 함께 가도 되겠느냐고 물으셨다. 언니들을 못 본 지 10년도 넘은지라 흔쾌히 오시라고 했다.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늘 엄마 곁을 지켜주는 언니들에게 감사 인사도 하고, 맛있는 김장 김치도 한 박스씩 담아 보내고 싶었다.


언니들은 엄마의 큰오빠와 막내오빠 즉, 내 외삼촌들의 딸들이다. 언니들은 좀 특이하다. 고모를 모시고 한 달에 한 번씩 드라이브도 시켜드리고 맛있는 식당을 찾아다니며 식사를 한다고 한다. 가끔씩은 옷도 선물하고, 맛있는 커피집도 모시고 다닌다. 딸인 나보다 엄마를 더 잘 챙기는 언니들이 내심 고마우면서도 고모에게 저렇게 잘하는 조카들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날, 엄마는 평소와 달리 들뜬 모습이었다. 85세 노인이 아니라 7살 소녀처럼 이 일 저 일 간섭하며 나의 김장을 방해하셨다.


"왜 그렇게 깨작깨작 거리니, 그렇게 뒤적거리자 말고 확 섞어라."

"무를 더 잘게 썰어라."

"고춧가루를 왜 그렇게 많이 넣니? 그만해"

사사건건 지적을 받으며 김장을 하다 보니 속이 뒤집혔다.


언니들에게는 끝없는 칭찬이 이어졌다.

"너는 참 솜씨도 좋다. 도토리묵을 어쩜 이리 잘 쒔니?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너는 참 열심히 산다. 뭘 해도 다 잘될 거야."

밥상머리에서 다섯 번도 넘게 같은 말을 반복하며 언니들을 기쁘게 하는 엄마를 보며

놀라워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우리 엄마가 칭찬도 할 줄 아는 사람 었구나. 저렇게 칭찬을 잘하시는 분인데, 나한테는 한 번도 하지 않으셨을까?' 내 안에서 스멀스멀 짜증이 올라왔다.


몇 해 전, 갱년기가 시작되면서 우울증과 불면, 분노조절장애가 생겨 숨 쉬기도 힘든 날들이 이어질 때,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엄마, 나는 여섯 살 때부터 동생들 라면 끓여 먹여가며 집안 살림을 했는데, 왜 엄마는 나한테 따뜻한 말 한마디, 칭찬 한마디 안 해줬어?"


엄마는 어이없어 했다.

"네가 살림을 얼마나 했다고 그러니? 살림은 네 동생이 더 했지, 너는 대학교 간다고 집안일도 안 했잖아"


온몸의 힘이 쭈욱 빠져나갔다. 이어진 말은 더 충격이었다.

"내가 사람들한테 니 칭찬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그런 속도 모르고 칭찬을 안 해줬다고? 그런 소리 하려면, 두 번 다시 집에 오지 마!"


엄마의 예상치 못한 분노에 인정받고 싶었던 내 마음은 더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그렇게 쫓겨나듯 친정집을 나와서 몇 년간 친정에는 가지 않았다.


나는 늘 인정 욕구에 목말라 있었다. 부모님께 받지 못한 칭찬을 갈구하며 살았다. 회사에서도 시댁에서도 정성을 다했지만 정작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렸다. 그게 내 삶의 패턴이었다.


가족 세우기를 배우며 스스로 탐구한 끝에, 나는 그 허기를 직면할 수 있었다. 인정 욕구가 내 삶의 깊은 동력이 되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고 믿는 마음이 끊임없이 자존감을 갉아먹으며 나를 고통 속으로 빠뜨리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내 안의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다독이고 치유하며 조금은 자유로워졌다고 믿었다. 그래서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도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촌언니들과 함께 김장을 하는 날, 나의 내면아이와 엄마의 내면아이가 격돌해버린 것이다.

나의 내면아이는 내 앞에서 자신의 조카들에게 사랑을 쏟아부으며 역으로 나를 비난하고 지적질하는 엄마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엄마가 내게 주었던 작은 운동기구를 다시 가져가겠다고 했을 때, 분노는 화산처럼 폭발해 버렸다.


"가져가, 다 가져가. 나한테 겨우 이 운동기구 하나 줘놓고 다시 뺏어가겠다고? 이 까짓게 그렇게 소중해? 딸보다 더 소중해? 이러려면 뭐 하러 왔어?. 빨리 가. 다 소용없어."


일 년에 몇 번 사용하지도 않던 작은 운동기구였지만, 그 순간 그 운동기구는 단순한 운동기구가 아니라, 나에게 준 엄마의 사랑이었다.


놀라고 당황스러워하는 언니들은 서울로 먼저 보내고, 나를 한심스럽게 바라보는 엄마와 다시 뭔가 매듭을 풀 생각이었다. 도대체 어떤 경험, 어떤 생각, 어떤 결핍이 있길래 이렇게 사소한 일들로 엄마에게 분노가 치솟을까? 찾아야 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 일을 기어이 해결해야 했다.


