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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여사 김숙자 씨

by 보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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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에 마법소녀라고 불렸던 나는 이제 여사님이라는 호칭이 익숙하다.

우연히 알게 된 나의 능력. 나는 그 능력을 약한 자를 돕는 일에 써왔다.

하지만 너무 티가 나면 곤란했기에 최대한 조용히 힘을 사용했다.

덕분에 나의 능력이 세상에 알려지지는 않았다.

가끔 부주의한 탓에 누군가 눈치챌만한 상황이 생기기도 했지만, 나와 같은 능력자들을 서포트하는 이실장의 기지로 그냥 미스터리 사건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정도였다.


이실장의 말에 의하면 나와 같이 특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현재 알려진 것만 총 8명이라고 한다.

우리들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조심하며 사회 곳곳에서 각자의 능력으로 어려운 이들을 돕고 사회의 정의를 지켜왔다.

물론 우리가 놓치거나 우리의 능력밖의 일들도 많이 있었지만, 우리가 애써왔기에 사회가 그나마 안전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우리는 믿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끔찍할 정도로 무력함을 느껴야만 했던 사건이 있었다.

2014년 4월의 어느 바닷가.

우리 8명은 모처럼 함께 모였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땅히 역할을 해야 할 국가도 손을 놓고 그 일을 방관하고 있었다.

우리는 무력감과 자괴감에 빠져 뿔뿔이 흩어졌다.


그중 누군가는 무력감을 견디지 못해 어딘가로 은둔했고,

누군가는 나라를 이렇게 만든 이들을 심판하겠다며 무언가를 벌이다가 더 이상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진짜 힘을 갖겠다며 정치인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살았다.

하루하루 살아내고 견뎌냈다.

보통사람들 틈에 섞여 나도 똑같이 아파하고 슬퍼했다.

그 일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그렇게 살아냈다.


그러다 보니 나의 능력은 점점 사라져 갔다.

더 이상 쓰지 않는 능력, 꼭 필요한 누군가에게 갔기를 바랐다.


그 후로도 늘 보통 사람들과 함께 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특별한 사람 몇몇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고

사람들이 필요한 곳에는 항상 가서 머릿수를 보탰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오래 단식을 하고, 찬 바닥에 조금 더 오래 앉아 있고, 조금이나마 주변에 온기를 나누는 것. 그 정도였다.

그렇게 세상은 더디지만 조금씩 바뀌어갔다.

보통사람들의 힘으로, 용기로,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어갔다.


지금은 생사를 알 수 없는 박씨 아저씨가 사주었던 모자를 오랜만에 꺼내 썼다.

마법소녀를 지나 마법숙녀가 되던 무렵, 생일 선물로 받았던 모자였다.

스크린 도어에 비치는 모자를 매만지며 지하철에 올랐다.

사람들의 온기로 따뜻할 거리에서 나는 오늘도 외칠 것이다.


대한민국의 겨울이 오늘은 끝나기를.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그저 보통의 사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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