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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Aug 20. 2020

매달 필리핀에서 독후감이 메일 온다

책 권하는 어른_3

매달 마지막 주에 필리핀에서 다섯 통의 메일이 온다. 다섯 명의 필리핀 학생들이 영어로 쓴 독후감을 내게 보내는 것이다. 난 영어를 잘 못한다. 그래서 내게 온 독후감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 그래도 메일을 받으면 좋다. 글 모르는 시골 할머니가 서울의 손주가 보낸 편지를 받고서 기뻐하듯 말이다.


클리잘린, 카일, 알렉시스, 챠드, 빈센트. 이들 다섯 명의 학생들은 매달 책을 읽고 독후감을 작성하여 내게 보낸다. 그러면 난 그들에게 1만 원을 보낸다. 매달 5만 원을 독서 후원금으로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 독서지원 프로그램의 하나다. 2017년 1월부터 내 주변의 아이들 대상으로 10명에게 매달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면 5만 원을 지급하는 '독서 아르바이트'가, 2018년 3월부터 지역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엄마의 책밥상'을 기획했고, 2018년 8월부터 필리핀의 비낭오난 학생들을 대상으로 확대한 것이다.


비낭오난은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동남쪽으로 30km 아래에 있는 지역이다. 그곳에서 김태현/홍영옥 선교사님이 비낭오난 선교센터 사역을 하시면서 그곳 아이들에게 배움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아이들은 선교센터에서 악기를 배우고 율동을 배우면서 자신의 재능을 키우고 있다. 선교사님은 그곳 아이들을 한국의 후원자와 일대 일로 연계하여 학생들이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했다. 한 기수마다 12명의 아이들을 선발하여 지금은 거의 백여 명의 아이들이 후원자의 장학금으로 학업을 계속하고 있다. 


2014년에 마닐라에서 한국-필리핀 문화교류축제 대회에 나가 비낭오난 선교센터팀이 본선 최우수상을 받았다. 한류 열풍으로 대부분의 참가 팀들은 K-팝을 불렀는데, 선교팀은 난타로 도전했다. 필리핀의 아이들이 한국의 북 장단을 치는 것이 새롭고 신선했다.

비낭오난 선교센터 난타공연 / 김태현,홍영옥 선교사


2014 한국-필리핀 문화교류축제 본선 최우수상 / 비낭오난 선교센터
https://m.facebook.com/PillipinBinang/videos/440405802814318/


이를 계기로 그 팀들이 한국에 공연을 올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며, 2018년 여름에 두 번째로 한국에 방문했다. 몇몇 지역을 돌다가 내가 있는 이천에 올 때 선교사님과 그 팀들을 만났었다. 그때 난 비낭오난의 학생 중에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들이 책을 잘 읽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했다. 선교사님은 아이들 중에 문학에 관심 있는 아이들을 추천하겠다고 했다.


난 한 학생당 1만 원을 생각하여 다섯 학생을 대상으로 5만 원을 보내기로 했다. 그들이 받는 1만 원은 그 나라의 화폐로는 400페소 가치다. 이는 현지 식당에서 10~15끼의 밥을 사 먹을 수 있고, 전문 노동자의 일당이라고 한다. 내가 한국에서 한 아이들에게 주는 5만 원 이상의 가치다. 같은 금액으로 5명이 아이들이 혜택을 본다.




지금의 필리핀 아이들의 상황은 내 어릴 적의 상황과 비슷하다. 내 어릴 적엔 동네에 아이들은 많았고, 시간도 많았다. 지금처럼 학원 가서 공부하는 것은 달나라 얘기였다. 가까이에 도서관은커녕 주변에 책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TV도 없었으니 그냥 골목에 모여 종일 놀기만 했다. 그래도 심심했다.


그때 기타를 메고 동네에 나타난 총각 전도사님은 동굴 속에 사는 우리에게 빛과 같았다. 전도사님은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읍내 생활을 했었고, 대학이라는 학교도 다니고(당시 우리 동네에 대학을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기타라는 악기도 치면서 노래도 가르쳤다. 종교를 떠나서 신문명을 접한 기회였다. 가을이면 교회에서 '문학의 밤'이라는 행사를 하며 노래, 연극 등을 가르쳤다. 계몽의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때의 초등학생 아이들이 커서 지금은 대학교수가 되었고 중앙부처 공무원이 되었고 IT업체 사장이 되었다.   


비낭오난의 아이들에게 있어 선교사님은, 내 어릴 적의 총각 전도사님과 같다. 그 아이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선교사님의 손길을 통해 가진 것이다. 그 손길에 나도 한 손 보태고 싶었다. 


내 어린 시절에, 지금처럼 가까이에 도서관이 있고, 책을 맘껏 볼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든다. 늦깎이 스님이 도를 늦게 깨우치듯 난 책 맛을 너무 늦게 맛보았다. 어른이 되어 아무리 많은 책을 보더라도 어린 감성을 살리지는 못하기에 그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는 어른이 되었다.


지난달 선교 소식지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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