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아침이 고통스러웠을까?

엄마의 삶을 반복하는 딸

by 나의신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은 늘 고통스러웠다.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 힘들고,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살아내야 하나 하는 걱정으로 혼란스러웠다.

내가 뭔가 잘못 살고있다는 자책이 몰려오고, 한심하게 사는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밀려와 주눅들었다.

매일 아침 눈 뜰때마다, 그냥 괴롭고 힘들었다.


이유는 몰랐다.

아니, 내가 다른 이들과 다른 아침을 맞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뭔가 이룬 것 없이 대충대충 사는 삶의 아침이 뭐 그리 좋으랴.

그 정도였다.


아침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찾아낸 것은

루틴을 만들어 움직이는 것이었다.


눈뜨면 곧장 눈 뜰 때 기도를 한다.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 행운이다.

나는 귀하고 얻기 어려운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다.

오늘 하루를 낭비하지 않으리라."


달라이라마 스님께서 하셨다는 눈 뜰때 기도라도 하고나면

깊은 한숨이 나오고,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일어나면 곧장 침대를 정리하고, 소금물 양치를 하고, 청소기를 돌렸다.

체크리스트까지 만들어 나를 독려하며, 아침의 불안을 떨궈내려고 애썼다.


커피를 한 잔 만들어 책상에 앉으면 법화경 기도를 하고, 기도가 끝나면 모닝페이지를 썼다.

모닝페이지까지 마치면 그 작은 성취감에 위로받고, 그것이 하루를 살아낼 힘이 되었다.


그런 내가 바뀌었다는 것을 이즈음 확인하며 깜짝 놀랐다.


요즘 나는 눈 뜰 때 기도는 물론, 어떤 루틴도 실행하지 않는다. 기도도 하지 않는다. 법화경 100독이 목표였지만, 55독 이후로 법화경 읽기를 멈추었다. 모닝페이지 쓰기도 멈추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제는 그만해도 될것 같았다. 특별한 계기나 이유없이 그냥 그렇게 그만 두었다.


물론, 아침에 일어나 양치를 하고, 방이 지저분하면 좀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리기도 하지만,

그것이 버텨내기위한 루틴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평범한 일이 되었다.


기도를 하지 않는데도 하루의 시작이 무난했다.

모닝페이지를 쓰지 않는데도 하루의 시작이 충만했다.

그렇게 몇개월이 지나 오늘 아침에서야

나의 아침 풍경이 바뀌었다는걸 눈치 챈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니 창으로 들어오는 신선한 바람이 느껴진다.

참 잘 잤다는 생각이 든다.


마당에 나가 파란 하늘을 본다.

하늘이 푸르르면 푸른 대로 이뻐서 기쁘다.

비구름이 뒤덮은 어두운 하늘은 웅장함이 느껴져 멋있다.


화단에 어떤 색 꽃이 피었는지 둘러보기도 한다.

이제 막 꽃을 피운 백일홍 꽃이 마치 처음 보는 꽃처럼 이쁘다.

백일홍 꽃의 칼라가 저렇게 선명한 핑크였는지 처음 보는 느낌이다.

매일 매일 다른 색 꽃이 피는 우리집 마당이 좋다.


방으로 돌아와 부엌을 정리하고, 방을 정리하며

별다른 감정이나 왜곡 없이 편안하게 아침 시간을 누린다.

그리고 그뿐.

모닝페이지를 써야 한다는 채근도, 기도를 빠뜨리면 안 된다는 불안도 없다.

오 마이갓, 아침이 이럴 수도 있는 거야?


평화로운 아침을 경험하고 나서야,

과거 나의 아침이 고통의 시간이었다는 걸 역으로 발견하였다.


아침마다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며 살았다는걸

이제야 발견했다.


질문이 올라온다.

무엇 때문에 나의 아침은 그렇게 고통스러웠을까?


질문을 던지자마자 답이 알아차려진다.

"아, 엄마. 엄마의 아침이 그랬군요."


평소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오늘은 또 무엇으로 아이들을 먹일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신 후, 엄마는 매일 이 고통스러운 질문을 간직하며 살아오셨다고 했다.

다 함께 죽자 하는 생각으로 우리들을 데리고 산에 오르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철없는 아이들이 묏등에 올라 깔깔거리며 미끄럼을 타는 걸 보면서,

어떻게든 저 아이들과 함께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산을 내려오다

산길 옆 쪽파 밭에서 쪽파 300원 어치를 사다가 길에 나가 팔아서 끼니를 장만하기 시작하셨다고 했다.


그 후 엄마의 장사 스케일은 조금씩 더 커져서

새벽에 일어나 커다란 다라를 들고 노량진 시장이나 경동시장에 나가 생선과 과일 등을 사서

단골들에게 되파는 식으로 행상장사를 하셨다. 그리하여 먹일 걱정에서는 벗어나셨으되,

새벽부터 일어나 반복되는 고된 노동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평화롭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아,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살아내나?"


손이 쩍쩍 달라붙는 한 겨울에 새벽버스를 타고 어두운 창가를 바라보며 엄마의 내면에 가득 차올랐을 그 걱정과 근심이 나도 모르게 나의 내면의 말이 되어 나를 지배해 왔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아, 엄마. 엄마셨군요. 엄마의 아침이 그렇게 고통스러우셨군요.

