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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싸 Aug 30. 2023

일단 만들어서 팔아보세요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에요)

 어느 여름날이었다. 나는 주문받은 제품들을 포장한 택배상자들을 한 아름 안고(그래봤자 3개? 4개?) 우체국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그래서 이걸 다 팔면 얼마가 남지? 10분 여를  기다려 버스에 올라 혹시라도 상자들이 망가질까 조심조심하며 계산을 시작했다. 인쇄비가 모두 얼마였고 몇 장을 만들었으니 인쇄 단가는 얼마다. 그리고 비닐은 100매에 얼마였으니 개당 단가로 하면 얼마고, 우체국에서 구입한 이 택배상자는 1개에 얼마다. 뽁뽁이도 돈 주고 구입한 거지만 계산이 애매하니 그냥 뭐 그렇다고 치고, 거기에 입점몰 판매 수수료는 얼마니까 총 비용은 얼마. 그런데 이걸 팔고 얻는 매출은 얼마. 어? 왜 벌써 마이너스지? 그럼 택배비는 어떻게 하지?

 그런 결론에 이르고 나니 우체국에 가는 길이 가벼웠을 리가 없다. 왜 나는 하필 그 더운 여름에 에어컨도 안 나오는 버스 안에서 그 계산을 하게 됐을까. 어쨌든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아, 진짜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시절, 아내와 나는 인쇄를 베이스로 한 굿즈를 제작하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우리가 진입한 시장은 크리스천 굿즈 시장이었는데, 당시에만 해도 디자인이 예쁜 브랜드들이 많지 않아서 우리가 디자인을 잘해서 진입하면 승산이 있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아내와 나 둘 다 그림도 잘 그리겠다(나는 자뻑인데 아내는 정말 잘 그린다), 인쇄도 빠삭하겠다,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몇 가지 디자인으로 카드, 엽서 등의 제품을 만들었고, 심지어는 캘리그래피로 그때그때 메시지까지 넣어서 판매하는 상품도 제작해서 캘리그래피 잉크가 마르도록 집안에  죽 널어놓고 생활을 한 적도 있다. 정말 아름다운 추억이다. 거기까지는.


 우리 부부는 만화도 그리고 캘리그래피도 쓰면서 항상 둘이서 무언가를 끄적끄적 만들어왔다. 좋은 취직자리 마다하고 나의 감언이설에 속아 함께 고생하던 아내에게 나는 우리의 콘텐츠를 상품으로 만들어서 팔아보자고 제안했고, 오빠 말이면 다 따랐던 당시의 순수한 내 아내도 상품화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매월 오피스텔 월세 내기도 빠듯한 우리는 모아둔 자본도 없었고, 장사를 하기 위해 대출을 받을만한 강심장도 없었다. 그래서 가장 최소한의 비용으로 만들 수 있는 카드와 엽서 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기 자본이 없으니 무언가를 만들어도 대량으로 만들 수는 없었고 소량으로 만들다 보니 제작 단가가 비쌀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우리가 만들 제품들은 예쁘니까 다른 것보다 좀 비싸도 잘 팔리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만 가득했다.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을 하고 인쇄를 해서 제품을 만들었다. 카드의 크기에 맞는 봉투도 만들고 포장비닐도 적당한 사이즈를 찾았다. 비닐 안에 일일이 손으로 접은 카드와 봉투를 담고 비닐 겉면에 우리 브랜드 스티커까지 붙이고 나니, 꽤 그럴싸한 제품이 되었다. 나는 아내의 응원을 받으며 여러 온라인 몰과 오프라인 몰에 입점을 의뢰했다. 그때 의뢰한 모든 업체들의 공통된 반응은 두 가지였다. “예쁘다, 잘 팔릴 것 같다.”,”그런데 너무 비싸다. 이 가격이면 아무도 안 살 것이다.” 아내와 나는 고민 끝에 각 업체들에서 제안한 팔릴만한 가격을 정해 보았다. 그리고 그 단가에 맞추려면 우리가 제작 단가를 얼마에 맞춰야 하고, 그러려면 최소 몇 장을 찍어야 그 단가에 맞출 수 있는지를 계산했다(인쇄는 많이 찍을수록 단가가 내려간다). 그래서 처음에 계획했던 것보다 한 번에 3배 정도는 더 인쇄를 해야 그 정도 가격에 맞출 수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다시 가격을 정하고 제작 단가를 맞추기 위해 인쇄도 추가로 더 진행했다. 처음부터 그 정도를 찍었으면 좋았을걸… 하지만 그 정도는 학습비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제작단가를 낮추어서 판매가를 낮추었지만,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당시 그쪽 시장의 판매수수료는 보통 40%였다. 1,000원짜리 카드 한 장을 팔면, 내가 가져가는 돈은 600원이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어떤 업체는 자신들의 몰에 입점하려면 입점료로 수십만 원을 내야 했다. 알면 알수록 절망적이었다. 이것을 다 감당할 수 있을까? 한 가지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결국 이 글의 서두에 이야기한 에피소드처럼 택배비까지 포함하면 마이너스가 되는 일이 허다했다.


