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호씨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곤한 퇴근길. 이 시간에 누가 카톡도 아닌 문자메시지를 보냈을까?
게다가 누가 보낸 건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도 알 수 없는 이상한 메시지.
잘 못 온 문자인가 싶어 무시를 하고 다시 눈을 감았지만, 마음속 어딘가부터 삐져나오는 찜찜함이 있었다.
‘요즘 좋아 보이더라.. 잘 지내는 방법 있으면 좀 알려줘..’
누구일까?
만약 잘 못 온 문자가 아니고 진짜 내게로 온 메시지라면, 누가 이런 메시지를 보낸 걸까? 게다가 요즘 썩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왜 이런 문자를 보낸 걸까? 진호씨는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역시 잘 못 온 문자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했다.
미정이?
진호씨의 머릿속으로 어떤 이름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결혼을 약속했던 연인이었으나, 진호씨의 배경을 늘 못마땅해하던 미정씨.
미정씨는 진호씨를 떠났고, 채 1년도 안되어 조건이 좋은 남자와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정이가 왜?
문장의 끝에 마침표 두 개를 넣는 것은 미정씨의 버릇이었다. 그 버릇으로 보나, 문자 내용으로 보나, 미정씨가 자신에게 보낸 메시지가 분명하다고 진호씨는 생각했다.
카카오톡 프로필에 지금 애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려두었는데, 그 사진을 보고 이런 문자를 보낸 걸까? 자기는 결혼했으면서. 혹시 지금 불행한 걸까? 왜?… 설마… 이혼을?
진호씨는 미정씨의 불행의 이유들을 추측했다. 막장드라마 시나리오가 생각나고, 울고 있는 미정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진호씨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몇 년 동안 아무 소식도 없었고, 이제 겨우 잊고 새로운 사람을 만났는데, 얘는 갑자기 나한테 어쩌라는 걸까? 혼란스러웠다.
고개를 들어 지하철 창밖을 내다보았다.
잠원동에 사는 미정씨를 데려다주며 함께 지하철을 타고 건넜던 동호대교.
서른이 다 되도록 차는 커녕 운전면허도 없는 자신 때문에 항상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느라 고생을 시켰던 기억이 떠올랐다. 미정이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 아니,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문자메시지 창에서 여러 단어들이 미처 합쳐지지 못하고 지워지기를 반복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안부를 물어볼까? 무슨 일이냐며 걱정해 줄까? 나는 애인이 있으니 다시는 이런 메시지 보내지 말라며 화를 낼까? 아니, 그보다 나의 이 마음은 뭘까? 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
괴로웠다. 미정씨를 그렇게 보내면서 늘 행복하기를 바랐었다. 미정씨가 평소에 원하던 대로 자신이 감히 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다시는 만나게 되지 않기를 바랐었다. 그랬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진호씨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눈을 감았다. 랜덤으로 재생되던 플레이리스트에서는 정승환의 ‘이 바보야’라는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얼마나 사랑했는데, 어떻게 널 보냈는데. 다신 만나지 말자. 잡을 수 없게 잘 살아줘...’ 그 겨울, 진호씨는 이 노래를 들으며 미정씨를 생각했다. 그리고 많이 울었었다. 그리고 그 노래 가사처럼 이렇게 미정씨는 다시 나타났다. 행복하지 않은 모습으로.
하지만 진호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미정씨를 보내던 그 겨울처럼 진호씨는 무력감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금 나에게는 너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 있다. 그러니까 더 이상 나를 흔들지 마라. 나는 너를 잊었고, 다시 너를 잊을 것이다.
진호씨는 다짐하며 문자메시지를 지웠다.
삭제버튼 위에서 머뭇머뭇 잠시 망설이기는 했지만,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짐했다.
마음이 복잡했다.
다음날 아침, 세영씨는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술김에 용기를 내 전남친 창석씨에게 보낸 메시지에 답은 없었다.
‘나쁜 놈, 그럼 그렇지…’ 세영씨는 픽 웃으며 보낸 문자 메시지를 지우려 했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아무리 연락처를 지워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전 남친의 전화번호.
그 번호의 마지막 한자리가 틀린 것이다.
‘아 씨… 잘 못 보냈네… 그럼 이 자식이 보고도 씹은 게 아니구나?’ 세영씨는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은 맑은 정신으로 다시 문자를 보내볼 것이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