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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크로키

by 보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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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지하철 크로키를 했다. 요즘 지하철을 타는 일이 많은 편인데, 오늘은 어쩐지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며칠 전 밤 불현듯, 예전에 브런치에 아주 잠깐 연재하던 크로키가 생각이 났다. 그때는 에이, 글 쓰려고 만든 공간에 이렇게 그림을 올리는 게 뭐냐 싶어서 때려치웠었는데, 글쓰기 연습도 할 겸 그 크로키를 가지고 그때그때 짧은 소설을 만들어서 올리면 그것도 나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부랴부랴 뭔가를 써서 아예 브런치 북 연재로 만들었다. 계획하고 좀 하다가 때려치우기를 밥 먹는 것보다 자주 하는 나를 위한 강제조치랄까. 어쨌든, 그런 일도 있었어서 지하철에 탄 김에 크로키를 시작했다.


그냥 별생각 없이 준비하고 나와서 아이패드를 꺼내 크로키를 시작했다. 그런데 오른쪽 어깨에 맨 가방 때문인지, 오랜만에 했다는 떨림 때문인지 손이 덜덜 떨리고 생각대로 잘 그려지지 않았다. 눈탱이는 밤탱이를 해가지고 손을 덜덜 떨면서 지하철의 사람들을 훑고 있는 내 모습을 누가 봤으면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대학교에서 처음 지하철 크로키를 했던 날이 생각난다.

그때 같은 과 친구들과 함께 A5 사이즈 스케치북 한 권을 들고, 함께 지하철에 올라 이 스케치북 한 권을 다 채울 때까지 집에 가지 말자고 결의를 다졌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한 권을 다 못 채운 날도 있었고, 어느 날은 중간에 내려서 한 권을 다시 사서 지하철에 다시 오른 적도 있었다.


그때는 그러고 놀았다.

그렇게 즐겁게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었다.


본의 아니게 다시 여유가 생긴 김에 이런저런 일들을 다시 꺼내보고 있다.

이 크로키처럼 언젠가 하다가 멈췄던 것도 있고, 새로 도전하는 것도 있다.

오늘 크로키를 할 때의 그 떨림처럼 두려운 것도 많고 설레는 것도 많지만,

하나씩 하나씩 노력해서 쌓아보려 한다.


지금은 씨앗을 뿌리는 중.

어떤 씨앗이 어떤 싹을 내고 어떻게 자라날지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뿌려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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