 하지만 투자라고 생각했다. 초기비용은 생각보다 많이 든 셈이지만, 시행착오를 거쳤고 방법도 알게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이후에는 전략을 바꾸어서 보다 대중적인 디자인의 제품을 대량으로 찍어서 가격을 낮추어 판매하니 주문이 점점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좋은 리뷰도 달리고, 한 입점몰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에 제품광고 기사도 실어주었다. 그래봤자 한 달 매출이 100만 원도 안 됐지만, 이렇게 제품이 쌓이고 인지도가 올라가다 보면 점점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렇게 매월 정산이 되면 다시 새로운 제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좀 반응이 괜찮다 싶으면 대량으로 인쇄를 해서 몇천 개씩 재고를 쌓아두었다. 덕분에 제작비 총액은 많이 올랐지만 제작단가는 그만큼 확 떨어져서 마진은 그나마 나아졌다. 하지만 이미 살 사람은 다 산 건지, 결국은 더 이상 팔리지 않고 재고만 엄청 남게 되었다. 차라리 마진 욕심을 좀 버리고 새로운 상품을 꾸준히 개발했으면 어땠을까. 그랬으면 좀 달랐을까? 잘 모르겠다.


 뒤돌아보니 반짝 잘 팔린 시기가 있었고, 안 팔리는 대부분의 시기가 있었다. 팔리지 않으니 새로운 제품을 만들 수도 없었다. 다른 일을 하면서 모이는 돈으로 새로운 상품을 만들곤 했지만, 처음 출시했을 때만 반짝 팔릴 뿐, 꾸준히 팔리지는 않았다. 결국 서랍 가득가득 재고만 쌓였고, 재고 때문에 새로운 서랍장을 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게다가 그즈음에 우리의 브랜드를 벤치마킹 했던 것인지(전에는 그 시장에서 디자인에 신경 쓰는 브랜드가 거의 없었으니까!), 예쁘고 다양한 제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덩치 큰 회사들이 늘어났다. 우리가 진입했던 시장에 더 많은 제품군과 더 저렴한 가격으로…


 결국 우리는 졌다.


팔리지도 않을 상품들을 포장하고 스티커를 붙여서 서랍마다 꽉꽉 채워놓는 일들에 점점 지쳐갔다. 왜 이 짓을 하고 있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결혼한 지 몇 해 되지 않아서 자리도 못 잡고 있을 때라 우리 부부는 이사도 많이 다녔는데, 이사 갈 때마다 그것들은 고스란히 무거운 짐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얼마 전,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오고서야 모든 재고를 버렸다. 팔리면 상품이고 돈이지만, 안 팔리는 재고는 결국 분리수거해야 할 종이쓰레기에 지나지 않았다. 일일이 포장 비닐과 내용물을 분리하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종이쓰레기를 버리는 커다란 마대자루 앞에서도 한참을 서서 정말 이게 옳은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그때 아내의 말을 떠올렸다.


 “어차피 이건 우리가 10년 전에 만든 거라 이제는 촌스러워졌어. 만약 우리가 다시 뭘 만든다면 훨씬 더 잘만들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그러고 싶어.”


 우리 부부는 지금도 무언가를 다시 만들어서 팔아보면 어떨까 계속 생각하고 고민한다. 하지만 그때처럼 실수하지 않도록, 아직은 계속 고민만 하고 있다. 언젠가는 용기를 내어 다시 무언가를 만들어서 팔아볼 수 있을까? 이번에는 예전보다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속지 말아야 한다. 계속된 실패의 가장 큰 요인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고 나는 이미 어머니를 한번 찾아뵈었으니, 이번에는 저번과는 다를 거야.”


라는, ‘준비 되지 않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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