엄마는 그 와중에도 우리 집 마당에 널린 시래기를 걷어서 언니들을 더 챙기려고 애썼다. 나에겐 말도 없이 곶감도 몇 줄 빼서 언니들 차에 싣는 눈치였다. 예정에 없던 총각김치도 언니들 차에 나눠 실으라고 눈치 없이, 채근했다.


딸에게는 평생 무덤덤하고 데면데면했던 엄마의 다정스런 모습이 놀라울 뿐이다. 왜 나에게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다정함이 언니들에게는 쏟아져 나오는 것일까. 엄마가 사랑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랑이 나와 내 형제들을 향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엄마의 사랑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언니들이 떠난 후, 엄마와 나는 가족 세우기를 하시는 교수님 댁으로 향했다. 2시간여 고속도로를 달리며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언니들을 불편하게하고, 그 언니들 앞에서 자신을 망신준 것에 대해 화를 내셨다.


"세상에, 하필 애들 있는데서 나를 그렇게 망신을 주다니, 애들이 얼마나 힘들었겟니. 그 누구도 나를 이렇게 망신 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 두 번 다시 네 집에는 안 온다. 두고 봐라. 내가 또 오나."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결핍과 동일시되는 사람에게 마음을 준다. 엄마의 어떤 결핍이 언니들에게 투사되니 엄마 눈에는 화를 내는 딸은 보이지 않고, 놀란 조카들만 염려가 되는 것이다. 갑자기 궁금증이 올라왔다. 사촌 언니들은 엄마에게 어떤 존재일까?


엄마에게 어쩌다가 고향을 떠나 서울로 왔느냐고 물었을 때, 그 의문이 풀렸다. 엄마는 고향 얘기가 나오자마자 복받치는 설움으로 눈물을 흘리며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셨다.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던 엄마의 어린 시절, 엄마의 내면아이 이야기였다.


엄마의 고향은 보길도의 작은 섬마을이다. 열 네 살이 되던 어느 봄날, 친구들과 나물을 뜯고 집으로 가는 길에 서울에서 내려오신 엄마의 외삼촌을 만났다고 한다. 엄마의 외삼촌은 엄마가 들고 있던 나물바구니를 빼앗아 멀리 던지고, 그 길로 엄마를 배에 태워 서울로 데려오셨다.


그 좋던 논밭이 하나 둘 사라지고 가세가 기운 가운데 엄마를 며느리 삼고 싶어하는 집으로부터 매파가 찾아왔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가진 것도 없이 어떻게 막내딸을 시집보낼까 걱정을 하셨는데, 오랜만에 서울에서 오신 엄마의 외삼촌께서 누나의 고민거리인 막내딸을 아예 서울로 데려와버리신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사랑하는 엄마와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갑자기 서울로 떠나와버린 엄마는 그 후 20여 년간 부모님도, 오빠들도 만나지 못했다. 엄마의 외삼촌은 당시 서울에서 완도 고학생들의 기숙사를 무료로 운영하고 계셨는데, 거기서 밥 해줄 사람, 빨래해 줄 사람이 필요했고, 엄마는 그 일을 하시다가 그 기숙사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했던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하신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친정집에 찾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시절 외할머니는 밤마다, 달을 보며 우셨다고 한다.

"달아 달아, 너는 우리 말례를 보겠구나. 나는 바다가 가로막혀 못 보지만, 너는 우리 딸을 보겠구나.

우리 말례 잘 지내느냐, 우리 말례 건강하드냐?"


열네 살 어린 소녀가, 입은 옷 그대로 커다란 배에 실려 육지로 강제 이주당한 삶을 생각해 본다. 그 두려움을 떠올려본다. 그 그리움을 떠올려 본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에게 사무쳐 있는 그리움과 외로움과 두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달을 보며, 막내딸을 그리워하셨던 외할머니처럼, 엄마도 그 달을 보며 수없이 울었을 것이다.


엄마에게 사촌 언니들은, 어릴 적 헤어진 외할머니와 오빠들을 대신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알아차려졌다. 언니들은 그리운 엄마, 보고 싶은 오빠들의 그림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토록 애정어린 눈빛으로 조카들을 바라보셨던 것이다. 분노가 사그라들고, 깊은 한숨이 토해져 나왔다.


가족 세우기 세션에서, 내가 엄마의 대역을 했다. 엄마로 서자마자, 엄마의 마음이 보였다.

갓난아기인 나를 껴안고 젖을 먹이는 엄마의 눈앞에는 넘실 대는 푸른 바다, 고향의 바다가 가득했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면서도, 엄마의 마음속에는 늘 고향과 고향의 바다,

그 속에 살고 계신 친정엄마와 오빠들에 대한 그리움이 온 마음을 채우고 있었다.