몰랐습니다. 엄마는 당연히 그렇게 사시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가 힘들게 사시는 걸 보면서도, 그 힘듦을 알지 못했습니다.

고된 노동으로 우리를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은 했어도

가슴 깊이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늘에야, 당신의 마음속 혼란을 느낍니다.

오늘에야, 당신의 마음속 고통을 이해합니다.

오늘에야, 당신을 제대로 느낍니다.


당신의 아침이 그렇게 힘드셨군요.

당신의 아침이 그렇게 황망하셨군요.


내 내면에 살아계신 엄마,

저도 당신과 똑같습니다.

저도 당신과 똑같이 고통스러운 아침을 보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당신에게 헌신하기 위해

기꺼이 그 고통을 제 고통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당신의 고통을 직접 체험하고서야

당신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당신의 고통을 받아들입니다.


엄마, 엄마, 사랑하는 나의 엄마!

그 모진 수많은 아침들을 이겨내시고 삶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신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다 당신 덕분입니다.

엄마, 고맙습니다."


깊은 한숨이 토해져 나온다.


자녀들은 무의식적으로 부모의 삶을 반복한다.

부모의 삶을 지켜보며 살아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보고 살지 않았어도, 부모의 삶의 방식, 내면세계는 고스란히 자녀에게 대물림된다.


나의 경우처럼 부모의 삶을 그대로 반복하면서 그 고통을 체험하거나,

아니면 부모처럼 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고통을 체험한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고통을 반복하는 이유이다.


그 고통을 직접 느껴보고서야 고통의 짐은 한 꺼풀 내려놓아 진다.


올 봄, 나의 아침 우울과 무기력은 극에 달했다.

문 하나 열면 바로 일터인데,

그 문 하나를 열고 사무실로 출근하는 것이 괴로웠다.


회사에 나가기 정말 싫어요.

일하기가 정말 죽기보다 싫어요.

내가 왜 이 일을 해야하는지 모르겠어요.

다 버리고 도망가고 싶어요.

아침이 오면 하루가 싹뚝 잘려나가고 빨리 저녁이 왔으면 좋겠어요.

주말이 사라지는 것이 너무 싫어요.

월요일이 너무 싫어요.


가족세우기를 통해 내가 다루었던 나의 이슈들이다.

조금씩 다른 이슈임에도 끝에는 항상 엄마와 연결된 결과가 나왔다.


일하기 싫은 마음을 세워도 엄마가 나오고

무기력증을 세워도 엄마가 나오는 세션이 반복되었다.


당시에는 이해가 안 되었다.

나의 마음, 감정이나 느낌이 엄마와 무슨 상관이라는 것인지,

세션에 대한 불신이 생길 정도로 이해되지 않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오늘 아침, 나의 아침풍경이 달라졌음을 발견하고 나서야

내 마음이, 내 느낌과 감정들이, 내가 했던 그 말들이 모두 다

엄마의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엄마를 통해 나에게 전달된 엄마의 무의식, 이른바 대물림된 엄마의 내면이

내 안에 고스란히 살아 나를 움직이고 좌절시키고 고통스럽게 했음을 깨닫는다.

그 모든 것들이 내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세션을 통해 엄마의 고통을 이해하고 느끼고 체험하면서

엄마의 고통을 내려놓고 나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나의 아침이 주는 새삼스런 평화를 느끼며

다시 한번 엄마와 만나는 시간을 가져본다.


"엄마, 사랑하는 나의 엄마.

고맙습니다.

다 당신 덕분입니다.

당신 덕분에 모든 것이 다 잘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당신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

당신과 다른 평화로운 아침을 만끽합니다.

당신과 다른 삶을 삽니다.

당신과 다른 아침을 맞습니다.

모두 다 당신 덕분입니다.

당신 덕분에 저는 고통에서 벗어나 생명과 사랑이 충만한 아침을 맞습니다.

엄마, 고맙습니다.

저를 축복해주세요."


딱히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엄마가 없는 아침에 동생들의 밥상을 챙겨야했던 어린 경아에게도 아침은 고통이었을 것라

짐작된다.


은지네 집에서 도시락을 싸주시는 은지엄마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던 것도

엄마의 부재에 대한 나의 부러움이었으리라.


게다가 엄마 없는 아침 밥상을 준비해야했으니,

어린 아이에게 그 아침들은 엄마와는 또 다른 무거운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그 시간들을 보낸 나의 어린 시절에도 위로를 보낸다.


"경아아, 어린 경아야.

엄마의 보살핌을 받아도 모자를 나이에, 엄마의 역할을 해야하는 아침이 너에겐 고통이었구나.

아침마다 반복적으로 겪었을 그 아침의 불편한 감정들이 평생 너를 지배해왔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많이 부담스러웠겠다.

네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여태 몰라줘서 미안해


이제는 내가 너의 아침을 함께할게.

아무런 부담없이, 아무런 책임없이,

너는 가볍게 아침을 맞아도 괜찮아.

평화롭게 너의 아침을 맞아도 괜찮아.


이젠 다 끝났어.

엄마를 대신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동안 애썼다 경아야....


이렇게 또 한토막

나의 어린 내면아이와 화해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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