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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

by 보싸 Apr 0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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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면접은 최악이었다.

별로 큰 회사도 아니면서 대기업 흉내는 내고 싶었는지 정장을 입고 오라는 것부터가 마음에 안 들었다. 주머니 사정 뻔한 취준생이 변변한 정장 한 벌 살 돈이 어디 있다고. 사실 합격을 시켜주고 첫 월급이라도 선불로 쥐어 준 다음에 첫 출근 때 정장을 입고 오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도 안다. 말도 안 되는 거. 그래도 짜증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느 자치구에서는 면접을 나가는 청년들에게 정장 대여도 해준다고 하는데 이놈의 동네는 그런 혜택 같은 건 기대하면 안 된다. 주민센터에 가도 노인들을 위한 교육과 지원사업들만 가득가득하다. 아니, 나 같은 젊은 청년이 취업해서 세금을 내야 그런 것들도 다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 아닌가? 세금 내고 싶어 죽겠네 진짜.


오늘 면접을 본 회사는 자동차의 핵심부품을 만들어서 국내 최대 자동차 브랜드에 납품도 하고 세계에 수출도 하는 글로벌 기업이라고 했다. 나름 안정적이고 비전 있는 회사라고 생각을 했는데, 오늘 면접관들의 태도를 보니 그냥 허울인 것 같았다. 완전 꼰대 냄새 팍팍 풍기는 아저씨들이 시답잖은 질문이나 하고, 특히 가운데 있던 그 대머리. 내 옷을 보고 뭐? 장례식 갔다 왔냐고? 이게 얼마짜리 옷인데.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나한테만 틱틱거리는 투를 보니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지만, 합격을 한다고 해도 갈 생각도 없다. 망해버려라! 


면접관의 말처럼 오늘 장례식을 다녀온 것은 아니지만, 사실 이 옷은 장례식을 위해 급히 샀던 옷이 맞다.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정신을 차릴 수 없던 나를 찾아와 위로해 주던 친구들, 지인들. 그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그들의 경조사에 빠짐없이 참여했다.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였던 재은이의 장례식에 가기 위해 이 옷을 샀었다. 나의 성공을 누구보다도 응원해 주었던 친구 재은이의 마지막 가는 길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었다. 이게 그 당시 내가 살 수 있는 가장 멋지고 좋은 옷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끄고 지하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평소에 낄낄거렸던 유튜브 숏츠도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음이 점점 가라앉고 무거워졌다. 


사실 정말 가고 싶던 회사였다. 오래 준비했고 많이 기대했다. 이 회사는 돌아가신 아빠가 그렇게 자랑하던, 아빠가 다니던 회사였기 때문이다. 겨우 흐려져 가는 아빠가 다시 생각날 것 같아서 두렵기도 했지만, 아빠가 출근하던 길을 따라 걷고 아빠가 밥을 먹던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었다. 아빠의 자랑이 내 자랑이 되었으면 했다. 




“아, 이때 전화번호를 바꿨어야 되는데…”


나는 1년 전 오늘의 일기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면접을 보고 3일 후 나는, 1차 면접 합격 문자를 받았고 최종 면접에도 합격했다.

처음 내 이름으로 된 명함을 받고 아빠의 명함과 나란히 화장대 거울에 붙였었던 기억도 난다.

같은 디자인의 명함에 부녀의 이름이 각각 새겨져 있었다.

그만큼 감사하고 소중했다.


왜 오늘 갑자기 이 날의 일기를 열어보고 싶었을까?

아빠가 조금만 더 버텨보라고 나를 응원해 주는 걸까?

나는 조용히 한숨을 쉬고 눈을 감았다.


아빠… 나 잘하고 있는 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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