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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공놀이

by 보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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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참 좋은 스포츠다.


재미도 있는데 심장 쪼이는 괴로움 없이 이렇게 속 편하게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멋진 플레이를 하는 선수를 보면 눈호강을 해서 좋고,

어이없는 실수를 하는 선수를 보면 그만한 예능이 또 없다.

우울할 때에는 이기는 편을 응원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때로는 지는 편을 응원하며 역전의 드라마를 바라기도 한다.


물론 응원하는 편이 있으면 더 재미있기는 할 것이다.

그중에 특별히 좋아하는 선수가 나오면 응원가를 흥얼거리며 더 집중하게 될 것이다.

팀이 이기면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게 되고

팀이 지면 좀 찜찜은 하지만, 내일은 이길 거라는 기대감으로 잠을 청하기도 할 것이다.

야구는 참 좋은 스포츠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다른 팀들의 중계를 편안하게 보던 나는 혹시나 싶어 지난달까지는 내 편이었던 팀의 경기 스코어를 찾아보았다.

그 팀은 작년에 모든 운을 다 쏟아붓고 올해는 시즌 시작과 동시에 주축선수들이 돌아가며 부상으로 한 두 달씩 빠지면서 현재 8위에 머물러 있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연패를 할 듯한 분위기다.

역시, 야구는 딱히 좋아하는 팀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작년은 유독 경기장에 직관을 많이 갔었다.

시즌 중반부터 치고 올라와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리기도 했고,

몇십 년 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슈퍼스타의 등장으로 매 경기가 설레기도 했다.

타석에 설 때마다 이번엔 어떤 멋진 걸 보여줄까? 기대하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하다.

서울에서 경기가 열릴 때마다 회사 컴퓨터로 미친 듯이 클릭을 하며 어쩌다가 예매에 성공하면 반차를 쓰고 야구장으로 향했다.

유니폼은 뭐 그렇게 새로운 게 많이 나오는지 매번 따라 사느라고 월급은 탕진했지만,

그래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나의 자부심이고 휴식이었다.


하지만, 그건 이제 옛날이야기다.

지난달을 끝으로 나는 이제 이 팀을 진짜 떠날 것이다.

올해는 진짜 떠날 것이다.

아니, 이미 떠났다.

40년 넘게 한 팀을 좋아했으니, 이제는 슬슬 다른 팀으로 갈아타도 되지 않을까?

좀 더 자주 볼 수 있게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 연고가 있는 팀?

세 개나 되는데 어디를 고를까?

아니면 이번 시즌 기분 좋게 볼 수 있게 지금 1위 팀을 응원할까?

만년 꼴찌다가 이번 시즌에 날아다니고 있는 다크호스팀을 응원하는 것도 나름 서사가 있어서 좋은 것 같고…

어느 팀을 응원하던, 선수들이 낯설기는 하지만 자주 보다 보면 나름 정도 들 것이다.

그래, 이제 새로운 팀에 정착을 해보자.


오늘 이 경기도 진다면…




2025년 5월 22일.

연패 중인 기아타이거즈는 KT에게 8:3으로 승리하며 오래된 골수팬 한 명을 사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일은 진짜 야구를 안 볼 것이다.

진짜 진짜 안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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