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는 퍼즐조각을 포기하지 마세요!)
나는 첫 대학을 집안사정으로 1년 만에 중퇴했다(자신의 실패에 ‘집안사정’을 핑계로 대는 것만큼 비겁한 일도 없다지만, 그 사람의 힘듦을 타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기에 나는 그 핑계를 대고 싶다. 누가 뭐래도 당시의 나는 엄청 힘들었다).
이후에 변변찮은 일을 전전하며 하루하루 먹고살기에 급급한 20대를 보냈다. 당시에는 그냥 고만고만한 일들을 하느라 그랬는지 학력이나 스펙의 벽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정장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과 나처럼 점퍼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의 삶이 다르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 후 스물일곱 살에 나는 앞서 이야기한 sadi라는 디자인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을 무사히 수료하여 비로소 학력의 벽을 뛰어넘었다고 믿었다. 당시의 sadi는 디자인 업계에서 나름 알려진 교육기관으로서, 삼성전자와 여러 회사들에서 학사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었다. 하지만, 그것도 sadi를 알만한 회사의 경우지, 이후에 내가 다닌 회사들은 sadi를 잘 알지도 못했고, 고졸이상의 대우를 받기도 어려웠다(그런 이유로 sadi 수료 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학사를 새로 취득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는 동문들이 종종 있다). 요즘에는 학력보다 실력이 우선이고, 그 사람의 경력이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적어도 내가 느낀 실제 필드는 그렇지 않았다. 학력이 받쳐줘야 내세울 만한 경력을 쌓을 수 있는 회사에 들어갈 수 있고, 경력을 쌓을만한 회사에 들어가야 실력을 쌓을 수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사실이었으면 우리나라는 길고양이만큼 용이 흔한 나라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모 회사에 디자인 팀장으로 재직하던 때의 일이다.
그 회사는 훌륭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공공기관이나 국가사업을 입찰받아 진행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어느 프로젝트 입찰을 진행할 때 회사 구성원들의 경력과 학력사항까지 제출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온라인 데이터 베이스를 통해 전 직장의 이력이나 출신 학교를 검색해서 입력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정식 대학교가 아닌 sadi는 당연히 검색이 되지 않았다. ‘기타’ 란이 있었으면 sadi를 적고 대학과정을 마친 것인 양 우겨보았겠지만, 그 시스템에 그런 여지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최종 학력에 sadi를 적을 수가 없었고, 결국 최종학력을 고졸로만 표기해야 했다. 다른 동료들이 자신의 이력을 척척 써내던 것에 비해 혼자 고민하고 난처해하던 것을 생각하니 지금도 얼굴이 화끈해진다. 다른 회사는 박사, 석사가 몇 명씩 있어서 그들의 존재만으로 가산점을 받고 들어가는 상황에서(학력에 따라 전문인력으로 구분해서 점수를 매기고 총 평가 점수에 합산하는 시스템이었다), 우리 회사는 디자인 팀장이라는 사람이 고졸이라니… 대표님에게도 동료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 입찰은 결국 불발이 되었고 나는 괜한 자격지심에 그 회사를 다니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앞으로 비슷한 입찰이 또 생기면 어떻게 하지? 그럴수록 실력으로 보탬이 되기 위해 나름 노력했지만, 그때는 나의 알량한 자존심이 나를 너무 못나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나, 나는 나 스스로의 마음을 진단하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사이버 대학교 상담심리학과에 입학했다. 사람의 마음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나 스스로도 항상 마음 한쪽에 무언가 병이 있을 것 같다는 불안함이 있었다. 자라나는 내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건강한 아빠가 되고 싶은 바람도 컸다. 상담심리를 공부하면서 나는 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진단할 수 있게 되었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리포트를 쓰기 위해 관련 책들을 찾아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덕분에 마음도 많이 건강해진 것 같다. 그리고 2학년을 마칠 무렵 갈림김을 맞이했다. 이 길로 쭉 나가서 상담심리 전공으로 학사를 취득할 것인가, 디자인과로 전과해서 디자인학사 학위를 취득할 것인가.
마음 한편에서는, 앞으로 얼마나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왕 다니게 된 대학교인데, 디자인전공으로 졸업해서 앞으로 디자이너라는 이름을 달고 살 때 학력 때문에 곤란한 일을 당하지는 말자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나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던 아내도 그동안 디자이너로 살아온 삶이 아깝다며 처음부터 디자인을 전공하기를 바랐었다). 마침 2학년을 마치고 여러 가지 분주한 일이 겹쳐 1년 동안 휴학을 하게 되었는데, 그 김에 차분히 고민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새로운 학문을 배워서 학사자격을 따는 것이 아닌, 이전에 열심히 배우고 실무경험도 쌓아온 디자인이라는 분야에 ‘대졸’이라는 두 글자를 채워 넣기로 결정했다. 늘 학력위주의 사회를 비난했으면서 그 사회의 편견을 깨는데 일조하기보다 결국 나도 별다를 바 없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로 한 것이다.
나는 시각디자인과로 전과해서 무사히 졸업을 하고 학사자격을 취득했다. 마흔 넘어서 다시 하는 공부라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미 아는 내용을 복습하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기도 하면서 즐겁게 학사 일정을 마무리했다. 졸업작품 심사도 무사히 잘 통과하고 나름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얼마 전 가족들과 함께 학위 수여식에 참석해서 학위증을 받고 학사모를 쓰고 사진을 찍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이런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것도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처럼 나이 들어서 학교 한번 더 다니느라 고생하지 말고, 학교 다닐 수 있을 때 다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더위에 지쳐 영혼이 들락날락하는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면서 어쩐지 마음이 복잡해졌다. 물론 지금이니까 이 정도 마음의 여유가 되어서 사이버대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국가 장학금 제도로 등록금 부담이 거의 없었던 것도 결정적인 이유였다. 무엇보다도 가족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이버대학교는 정해진 시간에 온라인으로 시험을 보는데, 아빠 중간고사 본다고 자체 음소거 모드로 소곤소곤 놀아주었던 아이들과 여러모로 많이 신경 써주고 항상 응원해 준 아내에게 많이 고맙고 미안하다(중간에 포기하려 할 때마다, 그동안 나를 배려해 준 자신의 삶이 억울해서라도 졸업을 꼭 하라고 협박을 해준 것도 졸업까지 갈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다). 물론 학력이 스펙으로 필요한 상황에서 사이버 대학교의 학위가 나에게 얼마나 자부심이 되어줄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힘들게 졸업한 사이버대학교를 무시하는 건 절대로 아니고, 아직까지 학벌 카르텔이 중요한 대한민국 사회이기에 하는 하소연이다. 어쨌든 나는 앞으로 쓸 일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때 ‘대졸’이라는 자격요건 앞에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까지 없었던 방패를 하나 손에 들었다는 것 만으로 괜히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든든함을 얻었다.
만약 내가 남들처럼 제때에 공부를 마치고 일찍 그 방패를 갖추었더라면, 내 삶은 지금보다 많이 달라졌을까? 혹시 이미 손에 든 그 방패에 만족하며 그냥 그렇게 안주하고 살지는 않았을까? 그래도 지금보다 10년 뒤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고, 결국 그 과정을 마친 스스로를 조금 칭찬해주고 싶다. 부족한 퍼즐조각이 있다면 채워보는 것을 목표로 해보면 어떨까. 그것이 정말 채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는지, 시간낭비였는지는 채워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