세션을 마치며, 나의 허기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확연히 알아졌다. 엄마를 원망하자는 것도 아니고, 엄마를 탓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엄마는 어쩔 수 없는 운명에 의해 평생 가슴속에 그리움을 껴안고 사셨고, 그로 인해 우리들에게 흘러넘쳐야 할 사랑이 가로막혀버렸던 것이다.


엄마, 몰랐습니다.

엄마가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엄마가 저를 아끼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엄마를 원망하고, 엄마를 미워했습니다.

엄마, 죄송해요. 제가 몰라서 그랬습니다.


엄마, 그러셨군요.

평생 가슴에 그리움을 안고 사셨군요.

당신의 삶을 이제야 봅니다.

당신의 할머니를 향한 사랑을 이제야 봅니다.

당신의 오빠들을 향한 그리움을 이제야 봅니다.


그 그리움 속에서도 저희들을 지켜주셨군요.

그 고통 속에서도 저희들을 사랑하셨다는 것을 이제야 느낍니다.

엄마, 고맙습니다.


세션을 마치니, 엄마의 얼굴에서 분노가 잦아들고, 평온이 찾아왔다.

자신이 평생 친정 엄마와 오빠들을 그렇게 그리워하며 사셨다는 것을 엄마는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평생 새벽장사를 하며 애써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쳤는데, 그것이 현실인데,

무의식에서 엄마의 사랑이 친정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은

엄마에게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나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세션에서 할머니와 오빠들을 만난 것이 엄마에게는 위로가 되는 듯했다.


엄마는 그 길로 ktx 타시고 집으로 가시고, 홀로 집에 돌아와 tv를 켰을 때,

서도밴드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고, 처음 듣는 노래지만,

듣는 순간, 나는 통곡을 하고 말았다.

엄마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달은 밝고 명랑한데 고향생각 절로난다 절로난다
달은 밝고 명랑한데 고향생각 절로난다 절로난다
푸른 바다 배 띄우고 걱정일랑 바다에 떠나보내자"


그 당시 적은 일기장에는 엄마를 떠나보내는 나의 절절함이 담겨 있다.


" 엄마를 떠나보낸다. 저 파도 넘실거리는 엄마의 고향으로

남색 치마 흰 저고리 입고 뛰놀며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던 그 고향으로 엄마를 떠나보낸다.

오빠들의 사랑으로 보호받으며 볼발그레 희망찼던 그 소녀시절로 엄마를 떠나보낸다.

평생 그리움으로 살아야 했던 엄마의 운명 속으로 이제 엄마를 떠나보낸다.


너무 오랫동안 엄마의 치맛고리를 붙잡고 나를 보아달라고 보챘다.

너무 오랫동안 내게도 사랑을 주세요. 저를 보아주세요라며 칭얼댔다.

너무 긴 시간 동안 채워지지 않는 가슴을 부여잡고, 내 엄마가 되어달라고, 가망 없는 기대를 안고 보챘다.


이제야 엄마를 놓아드린다.

엄마의 사랑, 엄마의 사람들 사이로, 엄마의 운명 속으로 엄마를 놓아드린다.


강강술래를 하며 뛰놀던 어린 소녀의 밝은 웃음 속으로 엄마를 떠나보낸다.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살아내신 세월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엄마를 떠나보낸다.

그 푸른 물결 속으로, 그 빛 속으로, 그 영원 속으로, 그 그리움 속으로, 그 사랑 속으로 엄마를 떠나보낸다.

그 안에서 충분하시길,

그 안에서 행복하시길.


엄마, 당신을 향했던 가망 없는 갈망들을 이제 모두 내려놓습니다.

당신은 제게 충분한 엄마입니다.


제게 생명을 주신 엄마,

그 생명을 사랑으로 받습니다.

모는 것이 다 충분합니다.

그 사랑으로 저는 이제 삽니다. "


엄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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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동안 서도 밴드의 뱃노래를 무한반복여 들으며

엄마에 대한 집착과 갈애로부터 벗어났다.


그 이후, 엄마와 나는 달라졌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평온하다.

엄마가 서운하게해도, 조용히 들을 수 있다.

엄마가 어이없는 말을 해도, 화가 나지 않는다.

엄마를 향한 갈애와 갈망이 사라진 자리에

있는 그대로의 사랑이 흐른다.


엄마도 전에 없이 고맙다는 말씀도 많이 하시고,

'네 덕분에 산다'며 나의 경제적 지원에도 감사를 표하신다.

그리움과 외로움에 사무쳐 살아왔던 엄마의 내면아이도 이제 치유가 되어가고 있나 보다.


엄마를 엄마의 운명에 맡기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엄마의 자녀로 평화롭게 설 수 있었다.

엄마의 있는 그대로의 사랑을 믿는 작은 자녀가 되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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